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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서속의 성(性) ⑮|처녀성에 관한 문제

혼인 첫날밤 흔적은 ‘신부 생명줄’

혼전 순결 잃은 경우 돌로 쳐죽여 … 신랑들 신부에 누명 씌우다 엄벌당하기도

  • 조성기/ 소설가

혼인 첫날밤 흔적은 ‘신부 생명줄’

혼인 첫날밤 흔적은 ‘신부 생명줄’

르누아르의 ‘잠든 나부’.

처녀성에 대한 관념은 나라와 종족의 문화에 따라 다르다. 결혼 전에 처녀성을 훼손하는 것을 신성모독과 같이 여겨 철저히 금기시하는 문화권이 있는 반면, 처녀성 자체를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문화권도 있다. 심지어 신랑과 교합하기 전에 처녀성을 버리도록 하는 종족들도 있다.

뉴기니 바나로족의 특이한 혼인 관습을 소개한 독일의 인류학자 도룬 바르트에 따르면, 바나로족의 신부는 신랑과 첫날밤을 보내지 않는다. 신부와 맨 먼저 성교를 하는 사람은 아버지의 친구이거나 아버지다. 이때 성관계 상대는 정령(精靈)의 대리자가 된다. 그리고 처녀성이 파기되는 장소는 정령을 모시는 사원이다.

신부와 신랑이 성교를 할 수 있는 시기는 신부가 아버지의 친구나 아버지의 씨를 잉태하여 아들을 낳은 이후다. 그 아이를 가리켜 ‘영혼의 아들’이라고 부르는데, 친아들은 아니지만 부모는 그를 아들로 맞이해야 한다.

이런 극단적인 예가 아니더라도 신부가 첫날밤을 신랑이 아닌 다른 남자와 지내야 하는 관습은 서구를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발견된다. 신부와 첫날밤을 보낼 수 있는 권리, 즉 초야권(初夜權)을 봉건 영주가 쥐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렇듯 처녀막을 신랑이 아닌 다른 남자가 파기하는 관습을 파소의식(破素儀式)이라고 한다. 파소의식은 성인식과도 관련이 있는데, 아랍 지역에는 지금도 여성 음부의 성감대를 베어내는 할례를 행함으로써 일종의 파소의식을 치르는 종족들이 있다.



신랑이 아닌 다른 사람이 처녀막을 파소하는 이러한 관습은 처녀막을 훼손했을 때 흘러나오는 피에 대한 공포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거기에는 그 피를 불행을 가져오는 조짐으로 여겨, 불행을 막을 만한 영력을 가진 자가 대신 그 피를 보게 한다는 뜻이 숨어 있다. 하지만 이것은 초야권 또는 파소권을 가진 자의 교묘한 자기 변명이자 궤변일 수도 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혼전 순결을 강조한 민족으로 처녀성을 잃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그 나라에서 처녀성, 또는 처녀막은 정상적인 혼인관계에서만 파기돼야 했다. 그래서 결혼 첫날밤에 처녀임을 증명하는 흔적을 남기는 일이 참으로 중요했다. 처녀임을 증명하는 흔적을 제대로 남겨놓지 않으면 법적으로 아주 불리한 처지에 놓일 수도 있었다.

이스라엘에는 신랑이 첫날밤을 보내고 나서 신부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처녀성을 문제 삼아 신부를 버리는 ‘나쁜 남자’들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신명기 법전에는 그러한 남자들에 관한 규정을 제법 엄격하게 마련해놓고 있다.

신랑이 신부에게 첫날밤 처녀의 흔적을 보지 못했다고 누명을 씌우면 신부의 아버지는 억울한 사정을 성읍의 장로들에게 호소하게 된다. 그때 장로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들고 가야 할 증거물은 자기 딸의 첫날밤 혈흔이 묻은 잠옷이다. 그 잠옷을 확보하지 못한 신부의 아버지는 법정에 호소할 근거가 없게 되는 셈이다.

장로들이 성읍 문에서 신랑과 신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증거물을 살핀 다음 판결을 내린다. 신부가 처녀였는데도 신랑이 신부에게 누명을 씌운 경우에는 신랑을 잡아다 매로 때리는 형벌을 내렸다. 그리고 100세겔(세겔은 은화의 일종으로 2세겔이 숫양 한 마리 가격에 해당했다고 함)의 벌금을 신부 아버지에게 내고 일생 동안 신부를 버리지 못하는 벌(?)을 당하게 된다. 같이 살기 싫은 여자와 평생을 살아야 하니 그보다 더한 벌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조사결과 신랑이 신부에게 누명을 씌운 게 아니라 신부가 정말로 처녀가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사람들로 하여금 신부를 집에서 끌어내어 돌로 쳐죽이게 하는 석형(石刑)을 내린다. 비록 신부가 처녀가 아니더라도 신랑이 입을 다물어주면 형벌을 면할 수도 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첫날밤을 보내기도 전에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조용히 파혼하려고 했던 요셉이 그러한 남자일 것이다.

지금도 이슬람권에는 신명기 법전의 규정대로 처녀가 아닌 신부에게 석형을 가하는 나라들이 있다. 과부로 있다가 임신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처녀라는 흔적을 어떻게 남기느냐 하는 것은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요즘은 과학의 발전으로 성관계를 하지 않고도 얼마든지 처녀막이 찢어질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운동을 무리하게 했거나 오래 서 있는 직업에 종사하거나 자위행위로 인해 손상되는 등 여러 가지 원인으로 처녀막은 성행위와 상관없이 훼손될 수 있는 법이다. 성형수술의 발달로 처녀막 복원수술까지 가능하게 된 시점에서 처녀막의 유무로 순결을 따지는 것은 난센스가 됐다.

처녀막의 훼손으로 인한 혈흔이 처녀라는 사실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이었다면 처녀이면서도 억울하게 석형을 당해 세상을 떠난 이스라엘 여자들이 무수히 많았을 것이다.

또한 처녀가 남자와 약혼한 뒤에 다른 남자와 성읍에서 만나 교합하게 되면 그 두 사람은 돌에 맞아죽게 된다. 그 남자에게 강간을 당한 경우라 해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면 어떤 하소연도 통하지 않았다. 일을 당할 때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는 소리를 질렀느냐, 지르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법률적 판단의 중요한 근거인 셈이다.

그러나 남자가 처녀를 들에서 만나 강간한 경우에는 여자가 소리를 질렀느냐 지르지 않았느냐 하는 것이 그리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성읍 밖에서는 여자가 소리를 질러도 도와주려는 자가 나타나기를 기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이 경우에는 남자만 석형을 당하고 여자는 형벌을 면할 수 있다.

남자가 약혼하지 않은 처녀를 간통하다 현장에서 들키면 처녀의 아버지에게 50세겔을 내고 그녀를 아내로 삼아 일생 동안 버리지 않아야 한다. 그런데 남자가 유부녀와 간통하면 그 여자와 함께 석형을 당해 죽게 된다. 그러니까 성적 대상이 약혼하지 않은 처녀인가 유부녀인가에 따라 남자의 생과 사가 결정된다. 그러니 잠깐의 성적 만족을 위해 생사를 거는 남자라는 동물은 어리석기 그지없다.

신명기 법전에 보면 몽정을 한 남자에 대한 규정도 있다.

‘너희 중에 누가 밤에 몽설함으로 부정하거든 진 밖으로 나가고 진 안에 들어오지 아니하다가 해질 때에 목욕하고 해가 진 후에 진에 들어올 것이오.’(신명기 23:10,11)

월경을 하는 여자가 부정한 것처럼 몽정을 한 남자도 부정하다고 했다. 그런데 월경인 경우에는 대개 일주일 간 부정하나 몽정인 경우에는 하루만 부정하다. 하지만 여자는 한 달에 한 번 월경을 하지만 청년들은 한 달에 몇 번씩 몽정을 하므로 부정한 날수로 따지면 둘 다 어슷비슷하겠다.

이와 같이 몽정하는 남자에 관한 규정까지 있는 것을 보면 신명기 법전은 꼼꼼하기 이를 데 없다. 하긴 똥을 어떻게 누어야 하는지에 대한 규정까지 있으니 말해 무엇하리요. 몽정에 바로 이어 대변에 관한 규정이 나온다.

‘너의 진 밖에 변소를 베풀고 그리고 나가되 너의 기구에 작은 삽을 더하여 밖에 나가서 대변을 통할 때 그것으로 땅을 팔 것이요, 몸을 돌이켜 그 배설물을 덮을지니.’

수십만명이 출애굽 하여 가나안으로 향해 가는 여정에 있으므로 화장실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변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백성들의 건강이 크게 좌우되므로 이런 규정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처녀성과 관련해 잔혹하리만큼 엄격하게 법적 조치를 취한 것도 그 당시 이스라엘의 상황으로는 합당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대변 규정에서도 알 수 있듯 법은 대부분 시대의 산물이다. 그런데 시대의 산물인 법을 초시대적으로 절대 율법화하는 데서 많은 오류가 범해지고 있다. 예수는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 여자를 앞에 두고도, 절대 율법을 주장하는 이스라엘 종교에 맞서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쳐라”고 하는 참으로 혁명적인 발언을 했다.



주간동아 426호 (p6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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