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26

2004.03.18

지구촌 44개 박물관을 찾아서

  • 입력2004-03-12 13:5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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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구촌 44개 박물관을 찾아서
    “박물관과 ‘내’가 자연스레 소통할 때 박제된 삶의 흔적들은 쇼케이스를 박차고 나와 내 삶 속으로 성큼 들어온다. 박물관에 대한 나의 말 걸기는 그것을 향한 소박한 첫걸음이다.”

    흔히 박제된 공간으로 여기기 십상인 박물관을 ‘지금 여기 이곳’으로 불러낸 사람은 역사학자이자 박물관학 연구자인 성혜영씨(45·사진)다. 일반인들에게 ‘낡음’ ‘고리타분함’ ‘지루함’ ‘딱딱함’ ‘전통’ 등의 이미지를 던져주는 박물관이 그에게는 ‘다양한 인간의 복합적인 삶으로 점철돼 있는, 해석의 여지가 무궁무진한 동서고금의 인생이라는 숲’이다.

    최근 펴낸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휴머니스트 펴냄)에서 성씨는 자신이 직접 돌아본 세계 12개국 44개 박물관을 이채롭게 소개하고 있다. 우선 그는 수집·보존·교육이라는 박물관의 기본 개념을 갖고 있는 최초의 박물관인 알렉산드리아 무제이온(기원전 3세기)과 대영박물관, 프랑스 에코뮤지엄 등을 통해 박물관의 역사와 진화과정을 보여준다. 대체로 박물관으로 향하는 그의 발걸음은 자유롭다. 네덜란드 호게 벨루의 숲 속에 파묻혀 있지만 현대 거장들의 작품이 다수 소장된 크롤러-뮐러미술관이나 아일랜드 이민사박물관, 또는 케임브리지의 작은 미술관 케틀즈 야드, 뉴욕의 쿠퍼-휴이디자인박물관 같은 곳은 특히 눈길을 끈다.

    “박물관이나 유물과 친해지는 일은 친구 사귀는 방식과 비슷합니다. 오래 두고 천천히 깊이 사귀어야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있듯, 서로 친해지는 데는 정성이 필요합니다. 박물관과 친해지려는 마음이 있다면 우선 한 가지 유물이나 작품에서부터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그는 더 파격적인 방식도 내놓는다. 박물관측이 제시하는 모든 정보를 무시하고 ‘내 맘대로’ 보라는 것. 사실 학문적 목적이 아닌 이상 ‘내 식대로 탐색’하는 데 방해가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서강대 사학과와 동대학원에서 역사를 공부한 뒤 홍익대 미대에서 미술사를 공부한 그는 한때 열정적인 예술가나 훌륭한 역사학자가 되기를 꿈꾸었지만 그 길을 가지 못해 애를 태우다 우연히 박물관과 조우했다.

    “박물관과 맺은 인연을 통해 진정한 저를 발견할 때마다 세상이 아주 조금씩 더 깊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속에서 저는 ‘예술가’의 열정을 사랑하고, 역사학자가 된 듯 지적 유희를 나름대로 즐길 수 있는 여유도 갖게 됐습니다.”

    영국 런던의 시티대 예술경영대학원에서 박물관 경영학을 공부한 그는 이후 박물관 큐레이터, 대학강사 등을 지냈다. 현재 국내 박물관을 자신의 시각으로 재해석하는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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