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34

2004.05.13

盧 ‘분리와 지배’ 용병술 먹힐까

집권 2기 여권 파워게임과 맞물려 … 차기 교통정리·권력누수 차단 ‘두 토끼 잡기’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입력2004-05-06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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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盧 ‘분리와 지배’ 용병술 먹힐까

    2004년 4월22일 열린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왼쪽)와 정동영 의장이 국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다.

    최근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김근태 원내대표와 2시간 넘게 독대를 한 이유는 김대표의 입각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김대표는 152석 거대여당의 원내대표로, 원내 정책정당화를 실현하고 국회를 주도적으로 운영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했다. 노대통령은 그런 김대표를 세 번이나 청와대로 불렀다. “통일부 장관을 통일 부총리로 승격시켜 초대 통일 부총리직을 맡아달라”는 제안까지 전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김대표는 입각보다 당에 미련을 보였다. 김대표가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미적거리자 노대통령은 청와대를 나서는 김대표에게 “친구가 나를 돕는 것으로 알겠다”는 최후 통첩성(?) 발언을 전달했다고 한다. 김대표는 노대통령의 이런 구애에 결국 손을 들었다. 그는 측근들에게 “친구가 되어드리고 왔다”는 말로 자신의 결단을 보여줬다.

    鄭·金 힘겨루기 난처한 여권

    김대표가 맡을 분야는 통일부. 그러나 결단을 내린 김대표 얼굴이 뭔가 석연찮다. 흔쾌한 표정이 아니다. 측근들 설명으로는 정동영 의장 때문이다. 김대표가 입각할 경우 당은 정의장 손안으로 넘어간다. ‘차기’를 놓고 경쟁 위치에 있는 정의장이 의장과 원내대표 등 요직을 ‘친(親)정’ 인사로 구축할 것은 뻔한 이치. 김대표로서는 앉아서 가만히 바라볼 수 없는 문제다. 이런 우려를 여권 핵심부가 모를 리 없다. 결국 정의장도 시차는 있지만 입각 대상자로 분류됐다. 같은 조건에 선 것이다. 이로 인해 ‘김대표 입각, 정의장 당 잔류’라는 당초 구상은 흔들렸다.

    청와대의 입각 제의가 정의장에게도 전달됐다는 얘기가 나온 때는 4월 말. 김대표가 결단을 내린 시점과 비슷하다. 의장직 수행과 입각, 2선 후퇴 등을 놓고 장고에 장고를 거듭하던 정의장은 노대통령의 입각 제의를 놓고 고민 중이라는 지적이다. 정의장 주변에서는 6월 재·보궐선거가 끝나고, 총리가 지명되면 방향이 잡힐 것이라는 분석이 따라붙고 있다. 정의장은 과학기술부나 정보통신부 등을 선호하는 듯하다. 김대표 진영과 정의장 주변에서는 김혁규 총리설에 대해서도 민감한 반응을 보인다. 잠재적 대통령 후보군에 들어 있는 그의 총리기용설이 거슬린다는 표정이다.

    입각을 둘러싼 여권 내부의 파워게임과 신경전이 치열한 까닭은 노대통령의 집권 2기 정국 구상과 맞물리기 때문이다. 행정부에 이어 의회권력까지 거머쥔 노대통령의 집권 2기 운용 구상은 ‘힘 있는 대통령’으로 정리된다. 국정개혁의 키를 놓지 않으면서 선택과 집중을 통해 효율적인 국정운영을 한다는 것이다. 노대통령이 줄곧 강조해온 당정의 분리, 자율과 분권, 대화와 타협 등의 미래지향적 민주적 원리들이 지도력의 근간으로 등장할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이를 위한 구체적 실천 방안 가운데 하나가 ‘devide & rule(분리와 지배)’에 따른 용병술의 실현이다. 특히 차기 대통령후보군에 대한 남다른 배려와 통제시스템이 작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청와대 측은 총선 뒤 정의장과 김대표의 거취와 관련, 많은 고민을 했다는 후문이다. 두 인사에게 차기를 준비할 환경과 기회를 주자는 것이 골자. 그러나 다른 시각으로 보면 총선 뒤 두 진영에서 터져나온 때 이른 차기 레이스 경쟁이 청와대에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견제와 균형에 따른 청와대의 용병술은 차기 대통령후보 경쟁의 과열이나 대통령 권력누수 현상을 막기 위한 방안인 셈이다.

    두 인사는 총선 뒤 힘겨루기 양상을 연출했다. 두 인사가 부딪힌 대표적인 사례는 원내대표 선출 문제. 정의장은 4월28일 17대 국회의원 당선자 워크숍에서 “내주 초 공식 논의를 통해 원내대표 선출 절차와 일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김대표 측은 정의장의 이런 언급에 불쾌한 표정이다. 김대표의 한 측근은 “원내 문제는 당의장 소관 사항이 아니며 선관위를 구성해 절차에 따라 선출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정의장이 원내대표 선출 과정에 영향력을 미치려는 것으로 보고 있는 것.

    盧 ‘분리와 지배’ 용병술 먹힐까

    2004년 4월28일 강원도 양양 오색그린야드 호텔에서 열린 열린우리당 당선자 워크숍.

    정의장과 김대표는 정무장관 신설 문제에 대해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낸다. 정의장은 “정무장관이 한 일은 권위주의 정권하의 대야 창구로, 정치공작과 정치자금 전달 창구 역할을 했다”며 무용론을 주장한 반면 김대표는 시각이 다르다. “단순한 정치 역할만 하지 않았으며 사회갈등의 통합기능도 봐야 한다”며 정무장관 역할론을 강조한다. 물론 배경에는 당내 주도권을 향한 치열한 수 계산과 전략들이 숨어 있다. 실용주의 노선을 강조하는 정의장에 비해 김대표는 민주개혁세력 통합론에 비중을 둔다. 이 역시 이념적 스펙트럼과 맞물리며 두 인사의 갈등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등장한다. 여권 내부에서는 ‘정-김’의 주도권 다툼에 난처한 표정을 짓는다. 한 관계자는 “7월로 예상되는 전당대회까지 이들이 당권경쟁을 벌일 경우 내부 전열이 흐트러지는 것은 물론 하반기의 민생·개혁입법 처리에도 문제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판단에 따라 두 인사의 역할이 조정됐다는 것. 이들의 입각은 강한 내각을 불러와 힘 있는 대통령을 지향하는 청와대의 국정운영 포석과도 맞아 떨어진다. 여권 한 관계자는 “노대통령은 정부 혁신 등 중·장기적 과제에 주력하고 입각한 여권 실세들에게는 과학기술, 사회복지, 남북문제 등을 맡겨 경쟁하게 하는 것이 힘 있는 국정운영과 레임덕 방지의 지름길”이라고 말했다.

    정의장과 김대표의 입각은 차기 당권경쟁 및 원내대표 경선 등에 연쇄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원내대표의 경우 이미 5선의 이해찬 의원, 3선의 천정배 의원이 격돌하는 양상이 연출되고 있다. 그러나 두 인사가 손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정동영·천정배-김근태·이해찬’ 구도가 형성되면서 두 진영의 보이지 않는 손들이 치열한 경선전을 예고하고 있는 것. 여기에 노대통령의 입김 등 노심(盧心) 논란도 일고 있다(상자기사 참조). 노대통령과 정의장, 그리고 김대표 등 권력 핵심부의 현란한 고공쇼가 한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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