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9

2004.04.08

젊은 포스코 ‘중국’은 없다?

세대 교체 등 이구택 회장 체제 강화 … 중국 일관제철소 진출 유보 TJ측과 이견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03-31 18: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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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젊은 포스코 ‘중국’은 없다?

    서울 삼성동 포스코 사옥(왼쪽)과 3월12일 주총에서 재선임된 이구택 회장.

    한국 철강업계의 맏형 포스코의 임직원들은 자회사인 포스코건설 박득표 회장이 3월18일 주총에서 물러나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박 전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의 부산상고 선배인 데다 노대통령도 박 전 회장을 호의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주총 전날까지만 해도 포스코 임직원들 사이에서 박 전 회장의 유임은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포스코건설은 이날 한수양 전 포스코 부사장을 대표이사 사장으로 선임하고, 대표이사 회장 자리를 없앴다.

    당연히 박 전 회장의 퇴임을 둘러싸고 무성한 뒷말이 나왔다. “이구택 포스코 회장이 포스코건설 주총을 앞두고 박 전 회장의 용퇴를 직접 요청했다”, “이회장이 선배인 박 전 회장의 존재를 부담스러워했다”, “노대통령을 너무 믿다 정부 관계자들의 눈 밖에 난 것 아니냐”, “청와대 민정팀이 브레이크를 걸어 연임이 무산됐다”는 등의 소문이 그것이다.

    현재까지 확인된 사실은 박 전 회장의 퇴임이 포스코측이 공식적으로 얘기하는 ‘후배들을 위한 용퇴’는 아니었다는 점이다. 박 전 회장은 처음 ‘노심’(노대통령의 뜻)이 자신에게 있다면서 퇴임을 완강히 거부했고, 이 과정에서 정부 관계자들과 밀고 당기기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박 전 회장이 ‘노심’까지 거론하면서 저항하자 이희범 산업자원부 장관이 청와대측의 뜻을 확인한 후 박 전 회장 퇴임을 관철시킨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박득표 전 회장 퇴임 뒷말 무성

    포스코 안팎의 관심은 이 과정에 과연 ‘노심’이 개입됐는지의 여부. 포스코 일각에서는 “노대통령이 박 전 회장에게 뭔가 섭섭한 게 있는 것 아니냐”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그러나 노대통령의 측근이자 박 전 회장의 부산상고 동기인 신상우 전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수석부의장의 한 측근은 “노대통령이 민영화된 기업의 경영진에 관한 일까지 챙긴다는 얘기는 난센스”라고 주장했다.



    어쨌든 박 전 회장의 퇴임으로 이회장이 그동안 표방해온 ‘젊은 포스코(Younger Posco)’ 만들기가 탄력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아무리 포스코 본사 임원진의 연령을 낮춘다고 해도 박 전 회장 같은 포스코 창업세대가 자회사 경영진에 포진해 있는 이상 이회장의 ‘젊은 포스코’ 기치는 빛이 바래기 때문이다. 이회장은 “포스코는 국내 다른 대기업보다 평균 연령이 다섯 살 정도 많은 상황”이라고 지적해왔다.

    포스코가 3월12일 주총에서 세대 교체를 단행한 사실도 이회장의 이런 의지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포스코는 이날 총 34명의 임원 중 장기 재임 임원 7명을 퇴임시켰다. 이에 따라 임원 평균 재임기간이 기존의 5.3년에서 절반 수준인 2.7년으로, 평균 연령은 56세에서 54세로 젊어졌다. 주총 이후 단행된 후속 인사에서도 30여명의 고참급 실장 및 팀장들이 퇴진하고 더 젊은 직원들이 이 자리를 채웠다.

    포스코 임직원들은 대체로 이를 반기는 분위기. 팀장으로 발탁된 한 간부는 “이번에 회사를 떠난 분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심각한 인사 적체가 조금은 풀리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한 과장급 직원도 “그동안 하위 5% 직원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구조조정을 해왔기 때문에 고참 직원들이 떠난 것이 갑작스러운 일은 아니다”면서 “직원들 입장에서는 겉으로 드러내놓고 말은 할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포스코 안팎에서는 이회장에 대해 의외로 빨리 포스코를 안정시킨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분위기다. 특히 지난해 3월 당시 유상부 회장이 임기 1년을 남겨두고 정부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물러나면서 포스코에 또다시 ‘외풍’이 불어 닥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의 시각도 있었지만 이를 단숨에 불식하고 포스코를 순항시키고 있다는 것. 이회장은 3월12일 주총에서 임기 3년의 대표이사 회장으로 재선임됐다.

    이회장은 그동안 박태준 명예회장(TJ) 등 창업 공신들과도 일정한 거리를 둬왔다. 당연히 이들 사이에서는 “이회장이 ‘젊은 포스코’를 방패막이로 내세워 창업세대를 배제한 채 자신의 체제를 점점 더 강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이에 대해 포스코 내부에서는 “창업세대의 불만은 자신들의 입지가 좁아지는 데서 나오는 것”이라면서 “흘러간 물은 물레방아를 돌릴 수 없는 법”이라는 반응도 나온다.

    그러나 중국 내 일관제철소 건설을 둘러싼 논란은 간단치 않은 문제다. 지난해 4월부터 TJ측의 제안으로 중국 내에 10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려던 구상은 포스코측이 소극적인 자세로 돌아섬으로써 당분간 유보된 상태. 포스코 관계자는 “중국 정부가 핫코일을 단순 가공하는 것은 허용하지만 일관제철소 건설은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는 데다 경제성도 자신이 없어 당장은 현실화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무엇을 하겠다 이젠 답할 때”

    일관제철소란 고로(高爐·높이 솟아 있는 용광로)에 철광석과 코크스를 넣고 용해해 선철을 만드는 제선(製銑), 이 선철을 잘 늘어나면서 강인한 강(鋼)으로 만드는 제강(製鋼), 여러 가지 형태의 강재로 만드는 압연공정이 한 장소에서 일괄적으로 이뤄지는 제철소를 말한다. 쉽게 말해 포스코처럼 고로가 있는 제철소는 일관제철소라고 생각하면 된다. 한 고로가 경제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연산 300만t 규모여야 한다.

    물론 포스코가 이렇게 결정하기까지 물밑에서 치열한 기 싸움이 있었다. 이를 지켜본 한 전직 임원은 “기본적으로 TJ는 ‘포스코가 돈을 내놓아라. 그러면 포스코 창업 경험이 있는 전직 임원들을 활용해 중국에 일관제철소를 건설하겠다. 10년 후면 현재와 같은 포스코의 황금기가 끝나는데 그때를 대비해서도 중국 진출은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인 반면, 이회장은 그때마다 경제성 등 나름대로 명분을 들어 거절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 한때 포스코측에서 “현재 시험 가동 중인 파이넥스 공법의 상용화가 입증되면 그때 가서 이 공법으로 중국에 진출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그러나 TJ측에서는 현재로선 파이넥스 공법의 경제성을 보증할 수 있는 때를 기약할 수 없다는 점에서 이 역시 포스코측의 ‘거부’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포스코가 세계 최초로 상용화를 시도하고 있는 파이넥스 공법은 전(前) 처리 공정 없이 철광석과 일반탄을 그대로 용광로에 집어넣어 쇳물을 생산하는 공법으로, 생산 원가를 절감하면서 환경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중국 프로젝트와 관련한 이런 입장 차이는 근본적으로 경영 환경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 전직 고위 임원은 “우리 경제의 급팽창에 맞춰 설비 확장을 거듭해온 TJ 중심의 창업세대에게는 현 경영진이 안정적인 경영에만 집착하는 것으로 비치는 반면 현 경영진은 과거와 같은 확장시대는 이미 끝났고, 이제는 주주 중심의 시대가 왔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설명했다.

    현재로서 안타까운 점은 중국 진출을 둘러싼 이런 논란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사실이다. 어찌 보면 시간이 해결해줄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 그러나 세계의 거의 모든 일류 기업이 중국을 바라보고 있는데, 포스코가 나름의 중국 시장 진출 전략이 없는 것은 포스코의 ‘약점’으로 지적될 수 있다. 한 전직 임원은 “중국 프로젝트와 관련해 TJ가 부담스럽다면 TJ를 배제할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이제는 이회장이 말하는 ‘젊은 포스코’도 좋지만, 과연 ‘젊은 포스코’가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답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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