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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례대표 앞 번호 경쟁 ‘박 터져’!

명망가·지역구 공천 탈락자 등 몰려 10대 1 좁은문 … 당 지도부는 순위 결정 방식 놓고 속앓이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비례대표 앞 번호 경쟁 ‘박 터져’!

첫 여성장군 출신인 양승숙 예비역 준장(전 국군간호사관학교장)이 열린우리당(이하 우리당) 지도부와 연락을 끊고 잠적 아닌 잠적에 들어간 것은 3월4일 오후. “장군답지 못하다”는 지적에도 양 전 교장이 잠적한 이유는 지역구 공천을 받기 싫었기 때문이다. 우리당은 얼마 전 그를 충남 논산·계룡·금산 지역 후보로 확정했다. 비례대표 후보로 공천을 신청했던 그로서는 아닌 밤중에 홍두깨격이었다. 그러나 당지도부 생각은 달랐다. 당은 최초의 여성장군 등 양 전 교장이 갖고 있는 상품성이라면 ‘흥행과 이인제 잡기’란 두 마리 토끼몰이가 가능하다고 판단, 지역구에 공천한 것. 경쟁력을 갖춘 인사들이 지역구로 출마해야 비례대표 후보들의 숨통이 트인다는 현실적 계산도 들어 있었다. 양 전 교장은 당의 이런 처사를 수긍하기 힘들어하다 8일 이를 수용했다.

지역구 공천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면서 비례대표 공천경쟁이 불을 뿜고 있다. 명망가는 물론 지역구 공천에서 탈락, 또는 낙오한 인사 등이 당선 가능성이 높은 비례대표 앞 번호를 받기 위해 치열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여기에 각종 이익단체들도 ‘대변자’를 포진시키려 로비에 나서고 있다.

한나라·우리당 ‘18번’까지 안정권?

여야가 합의한 비례대표 의석수는 56석. 과거보다 10석이 늘어났지만 각 당에 공천을 신청한 인사들은 600명이 넘어 평균 10대 1이 넘는 경쟁률이다. 각각 250여명과 230여명이 공천 신청을 한 한나라당과 우리당의 경우 당선 가능한 번호는 18~20번 전후. 100여명 정도가 신청한 민주당의 경우 10번 안에 들어야 희망을 가질 수 있다. 비례대표 공천을 노리는 한나라당과 우리당 인사들은 저마다 ‘넘버18’를 확보하기 위해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다.

2000년 총선 당시 거액의 전국구 헌금을 통해 등원에 성공한 A의원. 정치권에서는 요즘 그의 동선을 놓고 말들이 많다. A의원이 우리당 고위인사를 만난 것은 2월 중순, 이후 2월 하순에는 한나라당 및 민주당의 핵심인사들과 수시로 만났기 때문이다. A의원을 만난 민주당 한 인사는 “비례대표 안정권을 보장해달라는 뜻을 우회적으로 피력하더라”고 말했다. 한나라당 한 관계자도 “2월 중순 A의원이 식사나 한번 하자고 해 만난 적이 있다”면서도 3당을 넘나드는 이 인사의 언행을 더 이상 입에 올리려 하지 않았다. 비례대표는 당선 가능한 앞 번호만 받으면 손쉽게 배지를 달 수 있어 경쟁이 치열하다. 2000년 총선 당시만 해도 A의원처럼 헌금(돈)을 내고 쉽게 의원(전국구)이 되는 경우가 많았다. 당지도부는 이렇게 마련한 자금을 격전지 실탄으로 내려보내는 게 일반적인 선거문화였다. 16대 당시 최대 헌금액은 50억원 선으로 알려졌다. 때로는 욕심이 앞서 도덕적 비난을 자초하는 경우도 생긴다. 유시춘 국가인권위원회 상임위원이 비공개로 우리당 비례대표 후보를 신청, 파문을 일으킨 것도 이런 사례로 볼 수 있다. 지난해 릴레이로 펼쳐진 불출마 대열에 합류했던 한나라당 K의원은 1월 중순, 공천심사위 김문수 위원장을 찾았다. “명분 있게 지역구를 후진에게 양보했으니 당에서 비례대표 자리를 배려해달라”는 것이 K의원의 요구. 김위원장은 “비례대표를 전원 신인으로 교체하겠다는 것은 흔들릴 수 없는 원칙”이라며 K의원의 공세를 피했다. 지역구 공천 탈락 의원 가운데 상당수는 ‘탈당 및 무소속 출마 불사’를 외친다. 그러나 구체적 행동을 옮기지 않고 주춤거리는 의원들 중 몇몇은 당지도부 및 공천심사위에 “비례대표를 주면 재고해보겠다”는 뜻을 전달해놓았다. 홍사덕 원내총무는 최근 회의석상에서 “쫛쫛의원은 우리 당의 대표적인 외교안보통으로 전문성을 살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김위원장의 신진원칙론에 대해 ‘원칙은 원칙일 뿐’이라며 예외가 있을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 때문에 ‘김문수 원칙’은 갈수록 흔들린다. 이 원칙을 위협하는 첫 번째 흐름은 이른바 ‘최심(崔心·최병렬 대표 의중)’이다. 현 공천심사위는 최대표가 사실상 구성, 최심이 반영될 소지가 많기 때문이다. 당장 최대표의 비례대표 배려설이 한나라 당사를 감싸고 있다. 대표와 의원직을 포기, 뒷방노인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최대표로서는 뭔가 수를 내야 한다는 중압감이 상당하다. 3월18일 임시전당대회에서 새로 뽑힐 대표가 비례대표 공천 원칙과 대상을 뒤집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비례대표를 차기 대표 선출 후 결정하기로 하면서 비례대표 추천을 둘러싼 치열한 로비전이 전개되고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는 안강민 전 대검 공안부장 등 공천심사위원들의 비례대표 배려설이 나돌면서 공천원칙에 대한 믿음은 더욱 흔들린다.

특히 참여정부 경제정책에 부담을 느낀 경제단체에서 친기업적 인물의 비례대표 등원을 지원하려는 움직임까지 보인다. 우리당의 영남 총선에서 역할을 하고 있는 L씨는 2월 중순, 평소 알고 지내던 재계인사로부터 “비례대표 후보를 추천하겠다”는 제의를 받았다. “당 공식 기구를 통해 신청서를 제출하라”고 발을 뺐지만 “친기업적 인물들을 등원시키겠다”는 이 기업인의 말을 듣고 묘한 기분을 느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경영계’ 3월호에 지난 4년간 국회 환경노동위에 의원입법 발의된 법안 56건을 친노동계 또는 친기업 등 6개 기준으로 분석, 게재했다. 경총의 의원입법 분석에 따르면 친노동계 법안이 35건(62.5%), 친기업 법안이 4건(7.1%)이었다. 차이가 큰 배경에 대해 경총측은 ‘노동계 출신 비례대표 의원들의 적극적 활동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 S그룹 구조조정본부 한 관계자는 “결국 우리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을 국회로 보내야 한다는 것이 대세”라며 친기업적 성향의 정치인 지원 가능성을 시사했다. 그는 “친재벌적 성향의 후보가 지역구에서 당선되기 어려운 현실 때문에 비례대표를 통한 등원이 대안으로 거론된다”고 말했다.

우리당의 경우 당 지도부와 개혁신당 출신 인사 사이에 샅바싸움도 치열하다. 우리당은 당내·외 인사 30명이 참여하는 선정위원회를 통해 비례대표 신청자 225명의 도덕 및 개혁성 등을 심사해 1차로 56명을 선정한다. 이후 별도의 순위확정위원회를 열어 순위를 결정할 예정이다.

문제는 비례대표 순위 결정 방식. 정동영 의장 등 지도부는 상임중앙위원회가 방안을 제시하고 이를 순위확정위원회에서 추인받는 형식을 바라고 있다. 자유투표 등의 경우 자칫 인기투표로 변질돼 거물급 영입인사가 탈락하는 이변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혁신당 출신 인사들은 250명 전체를 투표로 결정하자는 쪽이다. 개혁신당과 신당추진위원회 출신의 중앙위원들은 지구당운영위원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며 당 하부조직을 장악하고 있다. 중앙위원 79명 중 유시민 의원 등 개혁신당 출신이 28명, 박명광 상임고문 등 신당추진위원회 출신이 38명으로 표에서만큼은 절대적인 우위를 차지하고 있는 점도 목소리를 키우는 배경이다. 당내에서는 당원투표로 결정하는 방식이나 30%를 지도부가 선정하고 나머지를 투표하는 방식, 분야별로 인물을 분류해 투표하는 방식 등 각종 대안을 놓고 의견을 좁히고 있다.

3당 가운데 공천작업이 가장 늦은 민주당도 비례대표 속앓이는 피할 수 없다. 조순형 대표와 동교동계 인사 및 소장파 등이 비례대표에 대해 서로 다른 구상을 갖고 있기 때문. 당지도부는 명망가를 영입, 득표 수단으로 활용하자는 생각이 강하다. 그러나 소장파 인사들은 젊은 개혁파의 수혈을 염두에 둔다. 또 일부 인사들은 주도권 장악을 위한 수단으로 접근하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원내 제4당에 도전하는 민주노동당은 1인2표제가 채택된 이번 선거에 어느 때보다 큰 기대를 걸고 있다. ‘15(지역구 의석)-15(정당득표율)’ 전략이 성공할 경우 8석 안팎의 비례대표 의석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민련은 김종필 총재 등이 비례대표 앞 번호에 둥지를 틀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426호 (p28~30)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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