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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 없는 내 아들, 누가 죄인 만들었소”

남선우씨, 법정·경찰 등에 맞서 ‘7년 사투’… 교통사고 가해자 된 아들 재심 판정 끌어내

  •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죄 없는 내 아들, 누가 죄인 만들었소”

“죄 없는 내 아들, 누가 죄인 만들었소”

사고 관련 자료를 들어 보이며 법정 투쟁 과정을 설명하고 있는 남선우씨.

”아버지가 아들을 믿어야지요. 아들이 억울하다는데, 잘못된 것이 분명한데 어떻게 하늘 아래 편히 숨을 쉴 수 있습니까.”

7년 사투 끝에, 교통사고 가해자로 지목돼 1년 6개월의 실형을 산 아들의 재심 판정을 받아낸 아버지가 있다. 주인공은 남선우씨(62·경기 의정부시). 오랜 법정투쟁으로 몸도 마음도 모두 피폐해졌지만 남씨는 “결코 후회하지 않는다”고 했다.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아들의 무죄 확정을 위해 끝까지 싸울 겁니다.”

사고가 일어난 때는 1997년 5월8일 밤 11시45분경이었다. 막 잠이 들었던 남씨는 요란스러운 전화벨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아드님이 몰던 차에 사고가 났어요. 경찰서로 빨리 나오세요.”

남씨는 정신이 번쩍 났다. 큰아들(남기훈·당시 24세)은 교회 집사인 남씨의 아내와 목사, 또 다른 여집사 등 3명을 프린스 승용차에 태우고 기도원에서 의정부 집으로 돌아오던 중이었다. 허겁지겁 경찰서로 달려간 남씨에게 경찰은 “먼저 진술서부터 작성하라”고 했다. “가족의 생사도 모르는데 무슨 진술서냐”며 항의한 끝에 남씨는 아내가 있는 병원을 알아낼 수 있었다.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보호자에게 보여줄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하게 일그러진 아내의 시신이었다.



사고로 아내 잃었지만 ‘슬픔도 잠시’

아내를 유난히 아끼고 사랑하던 남씨는 실신했다 다음날 아침 겨우 정신을 차린 뒤 법적 절차를 밟기 위해 경찰서로 갔다. 담당 경찰은 청천벽력 같은 소리를 했다. “가해자는 당신 아들입니다. 운전 부주의로 중앙선을 넘으면서 큰 사고가 났어요.” 남씨는 그대로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이 사고로 아들을 제외한 동승자 3명이 모두 사망했고, 반대편 차선을 달리던 차의 운전자와 동승자 4명 또한 큰 부상을 했다.

“경찰이 그렇다는데 무슨 할 말이 있겠습니까. 급히 1700만원을 구해 세 사람의 장례를 치렀지요. 발인 다음날에야 전치 34주의 중상을 입고 병원에 누워 있는 아들을 찾았어요. 그 녀석 때문에 사랑하는 아내가 갔다고 생각하니, 사실 미운 마음이 앞서더라고요.”

그런 아버지에게 아들은 전혀 뜻밖의 말을 했다.

“아버지, 죄송합니다. 그런데 사고가 난 건 프라이드 때문이에요. 쭛쭛쭛쭛번 흰색 프라이드, 그 차를 찾아주세요!”

알고 보니 아들은 사고 직후 병원에 실려와 사경을 헤매는 중에도 “프라이드, 쭛쭛쭛쭛번 프라이드!”를 외쳤다는 것이었다. 아들 기훈씨의 설명은 이랬다.

“동두천에서 의정부 방향으로 2차선을 타고 가는데, 1차선에서 엇비슷한 속도로 조금 앞서 달리던 프라이드가 갑자기 2차선으로 급진로 변경을 했어요. 순간 프라이드 오른쪽 뒤편과 제 차(프린스) 왼쪽 앞이 부딪쳤고 당황한 전 핸들을 오른편 개천 쪽으로 급히 꺾은 거죠.”

그 충격으로 프린스는 왼쪽이 완전히 들린 채 중심을 잃고 1차선 지나 반대편 차선으로 돌진해 6중 충돌이라는 대형 교통사고를 일으켰다는 것이 아들의 주장이었다.

“아들은 차를 좋아해 모터쇼 같은 게 있으면 놓치지 않고 구경 다닐 정도였어요. 운전을 하면서도 앞서 달리는 차의 색이나 번호 같은 것을 곧잘 외우곤 했죠. 사고 당시도 마찬가지였던 겁니다.”

“죄 없는 내 아들, 누가 죄인 만들었소”

경찰관 B씨의 집에서 찾은 사고 직후 프라이드 사진(왼쪽).남선우씨가 정비공장에서 직접 프린스 범퍼를 찾아낸 뒤 찍은 7년전 사진(오른쪽).

남씨는 급히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30년 경력의 운전자이자 주유소 사장으로 차에 대해 비교적 밝은 남씨는 아스팔트 위에 선명히 남은 바퀴 자국을 보며 ‘뭔가 이상하다’는 확신을 얻었다. 곧바로 경찰서로 달려가 “프라이드 운전자를 찾아달라”고 했다. 그런데 경찰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헛소리 그만 하라”며 남씨의 멱살을 잡았다. 그럼에도 남씨가 계속 매달리자 비로소 경찰은 “프라이드 운전자는 가해자도 피해자도 아닌 목격자”라며 “불러줄 테니 좀 기다리라”고 했다.

“두 시간쯤 뒤 도착한 프라이드는 금방 세차를 해 물기가 아직 남아 있더군요. 프린스와 접촉한 면에는 긁힌 자국이 선명히 남아 있었지만 경찰은 제 문제 제기를 묵살해버렸습니다. 세차 전 현장 조사한 사진을 보여달라 했더니 ‘그런 것 없다’고 잡아떼더군요.”

남씨는 다시 사고 차를 견인해간 정비업체를 찾았다. 거기서 만난 견인차 기사한테서 결정적인 말을 들었다.

“그 프라이드가 오른쪽 뒤에 프린스 범퍼를 끌고 달렸어요. 사고현장 150m 앞쪽에다 그 범퍼를 떼어놨더군요. 뒤에서 달렸다면 어떻게 그 범퍼를 끌고 달릴 수 있었는지 한번 물어보세요.”

남씨는 공장에서 범퍼를 인계받았다. 다시 경찰서를 찾았지만 담당 경찰은 “당신 아들이 가해자다. 프라이드는 프린스 앞이 아니라 뒤에서 달리고 있었다. 사고현장에서 날아온 범퍼가 우연히 프라이드 ‘앞편’에 걸린 것일 뿐”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울분에 휩싸인 남씨는 ‘내 손으로 반드시 진실을 밝혀내고 말리라’고 결심했다. 7년 사투의 시작이었다.

경찰 위증 드러났어도 아들은 실형

“죄 없는 내 아들, 누가 죄인 만들었소”

사고 다음날 촬영한 프린스의 요마크(타이어가 밀린 흔적).

“의정부경찰서에 교통사고 재조사 신청서를 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생업(주유소 경영)도 내팽개친 채 진상조사에 나섰죠. 경찰은 이에 맞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이하 국과수)와 도로교통안전협회에 의뢰해 ‘가해자는 프린스’라는 감정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도로교통안전협회 감정의 경우 프라이드는 아예 언급조차 하지 않았고, 국과수는 프린스와 접촉한 (프라이드의) 우측 뒤편이 아닌 앞편 사진만 찍어놓고 ‘충격 흔적이 없다’고 해놨더군요.”

사건을 추적하던 남씨는 프린스가 책임보험을 들어놓은 A보험사 담당자와 만난 자리에서 또 하나의 단서를 찾았다.

“서류철에 웬 영수증이 끼여 있는 거예요. 보니 제 아들이 가해자임을 ‘보증’해준 모 사설 교통사고 감정회사에 보험사가 사례비를 지불하고 받은 영수증이더군요. 고객에 과실이 있다는 것을 보험사가 돈까지 들여가며 증명하려 애썼다는 뜻이지요.”

‘뭔가 있다’고 생각한 남씨는 사건에 관심을 보인 한 방송사 기자와 함께 보험사를 찾아가 정보공개를 요구한 끝에 더 놀라운 사실을 알아냈다.

“거기 사고 직후 경찰이 작성한 최초 실황조사서가 있었어요. 가해자란에 제 아들이 아닌 프라이드 운전자 이름이 또렷이 적혀 있더군요. 원래 ‘가해자-프라이드, 피해자-프린스’였던 것이 한순간에 ‘가해자-프린스, 목격자-프라이드’로 뒤집혀버렸던 겁니다.”

알고 보니 그 조사서는 프라이드 운전자의 형이 경찰서에서 빼내 보험사 측에 갖다준 것이었다. 그 이후 무슨 이유에서인지 모르나 경찰은 ‘피해자’ 남기훈을 ‘가해자’로 바꿔 조서를 다시 꾸몄다. 그리고 거듭되는 남씨의 재조사 요구를 “이 사건은 증거도 목격자도 없다”며 묵살해온 것이다.

남씨는 보험사의 ‘수상한’ 행태에 대해 “프라이드와 프린스가 모두 A사 보험에 든 것과 모종의 관련이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프린스는 책임보험을, 프라이드는 종합보험을 들어둔 상태였습니다. 프린스가 가해자가 되면 보상금 7000만원 정도로 끝나지요. 하지만 프라이드가 가해자이면 사망자가 3명이나 되는 까닭에 수억원의 보험금이 나갑니다. 어떤 쪽이 보험사에 더 유리할까요.”

이렇게 남씨가 사건 조사에 매달리는 동안 2000년 1월 아들 기훈씨는 서울지방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러나 남씨는 좌절하지 않았다. 자체 발견한 여러 증거를 토대로 담당 검사를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조서를 꾸민 경찰의 집을 압수 수색하는 데 성공했다. ‘경찰이 이유 없이 가해자를 바꾸지는 않았을 것이다, 진상이 드러날 때를 대비해 (혼자 뒤집어쓰지 않으려고) 분명 증거를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는 게 남씨의 생각이었다.

예상은 적중했다. 최종조서를 작성한 경찰관 B씨의 집에서 초동수사 당시 찍은 사진, 진술서, 조사서 등이 한꺼번에 발견된 것이다. 접촉사고 흔적이 완연한 프라이드를 근접 촬영한 사진도 있었다. 이로 인해 2000년 10월 B경찰관은 허위공문서작성 및 동(同)행사죄로 벌금 150만원형(항소 기각되어 2001년 5월 확정)을, 최초 조사에 임했던 또 다른 경찰관 C씨는 위증죄로 벌금 50만원형(항소하여 2001년 5월 선고유예 확정)을 받았다.

그러나 이로써 아들의 억울함을 풀 수 있겠다고 생각한 남씨의 기대는 무참히 무너졌다. 2001년 4월 있었던 항소심에서 기훈씨가 또 법정 구속되고 만 것이다. 1차 재판 뒤 법정 구속됐다 6개월 뒤 보석으로 풀려난 아들은 다시 수감돼 남은 1년(항소심에서 1년 6개월로 감형)을 꼬박 채우고서야 자유인이 됐다. 남씨 측이 제기한 상고는 2001년 6월 기각됐다.

하지만 2002년 8월, 이번 재심 결정에 결정적 영향을 끼칠 판결이 나왔다. 프라이드 운전자의 형수로서 당시 그 차에 동승하고 있던 D씨의 법정 증언이 허위였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D씨는 “프린스가 몇 바퀴 돌면서 중앙선을 침범해 사고가 나는 것을 목격하고 소리쳤다”고 증언했다. 그러나 실은 프라이드가 프린스보다 앞서가고 있었던 까닭에 사고현장을 목격할 수 없었다는 점을 재판부가 인정한 것이다.

7년 싸우는 동안 건강·재정은 ‘최악으로’

2003년 12월1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경찰관 C씨와 주요 증인 D씨의 위증죄 확정을 사유로 남기훈씨에 대한 재심 개시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4월22일 형사항소4부 심리로 첫 공판이 열렸다.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재심 결정이 무죄 판결은 아니거든요. 중요한 건 범퍼를 끌고 가던 프라이드를 잡아 세운 E씨의 증언인데, E씨가 엄숙한 법정에서 진실한 자세로 증언에 임해주길 바랄 뿐입니다.”

목격자를 일일이 찾아다니며 필적 및 지문 감정을 통해 경찰이 보관 중인 그들의 진술서가 자필인지 아닌지까지 추적해낸 남선우씨. 그렇게 만들고 찾아낸 자료들이 3m 높이를 훌쩍 넘은 지금, 남씨의 건강과 재정 상태는 그야말로 최악이다. 당뇨 합병증에 시달리는 생활보호대상자. 다복한 가정의 가장으로 지역유지 소리를 듣던 7년 전 모습은 간 곳이 없다. 잠은 5년째 찜질방에서 해결하고 있고, 출소 뒤 한 물류회사에 취직한 큰아들은 서울 양재동 회사 기숙사에서, 둘째아들은 친구집을 전전하며 가족이 함께 모여 살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다.

“사람들은 만약 무죄 판결이 나면 국가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해야 하지 않겠냐고 해요. 하지만 전 돈에는 관심 없어요. 그거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생기는 것이지요. 중요한 건 아들의 명예, 아들의 신용, 아들의 진실입니다.”

남씨는 “경찰이나 검찰이 백성의 말에 귀 기울이기는커녕, 미친 사람 취급하며 무조건 내몰았던 것이 무엇보다 한이 맺힌다”고 했다. “국회의원도 벌금 100만원이 넘으면 자리에서 내쫓기는데 사건에 연루된 경찰관들은 큰 탈 없이 직장생활을 계속하고 있어요. 초동수사만 잘했으면, 숨김없이 있는 그대로 처리했으면 되었을 일을….”





주간동아 434호 (p42~44)

이나리 기자 byem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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