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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美 ‘북한 자유화 법안’ 탄력받았나

‘북 생체실험’ 등 언론보도로 인권문제 집중 부각 … 법안 통과 땐 체제 전복 본격 시도?

  •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美 ‘북한 자유화 법안’ 탄력받았나

美 ‘북한 자유화 법안’ 탄력받았나

함남 요덕군에 있는 정치범 수용소를 찍은 동영상.

2월28일 제2차 6자 회담이 공동언론성명조차 채택하지 못하고 참가국 대표의 서명이 들어가지 않은 ‘의장성명’만 발표한 채 끝나고 말았다. 이러한 결과는 평화적으로 북핵 문제가 해결될 것을 기대해온 사람들에게 큰 실망이 되었을 것이다.

1차 북핵 위기 때 미국과 북한은 1년 4개월간(1993년 6월2일~94년 10월21일) 양자 회담을 계속한 후 제네바 합의를 도출했다. 그런데 양자가 아닌 6자가 모여 겨우 두 번째 회담을 열었는데 합의문이 나올 것을 기대했다면 이는 연목구어(緣木求魚)가 아닐 수 없다.

1차 위기 때 합의문을 도출했음에도 2차 위기가 닥쳐왔으므로, 미국은 협상으로만 2차 북핵위기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또 근 20만명에 이르는 지상군을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 파병해놓고 있으므로 군사력을 투사해 2차 북핵 위기를 해결하려는 모험도 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인권문제를 집중 거론해 북한에 민주화 혁명을 일으킴으로써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고 할 것으로 보인다.

탈북 화학자 “79년 생체실험 목격”

전문가들은 이러한 근거로 미국 상ㆍ하원에 동시 상정돼 있는 ‘북한 자유화 법안(North Korea Freedom Act)’을 거론한다.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상정한 이 법안이 통과되면 미국은 본격적으로 김정일 체제 전복을 시도할 것이다. 이러한 미국 정책 변화에 발맞춰 서방 언론은 북한 인권문제를 집중 거론하기 시작했다.



종종 영국은 공산주의에 대해서 미국보다 더 공격적인 성향을 띠는 경우가 많았다. 이러한 정서를 반영하듯 BBC는 2월1일 ‘악의 제국 탐험(Access to Evil)’이란 제목으로 북한을 분석한 다큐멘터리를 방영했다. BBC는 관리소·교화소·집결소·노동단련대·감옥·구류장 등 북한의 다양한 수용소 출신 탈북자를 인터뷰해 그곳에서 어떤 인권 유린이 행해지고 있는지를 보여주었다.

이 프로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1999년 11월 한국에 들어온 탈북자 권모씨(43)가 얼굴을 드러낸 채 등장해 “함북 회령에 있는 22호 관리소의 보안요원으로 근무할 때 화학무기 실험을 하기 위해 가스실에서 생체실험하는 것을 목격했다”고 진술하는 장면이었다. 자신을 완전히 드러낸 권씨가 북한이 제2차 세계대전 때 일본군과 독일군이 자행한 것과 똑같은 생체실험을 했다는 증언을 했으므로 국내 거의 모든 언론은 이를 받아 보도했다.

그러나 권씨는 22호 관리소에 보안요원으로 근무한 사실이 없다. 그는 관계기관의 조사를 받을 때 함북 새별군에 있는 종합편의사업소의 후방 지도원과 22호 관리소 근처에 있는 탄광에서 경비대장을 했다고 밝혔고, 이는 사실로 확인됐다. 그는 관계기관 조사에서도 생체실험에 대해서 진술하지 않았고 또 생체실험이 뭔지도 모른 채 한국에 들어왔다고 한다. 그런데도 직접 생체실험을 목격했다고 진술함으로써 BBC와 시청자를 속였다.

美 ‘북한 자유화 법안’ 탄력받았나

22호 관리소에 보안요원으로 근무한 사실이 없는데도 그곳에서 생체실험을 목격했다고 증언하는 권모씨.

2월27일 이번에는 일본의 유력 민간방송인 후지TV가 북한의 관리소 중에서도 가장 악명이 높은 정치범 수용소인 함남 요덕군의 15호 관리소를 찍어온 동영상을 방영했다. 요덕관리소를 촬영한 인공위성 사진은 여러 번 공개됐지만 직접 사람이 들어가 찍어온 것은 이것이 처음. 이 동영상은 이 관리소 출신 탈북자인 강철환씨 등이 확인함으로써 사실로 확인됐다.

그로부터 5일 후인 3월3일자 미국의 LA 타임스에 북한의 독가스 생체실험에 관한 기사가 실렸다. 그러나 LA 타임스는 이 진술을 한 탈북자의 얼굴과 신원을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BBC의 오보를 의식해 ‘이 탈북자는 북한에서 박사학위를 딴 화학자로 함흥에 있는 연구소에서 근무하다 2002년 한국으로 온 50대의 남자이다. 탈북자 문제를 다루는 인권단체들은 그를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고 적어놓았다.

이 기사에서 탈북 화학자는 “북한에 남아 있는 가족에 대한 보복과 제 스스로가 (가스 실험에 참여했던) 죄인인지라 진실을 밝히는 것이 쉽지 않았다”고 전제한 뒤 생체실험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79년 나는 평양 북쪽으로 15마일 떨어진 평성 근처에 있는 한 군부대 수용소로 불려갔다. 당시 화학 박사 과정생이었던 나는 청산가리와 니트로클로로벤젠을 합성해서 만든 화학물질에 대한 논문을 썼는데, 그 논문을 토대로 만들어진 화학물질에 대한 실험이 있을 예정이었다. 그곳에는 ‘토끼굴’로 불리는 철창이 있었고 그 안에는 정치범으로 불리는 수용자들이 갇혀 있었다.

그중에서 수염이 텁수룩해 나이를 짐작할 수 없고 몰골이 말이 아니게 여윈 두 명의 수용자가 휠체어로 실려 나와, 관찰자들이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한쪽 벽면에 큰 유리창을 설치해놓은 두 개의 방에 나뉘어 들어갔다. 이 방에는 실험 대상자의 표정을 상세히 살펴볼 수 있게 해주는 조명시설은 물론이고 실험대상자가 내지르는 신음과 노즐에서 분사돼 나오는 화학가스의 소리를 듣게 해주는 스피커 시스템이 설치돼 있었다.

대북 경제교류 한국만 강화

화학가스가 분사돼 나오자 한 대상자는 절망적으로 손을 휘저었다. 그러고는 괴로운 표정으로 목과 가슴을 움켜쥐더니 이내 격렬한 동작으로 죄수복을 찢으면서 온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갔다. 나는 더 이상 그를 쳐다볼 수 없었다. 나는 이 화학물질이 매우 지독해 소량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죽음에 임박한 두 사람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해 미친 듯이 절규하며 비명을 질렀는데 그들이 숨을 거두기까지는 도합 세 시간이 걸렸다. 그것을 보면서 나는 생각보다 사람 목숨이 모질다는 것을 알았다. 두 대상자가 숨진 후 방호복과 가스마스크를 쓴 사람이 들어가 시신을 무균실로 가져와 관찰했다. 그후 나는 1994년까지 사람을 상대로 한 생체실험이 행해졌다는 이야기를 북한에서 들었다.”

이 기사를 쓴 바바라 데믹은 “그는 북한에서 받은 박사학위증을 갖고 있었다. 그가 말한 생일과 한국 입국 날짜를 한국 통일부에 문의해보니 일치했다”는 말로 그를 신뢰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관계기관 또한 “그 탈북자는 조사과정에서 생체실험에 대해 진술한 바 있다. 그의 진술은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설명했으므로 LA 타임스의 보도는 사실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서방 언론의 보도는 어떤 결과를 낳을 것인가. 탈북자 이모씨(58)는 자강도 희천의 38호 군수공장에서 라디오와 무전기의 부품을 조립하는 노동자였다. 그러한 그는 지난해 5월20일 미 상원 청문회에 복면을 쓰고 참석해 “나는 38호 기업소에서 미사일을 제작하는 일을 했는데 미사일에 들어가는 유도부품은 주로 일본에서 구입해왔다. 한번은 미사일 수출 납기가 임박했는데도 부품이 도착하지 않아, 직접 차를 몰고 원산으로 달려가 만경봉호에서 막 내린 부품을 받아 희천으로 달려와 미사일을 제작한 바 있다”고 진술했다.

미사일과는 무관한 분야에 근무했던 이씨가 과장 진술을 한 것임에도 이 진술은 뜻밖의 결과를 가져왔다. 그로부터 3개월 후인 8월25일 오랜만에 만경봉호가 니가타(新瀉)항에 들어오자 일본 해상보안청과 국토교통성의 관계자들이 대거 출동해 배 안에 미사일 부품을 숨길 장소가 있는지 등을 샅샅이 조사했다. 생체실험과 관련해 적어도 LA 타임스 보도는 정확한 것으로 보이므로 이보다 더한 결과를 낳을 가능성이 높다.

일본인 납치에 이은 만경봉호 사건에 영향을 받은 일본은 즉각 외환관리법(外爲法)을 개정해 북한으로의 송금을 차단했다. 그리고 북한 선박의 일본 입항을 금지할 수 있는 ‘특정선박 입항금지법안’을 만들려 한다. 미국은 북한 자유화 법안을 준비하고 있고, 미국 일본 호주 등 11개국은 공해상에서 북한 선박을 검색하기 위해 PSI(확산방지구상)를 만들려 한다.

이처럼 국제사회는 인권을 내세워 북한에 대한 경제제재를 강화하고 있는데, 한국은 북한과의 경제교류를 강화하려고 한다. 일부 전문가는 “한국은 북핵 문제에 대해서는 미국 일본과 공동으로 대처하는 3각 공조 체제를 선택했음에도 대북 경제지원에 대해서는 미국 일본과 전혀 다른 선택을 했다. 이러한 차이가 한국과 국제사회와의 갈등을 불러올 수도 있다. 노무현 정부는 어느 것이 옳은 대북정책인지 잘 판단해야 한다”라고 지적하고 있다.



주간동아 426호 (p40~41)

이정훈 기자 ho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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