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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예수의 수난)’

신앙 재무장, 경건한 스턴트

  •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신앙 재무장, 경건한 스턴트

신앙 재무장, 경건한 스턴트
멜 깁슨이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를 만들면서 품었던 의도는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마지막 날을 그대로 재현하고 싶어했다. 그는 배우들에게 아람어와 라틴어로 대사를 하게 했고(심지어 깁슨은 이 영화에 자막도 달지 않을 생각이었다!) 복음서의 내용을 대부분 그대로 따랐다.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경건한 스턴트이다.

영화는 잔인무도한 스턴트이기도 하다. 이 영화에서 가장 공들여 묘사한 부분은 예수에게 가해진 모든 끔찍한 신체적 고문이다. 시카고 선타임스의 평론가 로저 이버트는 이 영화의 등급에 대해 언급하며 폭력의 정도만 따진다면 R등급 대신 NC-17이 더 어울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영화의 폭력은 종교적인 드라마보다 스플래터(사지를 절단 내는 잔혹 공포극) 영화에 더 잘 어울린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생각해보면 기독교 문화의 시각 예술은 언제나 은밀한 사도 마조히즘을 품고 있지 않았던가.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특별한 길을 개척했다고 믿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멜 깁슨이 이 스턴트를 통해 원했던 건 무엇일까? 개인적인 신앙 고백일까? 아마 그럴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니코스 카잔차키스나 프랑스와 모리악과 같은 사람들의 그것과 다르다. 그의 고백에는 갈등이 없다. 그의 믿음은 단순하고 확고하다. 그는 지금까지 그가 믿어온 신앙에 충실하고 다른 신자들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는 인류를 위해 죽은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보여주며 그 신앙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보길 바란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진짜 목적은 현대사회에서 믿음을 잃어가는 기독교 신자들을 재무장시키는 것이다.

한 가톨릭 신자의 소박한 신앙 고백이 여기서부터 슬슬 위험하고 미심쩍은 프로젝트로 변해간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그 단순하고 융통성 없는 태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문제를 일으킨다. 경건하고 진지한 신자들의 작품이 종종 그렇듯,‘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타협과 내적 체험의 자유를 허용하지 않는다. 영화는 다국적 거대기업에서 생산한 기성품처럼 한 가지의 체험만 강요한다. 그 결과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의 강렬한 체험은 다양한 영적 경험보다 이미 같은 신앙을 공유하고 있는 폐쇄된 그룹의 사람들을 위한 결속회 정도로 변해간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는 제한된 의미에서 좋은 영화다. 일단 그들은 원작의 힘을 빌리고 있다. 모든 인류의 죄를 사하기 위해 십자가를 짊어진 한 남자의 이야기는 어쩔 수 없이 아름답다. 의도가 무엇이건, 영화의 진지하고 타협을 모르는 접근법은 강렬하다.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가 주는 체험은 ‘왕중왕’ 따위의 감상적인 스타일에 비할 바가 아니다. 하지만 이 체험이 이 다원주의 사회에 끼치는 영향이 결코 긍정적이지만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은 여전히 남는다.





주간동아 428호 (p92~93)

듀나/ 영화평론가 djuna0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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