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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서울시 불도저 행정

청계천 물길 역사 그리 하찮은가

시민단체 문화재 전면 발굴 후 복원 요구 … 무리한 공사 강행 재고 충분한 논의를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청계천 물길 역사 그리 하찮은가

청계천 물길 역사 그리 하찮은가

동대문 쪽에서 발견된 오간수문지 기초석.

아, 그건 공사를 할 수도 있고 안 할 수도 있고 그런 거예요. 나 참, 답답한 사람들이네.”

2월26일 서울시청 기자실에서 “문화재 복원에 대한 정책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왜 공사를 하느냐”는 질문에 양윤재 청계천복원추진본부장이 내놓은 답변이다. 양본부장은 문화재 복원은 언제라도 할 수 있지만 하천공사는 홍수를 막기 위해 서둘러 진행해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그러나 서울시는 현재 상태에서 전면적인 문화재 발굴조사나 복원계획 수립 뒤에 하천공사를 하는 것이 왜 홍수 피해를 불러온다는 것인지 분명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 더욱이 문화재를 복원하게 되면 다시 뜯어내야 할 공사를 왜 서둘러 하는지 의구심을 갖는 이들이 많다.

하천공학 전문가인 정동양 교원대 교수는 “하천공사를 할 때는 천재지변에 대비하면서 공사하는 게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며 “홍수 방지 때문에 문화재 발굴에 신경 쓸 수 없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서울시가 공사를 서두르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청계천 복원공사(2005년 9월 완공 예정)는 설계 후 철거와 신축이 동시에 이뤄지는 일명 ‘패스트 트랙 턴키(fast-track turnkey)’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이는 공사 기간을 단축할 수는 있지만 문화재 보존이나 조사 연구에는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는 방식이다.



따라서 문화연대, 참여연대, 경실련 등 11개 시민단체가 모여 만든 ‘올바른 청계천 복원을 위한 연대회의’(이하 청계천연대회의)는 “이명박 시장이 정치적 야심을 위해 자신의 임기 내 완공을 목표로 서두르고 있다”며 문화재 전면 발굴조사 뒤에 복원계획을 다시 세울 것을 요구하고 나섰다.

여기에 서울시의 ‘안일한’ 인식이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하고 있다. 청계천 복원 실시설계에 대한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의 심의가 열린 2월24일 책임 있는 서울시장이나 부시장, 추진본부장 누구도 이 자리에 참석하지 않았다. 여기서 이희덕 시민위원은 “실시설계 심의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이미 광교의 상판공사를 하고 있고, 수표교 양쪽 석축공사를 하고 있는 것은 문제다”고 지적했다. 더욱이 역사문화 분과위원회는 실시설계 내용이 “복원사업이 아니라 개발사업이며 파괴사업”이라고 지적하고 회의에서 퇴장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엄청난 양의 유적과 유구 확인 문화재 보고

복원사업을 지휘하고 있는 양본부장의 태도에도 문제가 많다. 양본부장은 지난해 9월1일 서울시 의회 답변에서 “전 세계적으로 하천을 복원하면서 문화재 유물 발굴조사를 하는 예가 없다. 하천은 삶의 터도 아니고 궁궐터도 아니었다. 매년 물이 들어오고 나가는 곳이며, 청계천은 5m 간격으로 기둥이 심어져 있다. 기둥의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다 파헤쳤다. 설령 유물이 있다 해도 상당 부분 남아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런 예상과 달리 청계천은 문화재의 보고였다. 12월부터 3개월간의 청계천 부분 발굴조사 결과 조사지역마다 기대 이상의 유구(遺構·지난날의 토목 구조를 알아볼 수 있는 실마리가 되는 구조물)가 발굴됐다. 태종 12년(1412년)에 석교로 처음 축조한 모전교 주변에서 좌안 100m, 우안 22m에 이르는 양안 석축이 발굴되었으며, 수표교 터에서는 기초석이 확인됨으로써 이 다리의 교각 배치와 규모 등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를 확보했다. 광통교와 동대문 쪽의 오간수문지(五間水門址) 발굴 현장에서도 의미 있는 유적과 유구가 확인됐다.

모전교 석축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영조가 1773년 ‘개천 양쪽 언덕이 장마에 무너져 개천을 막을 것이 염려돼 버드나무를 심었지만 튼튼하지 못해 석축을 쌓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그 석축의 원형이 그대로 보존돼 있었던 것이다. 문화재계에선 이에 대해 “중흥기를 보였던 조선 후기의 경제력을 보여주는 상징적 구조물”이라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수표교의 기초석은 수표교의 원형을 알 수 있게 한다. 수표교는 1958년 청계천 복개공사 때 장충단공원으로 옮겨졌는데 거기에는 교각이 4열로 배치돼 있다. 그러나 이번에 드러난 기초석상에는 5열 배열을 이뤄 관계자들을 놀라게 했다. 특히 1441년 청계천의 홍수에 대비하기 위해 수위측정용으로 세운 수표(보물 838호·현재 동대문구 청량리동 세종대왕기념관 소재)의 기초석도 발견하는 성과를 얻었다.

남대문로의 다리인 광통교는 그동안 한 차례 축조과정을 거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수차례 증축한 것으로 드러나 주목을 끌었다. 이는 광통교 남쪽 교대 뒤편의 토층 상태, 교각과 교단 구성 등을 통해 알 수 있다. 당시 토목기술의 변천과 다리 형태의 특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유구임이 입증된 것이다.

청계천 문화재 발굴조사 기관인 중앙문화재연구원 조상기 조사연구실장, 홍지윤 팀장 등 현장 관계자들은 오간수문지의 기초석 발견을 가장 큰 성과로 꼽았다. 1760년(영조 36년) 하천 준설 모습을 담은 ‘준천도(濬川圖)’와 1900년대 사진을 통해 그 원형을 확인할 수 있는 오간수문지에서는 외부인이 침입하지 못하게 막아놓은 쇠창살(임꺽정이 한성을 탈출할 때 뜯고 도망쳤다는 얘기가 전해져옴)과 돌거북 2점, 많은 백자 조각이 수거됐다. 기초석 주변에는 지름 10cm 정도의 나무 기둥이 빼곡하게 박혀 있었는데 다리를 만들기 위해 개천 바닥을 촘촘히 다진 조선시대 다리 건축기법을 엿볼 수 있는 흔적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재가 발굴됐음에도 서울시의 무리한 공사 강행으로 인해 이미 한 차례 훼손 논란을 겪었다. 종로구 무교동 네거리 옛 모전교 주변 공사 현장(동아일보사 앞)에서 호안석축의 기초석 등이 수습되지 않은 채 시공업체가 터파기 작업을 하는 바람에 가장 보존 상태가 좋았던 호안석축 일부가 훼손된 것. 현재 호안석축과 광통교 교각 등은 서울역사박물관에 임시 보관되어 있지만 장소가 비좁아 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어디에서 나왔는지 확인할 수 없는 가공석재들은 중랑하수처리장 근처에 모아두고 있어 그에 대한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청계천 물길 역사 그리 하찮은가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각계에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3월5일에는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사적분과와 매장문화재분과 위원들이 청계천 문화재 발굴현장을 조사한 뒤 “청계천 문화재의 복원 방향을 정하는 ‘청계천복원 자문위원회’를 하루빨리 만들라”고 서울시에 권고했다.

김영주 청계천 복원 시민위원회 역사문화분과장과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 등 5명은 3월5일 이시장과 양본부장을 문화재 훼손 등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직무유기 혐의로 서울지검에 고발했다. 또 청계천연대회의는 “서울시가 시민들의 의견을 무시한 채 공사를 강행하고 있다”며 조만간 서울시를 상대로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에 내기로 했다. 3월 초 현재 청계천 유적 발굴의 계약기간은 불과 석 달밖에 남지 않았다. 청계천연대회의는 “지금까지 발굴된 결과로 미뤄 청계천은 부분 발굴이 아니라 전면 발굴로 바꾸고 조사 기간도 충분하게 늘려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동양 교수는 “수표교 등은 당시 조정이 백성들의 어려움을 덜기 위해 고안했던 흔적이며, 유럽보다 200년이나 먼저 관측을 시작한 증거다”며 “이런 문화재에 대한 복원계획 없이 공사를 강행한다는 것은 역사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교통이나 통행 불편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수하고 청계천 공사 착공에 지지를 보냈던 시민들은 지금 궁금하다. 장대석 하나가 발견되자 한때 공사를 중단하기도 했던 청진동 피맛골의 재건축사업과 수많은 문화유적이 나오고 있음에도 공사를 강행하고 있는 청계천복원사업이 과연 형평성에 맞는지, 맞지 않는지.



주간동아 426호 (p56~57)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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