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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투탕카멘의 무덤’

이집트 문명 발굴 현장으로 초대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이집트 문명 발굴 현장으로 초대

이집트 문명 발굴 현장으로 초대
‘관을 여는 순간, 가슴 떨리는 복잡한 감정은 언어로 표현할 길이 없다. 그 황금 관에 인간의 눈길이 닿은 이래 3000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지금까지 우리에게 이름 정도만 알려졌던 젊은 파라오의 남은 모든 자취가 마침내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1922년 이집트 고대도시 룩소르의 ‘왕들의 골짜기’라 불리는 무덤군에서 전 세계 고고학계를 뒤흔들 만한 일이 일어났다. 고대 이집트 18왕조 시대의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무덤이 온전한 상태로 발견된 것이다. 이미 대부분 도굴되고 더 이상 발굴할 무덤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던 그곳에서 무덤이 발견된 것도 이례적이었지만, 온전한 무덤에서 왕의 황금 미라 등 3400여 점의 호화로운 유물이 나와 사람들을 더욱 놀라게 했다.

이 발굴을 주도한 이는 영국 출신의 고고학자 하워드 카터. 17살 때 이집트 무덤의 벽화 모사가로 일하기 시작한 그는 발굴 현장에서 이집트의 문화와 역사를 익히고 유적 복원에 대한 지식을 쌓아갔다. 이후 투트모세 4세, 하트셉수트 여왕의 무덤을 발견하는 등 일찍부터 고고학자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1910년께 ‘왕들의 골짜기’의 발굴권을 갖고 있던 미국인 데이비스의 유물을 정리하다 카터는 우연히 투탕카멘의 이름이 찍힌 도장과 항아리가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데이비스는 이 사실을 무심하게 지나쳐 버렸고 14년 “이제 왕들의 골짜기에는 더 이상 발굴할 것이 없다”며 떠났다. 그 뒤 카터는 발굴 허가권을 따내기 위해 2년간 싸우고 다시 6년간 골짜기를 헤맨 끝에 투탕카멘의 무덤을 발굴했다.

투탕카멘은 9살 때 왕위에 올라 19살 전후에 사망했으며 이집트 역사에도 별 영향도 미치지 못한 보잘것없는 왕이었다. 그러나 그의 무덤에서 발견된 유물들은 이집트의 잃어버린 역사를 되살리는 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온통 황금투성이의 장식품들, 사후 세계를 그린 그림들, 아름다운 상형문자로 채워진 벽화, 다양한 일상용품들…. 그 러한 유물들은 발굴 현장의 모든 사람들을 황홀경에 빠뜨렸다.



그 유물들은 고대 이집트 미술이 화려하게 피어났던 당시 제작된 것이어서 그만큼 가치는 더 컸다. 또 이 발굴은 인류문명의 4대 발상지 중 하나인 고대 이집트 왕조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는 데 더없이 큰 실마리가 됐다. 또 투탕카멘 사후 이집트 역사에서 지워졌던 텔 엘 아마르나 왕들의 존재와 기록을 복원해 끊어졌던 역사의 허리를 이을 수 있었다.

이 무덤 발굴의 전 과정을 정밀하게 그려낸 것이 ‘투탕카멘의 무덤’이다. 원래 세 권짜리였던 이 책이 번역본에서 한 권으로 묶였다. 이 책이 흥미로운 것은 보물찾기 과정만 그린 게 아니라 이후 매장실과 그 안쪽의 보물 창고, 저장고 등에 저자가 들어가 안장된 수많은 유물을 보존처리하고 반출하는 과정을 정밀하게 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의 묘사는 쉽고 유려해서 생생한 발굴 현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한다. 책에 덧붙여진 발굴 현장과 유물 화보도 볼 만하다. 재미로 치면 영화 ‘인디애나 존스’나, 고고학적 상상력과 서스펜스가 결합된 상업소설 못지않다.

‘왕의 얼굴을 싸고 있는 마지막 붕대를 벗길 때는 머리가 탄화된 상태여서 극도로 주의해야 했다. 검은담비 꼬리털로 만든 붓으로 살살 건드리자 부식된 마지막 몇 조각의 천이 떨어져나가면서 차분하고 평온해 보이는 표정이 드러났다. 젊은이의 얼굴은 우아하고 기품이 있어 보였으며, 이목구비는 반듯했다. 특히 입술은 윤곽이 뚜렷했다.’

‘왕들의 골짜기’는 황량한 바위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그곳의 무덤은 도굴을 방지하기 위해 위치를 가늠하기 어려운 구석진 곳이나 절벽 사면에 마련해서 통로를 흙으로 가득 채우고 입구를 위장했다. 도굴꾼들이 설령 입구를 발견했다 해도 쉽게 들어가지 못하게 뱀이 우글거리는 함정을 파놓기도 했다. 그러나 보물을 찾는 도굴꾼들은 너무나 영리하고 끈질겼다. 왕들의 골짜기에 있는 대부분의 묘가 조성된 지 100년도 지나지 않아 도굴돼 관리들은 왕들의 미라를 다른 곳에 부장품도 없이 매장하곤 했다.

발굴 뒤에 알려진 얘기지만 투탕카멘의 묘도 조성 초기에 도굴꾼들의 손을 탔다는 증거가 나왔지만 도굴꾼들은 관리들 때문에 그리 많은 물건들을 가져가지 못했다. 그 뒤 묘 입구에 다른 무덤을 조성하던 일꾼들의 숙소가 들어서는 바람에 오랜 세월 동안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이 발굴기는 휘황했던 이집트 문명의 일단을 이해하는 데도 좋은 길잡이가 될 수 있다.

하워드 카터 지음/ 김훈 옮김/ 해냄 펴냄/ 524쪽/ 1만5000원



주간동아 434호 (p86~8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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