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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타이부대 사로잡은 ‘추억의 노래’

리메이크한 80년대 가요 중년층 성원에 인기몰이 … 불황 음반시장에 ‘단비’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넥타이부대 사로잡은 ‘추억의 노래’

넥타이부대 사로잡은 ‘추억의 노래’

리메이크 열풍을 불러온 이수영의 ‘광화문 연가’ 뮤직비디오의 한 장면.

‘거칠은 벌판으로 달려가자. 젊음의 태양을 마시자.’

축 처진 어깨로 걸어가는 중년 남자를 한 친구가 따라잡는다. 그리고 어깨를 잡아 세운 채 김수철의 ‘젊은 그대’를 부른다. TV에서 방송 중인 CF의 한 장면이다.

말 한마디 하지 않지만, 이 장면을 지켜보는 이라면 누구나 마주 본 채 너털웃음 짓는 두 친구 사이에 흐르는 것이 위로와 격려임을 눈치 챌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이 젊었을 때인 1984년, 김수철이 부른 씩씩한 청춘의 노래가 이 CF의 느낌을 살리는 일등공신인 셈이다.

80년대의 노래들이 부활하고 있다. ‘꿈에’ ‘슬픈 인연’ ‘광화문 연가’ 등 그 시절 그 노래들이 신세대 가수들에 의해 다시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열풍의 시작은 올 1월 리메이크 음반 ‘클래식’을 낸 이수영에게서 비롯됐다. 이문세의 ‘광화문 연가’, 조덕배의 ‘꿈에’ 등을 특유의 애잔하고 섬세한 음성으로 다시 부른 이 음반은 발매 석 달 만에 40만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순항하고 있다.



배인숙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양희은의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 김학래의 ‘내가’, 이광조의 ‘오늘 같은 밤’ 등 다른 수록곡들도 라디오 방송 인기순위를 오르내리며 골고루 인기를 끌고 있다.

이수영의 ‘클래식’이 열풍 진원지

넥타이부대 사로잡은 ‘추억의 노래’

최근 CF에 삽입되어 인기를 모으고 있는 ‘젊은 그대’를 부른 가수 김수철(왼쪽)과 리메이크되는 노래 ‘서른 즈음에’의 김광석.

“이번 앨범에는 지금 힘겨운 현실을 살아가고 있을 중·장년층들이 내 나이 때 들었던 음악이 실려 있다. 내 앨범이 그들에게 아련한 추억을 회상하고, 다시 희망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촉매제가 됐으면 좋겠다. 그것이야말로 음악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음반을 발매하며 내놓은 이수영의 말처럼, 80년대의 노래들은 지금의 중년들에게 팍팍한 오늘을 잊고 ‘젊음’과 ‘희망’의 시절을 돌아보게 만드는 장치로서 힘을 발휘하고 있는 듯하다.

이수영의 앨범이 최근 음반계에 불어닥친 지독한 불황을 깬 힘은 레코드점으로 대거 달려간 ‘넥타이 부대’들의 성원이었다.

음반업계에서는 최근 수년간 MP3 열풍으로 음반 판매량이 크게 줄자 경제력 있고 컴퓨터보다 오디오로 음악 듣기를 좋아하는 중·장년층을 주요 구매층으로 만들기 위한 대책 마련에 부심해왔다. 이들이 움직여야 불황을 극복할 수 있고 장기적으로 시장도 탄탄해질 것이라고 내다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수영의 성공은 이 시점에서 ‘리메이크’가 ‘돈이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 시금석이 됐다.

이 음반의 성공 이후 R&B 가수 정철이 나미의 대표곡 ‘슬픈 인연’을 다시 부른 싱글 앨범을 내놓았고, 아이돌 스타 이지훈 신혜성도 이지훈의 새 앨범에 이문세의 옛 노래 ‘이별이야기’를 리메이크한 곡을 실었다.

유재하의 ‘가리워진 길’ ‘우울한 편지’, 김광석의 ‘서른 즈음에’, 김현식의 ‘내사랑 내곁에’ 등이 담긴 JK 김동욱의 스페셜 앨범은 이달 중 나올 예정.

성시경과 브라운아이즈 출신의 나얼도 5, 6월 발매 계획으로 각각 리메이크 음반을 제작 중이다. 성시경의 기획사인 ‘뮤투 엔터테인먼트’는 이 음반이 ‘80년대 포크송들의 서정적인 가사와 멜로디를 성시경만의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노래하는 앨범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요계에 이처럼 리메이크 열풍이 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외환위기 경제 한파가 나라를 뒤흔들었던 1998년 가요계의 이슈도 리메이크였다. 음반 도매상들이 잇따라 문을 닫고 치솟는 작곡료와 제작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기획자들도 줄지어 도산했던 시절, 가요계가 눈을 돌린 것이 ‘재활용’이었던 것이다.

넥타이부대 사로잡은 ‘추억의 노래’

코요태, 나얼, 성시경(왼쪽부터)

이 무렵 김건모가 ‘이치헌과 벗님들’의 ‘당신만이’를 불러 인기를 모았고, 박진영은 유재하의 ‘사랑하기 때문에’를 다시 불렀다. 박지윤이 로커스트의 ‘하늘색 꿈’을 리메이크한 앨범으로 화려하게 데뷔한 것도 이 시절이다.

당시 문화평론가들은 리메이크 열풍에 대해 저비용으로 고품질의 음반을 만들어내야 하는 제작자들의 바람과 옛 노래를 통해 ‘행복했던 시절’의 꿈과 희망을 되찾기 바라는 구매자들의 바람이 절묘하게 결합된 결과라고 평했다.

최근 불고 있는 리메이크의 인기도 음반계의 뿌리 깊은 불황에 추억과 위로, 희망이 필요한 현실이 결합돼 만들어진 현상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최근 음반 발매 후 3주 연속 판매량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코요태의 ‘디스코왕’도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리메이크’ 자체보다 ‘복고’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주영훈이 작사·작곡한 타이틀곡 ‘디스코왕’은 80년대 디스코장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신나고 경쾌한 리듬에 복고적인 스트링 선율을 결합한 곡으로, 단순한 가사와 동작을 통해 듣는 이를 순식간에 80년대의 추억 속에 빠뜨리는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 음악이 댄스 음악을 즐기는 젊은층뿐 아니라 그 시대를 추억하는 중·장년층에게까지 골고루 인기를 얻게 된 비결이다.

바로 이 같은 성격 때문에 최근의 리메이크 인기에 대해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문화평론가 이명원씨는 “리메이크 음반의 인기는 장기적으로 가요시장에 해가 될 수 있다. ‘추억’은 잠시 되새길 때 신선하지만 미래를 함께할 수는 없는 구태의연한 것이기 때문”이라며 “제작자들이 편안하게 인기를 누리려 하기보다 중년들이 즐길 수 있는 새로운 문화상품을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미래에 대한 전망이 희미하고 현실이 암울할 때 추억은 언제나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준다는 점에서, 당분간은 지금의 ‘복고’ 열풍에 기대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라는 게 음반계의 대체적 분석이다.



주간동아 434호 (p78~79)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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