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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 속의 성(性)<21>|몸난로가 된 수넴 여자

처녀 ‘아비삭’이 다윗 회춘 묘약?

신하들 기득권 유지 위해 ‘방중술’ 동원 … 역사와 권력 연약한 여성 희생 상징적 사건

  • 조성기/ 소설가

처녀 ‘아비삭’이 다윗 회춘 묘약?

처녀 ‘아비삭’이 다윗 회춘 묘약?
다윗 왕은 왕위에 오른 지 40년이 되는 해 70살의 나이로 죽었다.

70살이 가까울 무렵 다윗은 아무리 옷을 껴입고 이불을 덮어도 몸이 따뜻해지지 않고 한기만 들었다. 다시 말해 원기가 떨어진 것이다. 그러자 신하들이 다윗에게 제안을 했다.

“저희들이 젊은 처녀 하나를 구해와 왕을 모시게 하고 왕의 품에 안기게 하여 몸을 따뜻하게 해드리겠나이다.”

이 제안을 다윗이 거절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신하들이 이스라엘 곳곳을 뒤져 아리따운 젊은 처녀를 구하다가 수넴 지역에서 아비삭이라는 처녀를 발견했다. 아비삭은 어찌나 아름다운지 남자들이 보기만 해도 애간장이 녹을 지경이었다. 신하들은 자기들이 먼저 아비삭을 안고 싶었겠지만 왕에게 고이 바치기 위해 욕정을 꾹 누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렇게 궁으로 오게 된 아비삭은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다윗 왕 곁을 떠나지 않고 수족처럼 정성스럽게 왕을 봉양했다. 점점 차가워지는 다윗의 팔과 다리를 수시로 주무르며 온몸에 피가 잘 돌아가도록 애를 썼다. 그러나 왕의 품에 아리따운 처녀를 안겨줌으로써 왕의 원기를 회복하게 하려 했던 신하들의 계획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수족처럼 왕 봉양 그러나 끝까지 처녀성 유지

왕의 품에 안기게 한다는 것은 왕과 몸을 섞도록 한다는 의미였다. 다윗의 얘기가 아니더라도 예로부터 노인이 젊은 여자와 몸을 섞으면 회춘한다는 속설이 전해 내려왔다.

방중술로 몸의 병을 치료하고 원기를 회복시키는 비결에 관해서는 도교가 성행한 중국을 따라갈 나라가 없다. 방중술과 관련한 수많은 책들이 수(隋)ㆍ당(唐) 시대에 특히 많이 쏟아져나왔다. 그중에 가장 널리 알려진 책이 ‘소녀경(素女經)’이다.

소녀경의 총론이라고 할 수 있는 대목을 ‘중국성풍속사’(까치 펴냄)에서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황제(黃帝)가 소녀에게 물었다.

“요즘 내 기력이 떨어져 기분이 좋지 않구나. 마음은 슬프고 몸은 늘 불편한데 대체 어떻게 된 것이냐?”

“남자가 쇠약해지는 이유는 성행위를 원활하게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강한 것은 물이 불을 이기는 경우와 같습니다. 음양술을 아는 사람은 다섯 가지 맛을 잘 섞어 맛있는 음식을 만드는 요리사와 같습니다. 음양술을 아는 인물은 다섯 가지 즐거움을 누립니다. 하지만 이 방법을 모르는 이는 성행위의 진정한 기쁨을 한 번도 누리지 못한 채 일찍 죽게 됩니다. 이는 피해야만 될 일이 아닐까요?”

또한 ‘옥방비결’이라는 책에서는 성행위의 여덟 가지 이익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정액이 단단해지고 기가 편해지며, 내장기관이 활발해지고 뼈가 튼튼해지며, 혈액순환이 순조로워지고 피가 많아지며, 체액이 풍성해지고 몸 전체가 고르게 좋아진다.’

다윗의 신하들도 이러한 방중술로 다윗에게 원기를 불어넣어 자신들의 기득권을 좀더 유지하려고 한 것 같다. 그러나 다윗은 아비삭의 봉양은 받으면서도 끝내 그녀와 몸을 섞지 않았다. 어쩌면 몸을 섞을 만한 정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처녀의 몸을 빌려서라도 몸의 원기를 돋우고자 하는 일이 구차하게 여겨졌을 수도 있다.

시인 고정희는 일찍이 ‘수넴 여자 아비삭의 노래’라는 시를 통해 분단 조국의 현실을 늙은 다윗의 몸에 비유하면서 조국이 연약한 여성들의 희생을 요구하는 몰염치를 풍자한 적이 있다.

‘(중략) 이불을 덮어도 더워지지 않고/ 아무리 끌어안아도 회생하지 않는/ 싸늘하고 막막한 민주의 몸뚱아리/ 맥박이 늦어지고 살이 굳어지는/ 분단의 몸뚱아리에/ 여자의 아리따움 벗어 덮으라네/ 여자의 부드러움 뿜어 보듬으라네/ 차디찬 수족에 온기를 불어넣고/ 꺼져가는 오관에 생기 불러오라네.(중략)’

전태일 열사의 여동생인 전순옥씨가 최근에 펴낸 ‘끝나지 않은 시다의 노래’도 1970년대 산업화의 그늘에서 수넴 여자 아비삭 같은 여성 근로자들이 조국 근대화를 위해 희생한 역사를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다.

처녀 ‘아비삭’이 다윗 회춘 묘약?

렘브란트가 그린 ‘다윗과 요나단’(왼쪽).다윗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른 밧세바의 아들 솔로몬.

다윗이 아비삭의 봉양을 받고 있는 동안 왕자들 사이에서는 치열하게 대권 다툼이 벌어지고 있었다. 다윗의 장자였던 암논이 압살롬에 의해 죽고 반역을 일으킨 압살롬도 죽어, 왕위가 서열로는 후궁 학깃의 아들인 아도니야에게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러나 밧세바가 자기 아들 솔로몬을 왕위에 올리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챈 아도니야는 다윗이 아직 살아 있는데도 자기 추종자들을 끌어 모아 성급하게 왕위 선포식을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밧세바는 나단 선지자와 합세해 다윗에게 솔로몬을 하루속히 왕위에 앉혀달라고 간청했다. 밧세바가 이 일로 다윗을 찾아왔을 때도 아비삭이 다윗의 수중을 들고 있었다. 남편이 있는 몸으로 다윗과 간통을 저질렀던 밧세바로서는 늙어서 주름살투성이 노인으로 변한 다윗이 이제는 처량하고 안쓰럽게 여겨지기도 했을 것이다.

솔로몬이 다윗의 정식 계승자로 왕위에 오르자 세력이 약한 아도니야는 결국 솔로몬에게 항복하고 목숨만 겨우 유지한 채 살아간다. 그랬으면 쥐 죽은 듯이 숨어서 살아야 마땅한데도 아도니야는 다윗이 죽자 솔로몬에게 당돌한 요구를 한다. 그런데 차마 솔로몬에게 직접 가서 요구하기는 어려웠던지 솔로몬의 어머니 밧세바를 먼저 찾아가서 털어놓는다.

후궁 아들 아도니야는 아비삭 요구하다 목숨 잃어

“당신도 아시는 바와 같이 왕위는 원래 내 것이었고 온 이스라엘은 다 얼굴을 나에게로 향해 왕을 삼으려 했는데 여호와의 뜻이 있어 그랬는지 왕위가 그만 내 아우에게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이제 내가 한 가지 소원을 당신에게 구하오니 내 얼굴을 괄시하지 마옵소서.”

그 한 가지 소원이라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다윗을 봉양했던 수넴 여자 아비삭을 자기 아내로 달라고 솔로몬에게 부탁해보라는 것이었다. 밧세바는 아도니야의 마음을 잘 달래놓아야 자기 아들 솔로몬에게 뒤탈이 없을 것이라 생각하고 아도니야의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약속하였다.

밧세바가 솔로몬에게 가서 아도니야의 소원을 말하자 솔로몬은 정색을 하며 말했다.

“어찌하여 아도니야를 위해 수넴 여자 아비삭을 구하시나이까. 그는 나의 형이니 그를 위해 왕위도 구하옵소서.”

밧세바가 무안할 정도로 몰아붙인 솔로몬은 그 자리에서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야를 쳐죽여버린다. 아도니야는 가만히 있었으면 목숨은 부지하였을 텐데, 평소에 욕심을 내고 있었던 아비삭을 차지하려다가 그만 목숨을 잃고 말았다. 어쩌면 솔로몬에게도 아비삭을 안고 싶은 마음이 있었는지도 모른다.

르네 지라르의 ‘욕망의 삼각형’ 구도로 분석해보면 아도니야가 아비삭을 욕망하자 솔로몬도 아도니야가 욕망하는 대상인 아비삭을 같이 욕망하게 되었을 가능성이 많다.

또한 솔로몬의 입장에서는 아버지의 여자라고 할 수 있는 아비삭을 이복형인 아도니야가 차지하려고 하는 것은 다시 왕위를 노리려는 속셈이 있어 그러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아도니야가 역모를 꾀하지 않을까 불안하던 차에 마침 잘 되었다 싶어 아도니야를 아예 쳐죽여버렸다.

솔로몬이 나중에 아가서를 통해 육감적인 사랑을 노래할 때 수넴 여자가 등장하는데 그 여자가 아비삭이라는 학설도 있다. ‘돌아오고 돌아오라 술람미(수넴) 여자야, 돌아오고 돌아오라 우리로 너를 보게 하라.(중략) 배꼽은 섞은 포도주를 가득히 부은 둥근 잔 같고 허리는 백합화로 두른 밀단 같구나. 두 유방은 암사슴의 쌍태 새끼 같고 목은 상아망대 같구나.’



주간동아 434호 (p66~67)

조성기/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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