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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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로펌 형사사건이 전문?

대선자금 사건 거물급 의뢰인 수임 박터지는 경쟁 … 판·검사 출신 수혈 ‘빈익빈 부익부’ 심화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4-04-01 14: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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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형 로펌 형사사건이 전문?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와 관련해 문재인 전 청와대 민정수석을 중심으로 12명의 대리인단이 구성됐다. 새삼 화제가 된 것은 이 가운데 무려 8명의 변호사가 국내 대표적인 법무법인과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 특히 헌법재판소 연구부장과 대법원장 비서실장을 지냈던 양삼승 법무법인 화우 대표변호사가 노대통령 사시동기(17회)인 조대현(전 법원행정처 인사실장), 강보현 변호사와 함께 전격적으로 대리인단에 합류했다. 화우에는 노대통령의 사위가 근무하고 있기도 하다. 더구나 이곳에 대법원장을 지낸 윤관, 대법관 출신 천경송, 이용호 게이트 특검을 지낸 차정일 변호사 등이 고문변호사로 포진하고 있어, 탄핵사태의 와중에 로펌의 영향력이 새롭게 조명받고 있다.

    최근 극심한 불황의 늪에 빠진 변호사 업계가 시샘 어린 눈총을 보내는 곳이 바로 종합법률회사, 즉 로펌이다. 특히 대형 로펌이 자신의 고유 영역이던 기업 인수·합병 및 채권발행 등 국제계약과 관련된 ‘섭외 및 자문 업무’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송무 분야’, 특히 형사사건에 뛰어들면서 변호사 업계의 생존경쟁이 더욱 치열해졌다는 분석이다. 형사 분야의 서비스 수준이 로펌의 미래를 좌우한다는 분석까지 나오는 가운데 대형 로펌들은 고위 판ㆍ검사 출신 수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인수·합병사건 95% 6개 업체 독식

    100여개에 달하는 국내 로펌 가운데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회사는 4대 대형 로펌(김&장, 세종, 태평양, 광장)과 이를 바짝 뒤쫓고 있는 화우와 율촌 등 6개에 불과하다. 기업의 인수·합병(M&A)에 관련된 사건의 경우 95% 이상을 이들 6개 업체에서 소화하는 형편이다.

    최근 이들 대형 로펌들은 각기 쟁쟁한 인물로 구성된 형사팀을 운영하면서 사건 유치에 나서고 있다. 특히 지난해 대북 비밀송금 사건과 이후 불거진 불법 대선자금 수사 등 대형 사건이 잇따라 터진 뒤 정치인 기업인 등 거물급 의뢰인이 늘어나면서 생각보다 짭짤한 수익을 이 분야에서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각 로펌의 송무 분야 매출의 4분의 1 이상을 형사 분야가 차지하기 시작했다.



    “구속 이전 단계에서는 검찰 출신 변호사가 유리하고, 사건이 법원으로 넘어가면 판사 출신 변호사가 적합하다는 것은 상식에 속합니다. 로펌에는 명망 있는 모든 변호사가 팀으로 움직이기 때문에 훨씬 유리합니다.”(A로펌 5년차 변호사)

    현재 우리나라 형사소송 과정은 검찰이 구속수사를 지나치게 앞세우고 있어 다양한 경력의 변호사를 앞세운 로펌이 이에 더 합리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소송비용도 일반 변호사와 큰 차이가 없어 200여개나 되는 중소 법무법인들이 형사사건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경우 변호사 업계는 또 한 차례 구조개편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다는 게 로펌 관계자들의 분석이다.

    이에 대해 서초동에서 개업 중인 개인 변호사들은 “로펌의 조직적인 팀워크가 장점이 아니라 최근 로펌으로 이직한 저명한 변호사들이 빛을 발하는 셈이다”며 “로펌을 한번 이용해본 이들은 이른바 신출내기 변호사들의 일처리에 실망해 사건을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고 반박하고 있다.

    대형 로펌 형사사건이 전문?

    거물급 법조인들의 로펌행(行)이 더욱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대표적 사례로 노무현 대통령 탄핵소추 대리인으로 선정된 12명의 변호사들 가운데 무려 8명이 대형로펌 소속이다.

    하지만 최근 2~3년 사이 갑작스레 불기 시작한 로펌의 적극적인 형사사건 수임 논란에 대해 로펌측은 어쩔 수 없다는 반응이다. 대다수 로펌들은 “사건 관계자가 사건을 의뢰하면 기본적으로 검토해 수임 여부를 결정하는데 애당초 민ㆍ형사 구분이 없었다”고 설명한다. 세종의 박교선 변호사는 “예를 들어 건설회사의 경우 전 세계 100여개의 사업장에서 일상적으로 형사사건이 빈발하고 있다. 기업들은 법률 분야의 원 스톱 서비스를 요구하는데 이를 외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애당초 국내 로펌들의 형사 분야 개척이 미흡했다는 얘기인 셈이다.

    일각에서는 명망가에 의존하는 대형 로펌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한다. 로펌은 적잖은 명망가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른바 회사가 금전적 이득을 바라보고 무차별적으로 형사 수임에 나서는 것은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지적이다. 이른바 개인변호사가 아닌 기업가로서의 윤리 문제가 대두될 수 있다는 것.

    이와 관련해 세종은 최근 전두환 전 대통령의 변호 의뢰를 거부하기로 자체 회의에서 결정했으나 전씨의 차남 재용씨 사건은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형사사건에 있어서 로펌의 윤리성이 한 차례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역으로 “변호사의 윤리상, 의뢰사건을 거부한다는 것도 부당하다”는 반론도 제기된다.

    심지어 법무법인 ‘광장’의 경우 대표변호사인 서정우 변호사는 불법 대선자금 수수로 인해 구속됨으로써 오랜 기간 쌓아온 명성에 치명타를 입기도 했다. 서변호사는 로펌 시절 패소율 0%를 기록하는 신화를 남기기도 했다.

    적자를 면치 못하는 변호사 업계가 로펌을 바라보는 시선은 차갑다. 이제 막 사법연수원을 마치고 서초동에 둥지를 튼 한 변호사는 “어차피 대형사건은 일반 변호사의 몫이 아니지만, 전관예우를 바라는 법률 소비자와 로펌의 사업확장으로 인해 변호사 업계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은 갈수록 심화될 것 같다”고 한숨만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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