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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햇볕정책, 용천에서 부활?

용천까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남북 접점 도라산역을 가다 … 붐비는 관광객들 “철로 이어졌더라면 구호품 수송 편했을 텐데”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용천까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용천까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라산역(큰 사진)과 북한 방문시 필요한 방문증명서 및 출입신고서.

용천역 사고 직후 남북간에 이슈가 된 것은 육로를 통한 구호품 지원이었다. 오랜 논란 끝에 일부 품목의 육로 수송이 타결됐지만, 주 수송로는 해상과 항공이 맡기로 했다. 과연 남북은 구호품을 육로로 수송할 방법이 없었는가.

용천역 사고 발생 이레째인 4월28일 경의선 도라산역 부근의 남북출입사무소(소장 김중태)를 찾았다. 육군 1사단이 관할하는 민간인 통제선인 통일대교를 지나 판문점으로 이어지는 국도 1호선을 달렸다. 목포에서 출발한 국도 1호선은 판문점에서 그 유명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건너 북쪽으로 넘어간 다음, 용천을 지나 한·중 국경선인 신의주에서 비로소 마침표를 찍는다. 경의선 또한 용천역을 통과해 신의주역에서 긴 한숨을 토해놓는다.

판문점을 코앞에 둔 고갯길에서 왼쪽으로 왕복 4차선 도로와 연결된 삼거리가 나왔다. 이 도로는 2000년 7월31일 남북 장관급회담 합의에 따라 건설된 신국도 1호선이다. 이 도로로 접어들자 백연교라는 다리가 나오고 이어 오른쪽으로 ‘출경동(出境棟)’이라는 생경한 간판을 붙인 건물이 나타났다.

용천 참사 뒤에도 출·입국 풍경은 평소와 같이 평온

남·북한이 완전히 다른 나라라면 이 건물은 출국동(出國棟)이 되었겠지만 우리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부속도서’인 관계로 출경동이 되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외국에 나가는 사람은 출입국신고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출경장을 통해 북한에 가려는 사람은 모양과 양식은 똑같은데 다만 국(國)자만 빠진 ‘출입신고서’부터 작성해야 한다.



이어 X레이 검색대 위에 모든 짐을 올려놓고 마약 총기 도검 위폐 화약류 등 위험물을 갖고 나가는지에 대해 검색을 받는다. 이때 농산물이나 동·식물을 갖고 나가는 사람은 그곳에 있는 농림부 산하 식물검역소나 수의과학검역원에 들러 사전 검역을 받고 ‘이상이 없다’는 내용의 서류를 발급받아야 한다. 이 서류는 북쪽에 들어갈 때 그쪽의 검역기관에 제출한다.

검색 과정에서는 군사기밀에 해당하는 서류나 물품에 대한 조사도 이뤄지는데, 이는 국군기무사와 국가정보원 직원들이 담당한다. 국외 반출이 금지된 문화재를 갖고 나가는 것도 역시 단속 대상이다. 이상 없이 검색대를 통과하면 법무부 출입국관리국 직원이 나와 있는 ‘출입심사대’로 간다. 인천공항이라면 출국심사대에 여권을 내놓고 ‘출국’ 도장을 받겠지만, 출입심사대에서는 방문증명서(방북증)을 내밀고 ‘출발’ 도장을 받는다.

방북증은 통일부 교류협력국 등에서 발급해주는데, 방북 목적이 분명하고 자격을 갖춘 사람은 쉽게 발급받을 수 있다. 그러니까 요즘 와서도 “북한 방문이 까다롭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변화한 현실을 모르거나, 아니면 해외여행에 결격 사유가 있는 사람일 가능성이 높다. 출발 도장을 받으면 아직 포장되지 않은 북측의 신국도 1호선을 통과해 북으로 간다.

취재진이 출경장에 도착하기 한 시간 전쯤 현대아산 직원 17명이 개성공단개발사무소의 건설을 위해 이곳을 통과해 북한으로 들어갔다. 이틀 전에는 개성에 있는 영통사라는 절을 복원하는 불사(佛事)를 위해 천태종 관계자 10명이 이곳을 통해 개성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이처럼 금강산 관광 같은 방북뿐만 아니라 일반 목적의 방북도 활짝 열려 있다.

용천까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출경동 출입심사대에서 ‘출발’ 도장을 찍어준다(왼쪽). 차장 대신 헌병이 탑승해 도라산역을 오고 가는 열차. 김중태 남북출입 사무소장(원 안).

출경장 대각선 맞은편에는 입경동(入境棟)이 있는데, 북한에서 돌아오는 한국인과 회담 등을 위해 한국을 방문하는 북한인은 이곳을 통과해 대한민국에 들어온다.

출경장에서 남쪽으로 100여m쯤 떨어진 곳에 도라산역이 있다. 이 역 이름은 출경동 바로 북쪽에 있는 156m 높이의 야산인 ‘도라산(都羅山)’에서 따왔다. 통일신라는 말기에 이르러 어리석은 정치와 정쟁을 거듭하다 경순왕 때 민심을 휘어잡은 고려에 나라를 넘기고 항복했다(935년). 왕건은 투항한 경순왕을 정승공에 봉하고 자신의 딸인 낙랑공주와 혼인케 한 뒤 개성에서 불과 20k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이곳에 머물게 했다. 이때 경순왕은 볼모처럼 지내고 있는 자신이 한심스러웠는지 서라벌이 있는 남쪽을 바라보며 자주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그러자 부인인 낙랑공주는 ‘울화를 버리고 이곳을 지키며 영원히 살겠다고 마음먹으라’는 뜻으로 근처 야산에 ‘영수암(永守庵)’이라는 암자를 지어주었다. 이 암자 때문에 이 산은 ‘신라(羅)의 도읍(都)이 있는 산’이라는 뜻의 도라산으로 불리게 됐다고 한다. 경순왕은 결국 이곳에서 세상을 떴는데, 그의 묘는 이곳에서 가까운 연천군 장남면에 자리잡았다.

용천소학교의 어린이들은 북한의 대기근 기간인 1993년부터 97년 사이에 태어났다. 이들은 굶주림을 뚫고 용케 살아남았는데 그만 폭발사고로 인해 많은 수가 희생됐다. 용천사고는 김정일에 대한 과잉경호도 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그런데도 북한은 ‘인민군 창건일 전야인 4월24일 요란한 야회(夜會·댄스파티)를 열었다’고 조선중앙통신은 보도했다.

경순왕 최후 맞은 도라산 … 신록은 더없이 싱싱해

용천까지 철마는 달리고 싶다

도라산역 국제선 플랫폼에 선 이수철 부역장(위).경의선 열차를 타고 도라산역을 찾는 관광객. 이곳을 지키는 헌병은 종종 관광객들의 사진 모델이 돼준다(아래).

김정일은 대기근과 사고에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세력만 끌고 나가는 자질 없는 지도자상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그를 도라산에서 최후를 맞이한 경순왕에 비교하는 것은 무리일까. 역사의 반복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라산의 신록은 더없이 싱싱했다.

도라산역에는 민통선 남쪽인 임진각역에서 들어오는 열차를 타고 많은 관광객이 들어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많은 사람이 신국도 1호선을 운행하는 관광버스를 타고 이곳에 도착했다. 인터넷으로 미리 신청한 뒤 민통선에서 간단한 신원확인만 거치면 누구나 이곳을 둘러볼 수가 있다는데, 관광객 가운데에는 외국인도 적지 않았다.

도라산역은 국내 유일의 국제선역으로 건설됐다. 이 역에 있는 여러 개의 철로 사이에는 국내선 승객과 국제선 여객을 구분하기 위한 투명 방음벽이 설치돼 있었다. 도라산역을 찾는 관광객은 방음벽 이쪽의 국내선 플랫폼에서만 타고 내린다. 그리고 휴전선을 지나 북한은 물론이고 중국 러시아까지 갈 승객은 방음벽 저쪽의 국제선 플랫폼을 이용해야 한다.

하지만 방음벽 저쪽의 국제선 플랫폼은 적막강산이었고 철도 또한 누렇게 녹이 슬어 있었다. 이유는 북한이 그들이 건설하기로 한 북측 경의선 단절 구간을 이어주지 않았기 때문. 이 플랫폼에서 역 대합실로 이어지는 지하도에는 출경장에서 본 것과 같은 검색대와 출입심사대가 설치돼 있었다. 현재 북측은 우리가 지원하는 자재와 장비로 단절된 경의선 연결 작업을 하고 있다. 이 공사가 끝날 때까지 이 시설도 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어야 한다.

철도가 이어져 있었다면 북한은 훨씬 더 많은 구호품을 주민 눈에 띄지 않게 받아 용천역까지 바로 수송할 수 있었을 것이다. 2002년 7·1 경제관리개선조치가 진정으로 경제 회생을 위한 비책이었다면 북한은 경의선부터 잇는 적극성을 보였어야 한다. 처참하게 파괴된 용천역 일대 사진과 관광객으로 붐비는 도라산역의 활기가 묘한 대조로 다가왔다.



주간동아 434호 (p26~27)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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