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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식도락의 목적은 지루함 뛰어넘기?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식도락의 목적은 지루함 뛰어넘기?

식도락의 목적은 지루함 뛰어넘기?

최근 평창동에 문을 연 갤러리 ‘키미’ 내부. 현대 미술 작품을 주로 전시하는 이 화랑 안에는 작품 감상 후 차 한잔 즐길 수 있는 아담한 카페가 있다.

경제학 수업 시간에 내가 가끔 하는 질문이 있다. “문명의 발전에, 그리고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에 가장 큰 역할을 하는 인간의 속성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은 당황해한다. 왜냐하면 책에는 없는 얘기이니까.

사실 이런 질문에는 정해진 해답이 없다. 그래서 어떤 대답도 가능하다. 내가 찾아낸 가장 마음에 드는 답은 이렇다. ‘인간은 지루해한다.’ 지루함이야말로 모든 발전의 원동력이라는 것.

과거 구 소련에서 망명한 사람들이 가장 감동을 받는 장소는 슈퍼마켓이었다고 한다. 줄을 서지 않고도 원하는 물건을 살 수 있고, 같은 용도의 물건도 종류가 너무나 많아 충격적이라는 것이다.

말을 덧붙이면, 인간은 본디 만족해할 줄 모르는 욕심 많은 존재이기에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발명과 새로운 예술의 근원에는 지루함을 극복하려는 인간의 욕구가 반영되어 있다.

옷장을 열어보면 입지 않는 옷이 얼마나 많은가. 수많은 스타일과 색깔의 옷이 만들어지는 까닭은 끊임없이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이다. 새로운 문학과 음악과 미술이 계속 나오는 이유도 모두 그 때문일 것이다.



식도락의 목적은 지루함 뛰어넘기?
또 한편으로는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느끼는 권태감이 모든 사회악의 원천이기도 하다. 지루함에서 탈출하기 위해 엉뚱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다. 예를 들어 마약으로 새로운 자극을 찾는 사람들이다. 처음에는 아주 미량으로 엄청남 쾌감을 느낄 것이다. 그러나 그 자극도 한번 두번 반복되면 시들해진다. 더 강한 자극을 찾아 더 많은 양을 주사하는 과정이 가속화된다. 결국 육체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넘어가면서 파멸에 이르는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재미없는 것이 뭐냐는 질문이 있다. 정답은 판돈 없이 하는 도박이다. 도박을 처음 할 때는 1000원, 2000원으로도 재미있다. 그러나 곧 재미가 없어진다. 1만원, 10만원, 100만원으로 점점 단위가 높아진다. 나중에는 자신의 모든 재산을 걸고 해야 짜릿함을 느낄 수 있다.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는 예술가들을 보면 정작 그들은 매우 지루해 보이는 작업을 하고 있다. 10년, 20년 똑같아 보이는 작업을 반복하고 있다. 그런데 이 무한에 가까운 반복이 예술가에게는 지루하지가 않다. 물론 남이 시켜서 하는 일이라면 절대로 그렇게 못한다. 스스로가 부여한 규칙에 따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이 점을 이해하려면 실제 예술가같이 생각하는 법을 알아야 한다. 현대미술을 정말 이해하고 즐기려면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이 스스로 예술가가 되어야 한다.

다른 예로 감옥과 수도원을 비교해보자. 감옥에 갇힌 죄수는 자유의 박탈로 질식할 것 같은 기분이다. 영화 ‘쇼생크 탈출’을 보면 감옥에서 마시는 맥주 한 병, 우연히 들려오는 오페라 아리아 하나가 얼마나 대단한 감동을 주는지가 잘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감옥보다도 열악한 환경의 봉쇄된 수도원에 있는 수도사들은 그 좁은 공간에서 하는 빵 하나 물 한 잔의 식사에도 자유로움을 느낀다. 스스로의 자유의지에 따라 자신의 인생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식도락의 목적은 지루함 뛰어넘기?

① ‘키미’의 테라스 너머로는 탁 트인 서울 전경이 내려다보인다. ② ‘ 키미’ 전경. ③ 가나아트센터 뒤 토탈 미술관에는 목재를 이용해 편안하게 꾸민 카페가 있다. ④ 토탈미술관 전경.

사람의 식도락도 지루함을 극복해보려는 투쟁의 역사라고 할 수 있다. 더 좋은 음식, 새로운 음식, 새로운 분위기를 찾는 데 식도락가들은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프랑스의 ‘기드 미슐랭’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려면 여행을 떠나는 이유가 오로지 그 레스토랑을 찾아가기 위해서라는 말이 나올 정도가 되어야 한다.

주말이면 전국의 길이 막히는 요즘,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가볼 수 있는 카페를 서울 안에서 소개해보려고 한다. 평창동은 시내 한복판에서 그리 멀지 않지만 언제나 신선한 느낌이다. 양수리까지 가지 않아도 서울을 벗어난 것 같다. 공기도 깨끗하고 미술관, 화랑도 많이 생겨 문화밸리를 연상시킨다.

최근 평창동에 문을 연 갤러리 키미(Kimi·02-394-6411)는 다양한 현대미술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좋은 전시공간이다. 1층에는 실험적인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2층에 있는 카페는 일부러라도 한번 가볼 만한 곳이다. 창 너머로 보이는 탁 트인 경치가 시원하다. 카페에 걸린 그림들도 편안하면서도 감각이 돋보인다. 커피, 홍차, 전통차가 있는데 가래떡도 한 접시 따라나온다. 떡에 대한 큐레이터의 자세한 설명을 들으며 먹었다. 아트숍에서는 예술가들이 만든 실용성 있는 작품도 판매한다. 주말에는 가족 단위의 교육적 장소로, 평일 오후에는 시간이 나는 대학생들의 데이트 코스로 좋을 것 같다.

가나아트센터 뒤의 토탈미술관(02-379-3994)은 역사가 오래된 곳이다. 전시를 보고 커피 한잔할 수 있는 작지만 예쁜 공간이 이곳에도 있다. 가까운 친구와 잔잔하게 얘기하기 좋은 곳이다. 천장에는 배를 거꾸로 매달아놓았는데 아주 재미있다. 유명한 미술가들이 자주 찾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건축가 문신규씨가 그동안 수집했던 작품과 일상 용품들을 전시하고 있는 ‘Mr. Moon on the Moon’이 열리고 있다.





주간동아 2004.05.13 434호 (p90~91)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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