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19

2004.01.22

엄마 아빠 주름살 순탄히 펴질까

유아교육법 시행령 제정 ‘산 넘어 산’ … 지원대상과 방법 갈등해소·예산확보 ‘발등의 불’

  • 이남희 기자 irun@donga.com

    입력2004-01-15 14: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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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 아빠 주름살 순탄히 펴질까

    1월7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 당사 앞에서 유아교육법안에 반대하는 한국보육시설연합회와 법안에 찬성하는 전교조 등의 단체가 동시에 시위를 벌이고 있다.

    1월7일 서울 여의도 한나라 당사 앞. 유아교육법안에 찬성하는 단체와 반대하는 단체가 당사 앞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서로 갈라져 유아교육법 제정과 철회를 요구하는 시위를 각각 벌이고 있었다. 이 법안에 찬성하는 이들은 한국유치원교원연합회,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하 전교조) 등 20여개 교육단체들의 회원 4000여명. 반대에 선 이들은 한국보육시설연합회(이하 한보련) 회원 4000여명이었다. 임시국회 마지막 본회의를 하루 앞두고 보다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 위해 두 시위대는 끝까지 목소리를 높였다. 7년 동안의 대립이 극도로 표출된 순간이었다.

    ‘갈등의 핵’이었던 유아교육법이 극적 합의로 1월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취학 전 아동교육이 공교육 시스템으로 편입하게 됐다. 만 5세 아동에 대한 무상교육이 내년부터 단계적으로 실시돼 2007년에는 전면 시행될 방침이다. 여기에 필요한 비용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지원한다는 게 유아교육법의 기본 골자다. 이로써 그동안 초·중등교육법의 종속적 영역이던 유아교육 분야가 독립하면서 그 위상이 한 단계 높아졌다. 하지만 일부 단체가 통과된 법안을 ‘반쪽짜리’라며 비판하고 나선 데다, 시행령 제정 문제가 남아 있어 관련 단체 사이의 논란은 당분간 끊이지 않을 전망이다.

    7년 산고 … 관련 단체 논란은 계속

    유아교육법 제정은 처음부터 순탄치 않았다. 국내 유아교육 시장을 3등분하고 있는 유치원과 사설학원, 어린이집 등 이익단체와 교육인적자원부(이하 교육부), 보건복지부, 여성부 등 소관 부처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유아교육법 제정을 처음 주장한 사람은 나정 한국교육개발원(KEDI) 유아·의무교육연구팀장. 1997년 대통령자문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이었던 그는 유치원 및 보육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하는 것을 골자로 한 유아교육법의 정부 입법을 건의했다. 사회활동을 하는 여성의 육아 부담을 덜어주고 모든 계층의 아동들에게 골고루 교육 혜택을 주자는 취지였다. 그러나 영세 보육시설의 쇠퇴를 염려한 보육단체가 반발하고 나서자, 정부는 유아교육법 제정에 소극적 자세를 보였다. 이는 유아교육법 제정의 험난한 과정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이후 한국유치원총연합회와 부산대 유아교육과 임재택 교수 등이 중심이 돼 ‘유아교육법’ 제정을 위한 활동을 벌이기 시작했다. 표에 대한 부담이 적고, 교육 문제에 관심이 많은 전국구 의원들이 이들의 설득 대상이었다. 97년 김원길 의원(당시 국민회의)은 이들의 뜻을 받아들여 유치원 및 보육원을 유아학교로 전환하고 종일제를 기본으로 하는 내용의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15대 국회가 끝나면서 이 법안은 자동폐기되고 말았다. 정희경 의원(당시 국민회의)도 99년 반일제를 근간으로 하며 연장제나 종일제 선택이 가능한 방향으로 같은 법을 발의했으나 이 역시 자동폐기됐다. 법안은 보육단체, 사설학원의 반발로 국회 상임위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이재정 의원(열린우리당)이 2001년 발의한 법안과 김정숙 의원(한나라당)이 지난해 4월 발의한 법안을 교육부가 다시 절충한 것으로, ‘유아학교’를 ‘유치원’에 한정하기로 최종 결정됐다. 이는 유아학교로의 전환을 두려워하는 보육단체의 뜻을 받아들인 것이었다. 법안이 통과되기까지 대립하던 단체들 간의 막판 협상도 지속됐다. 합의의 일등공신은 민간보육시설을 대표하는 전국어린이집·놀이방연합회(이하 전어련)의 입장 변화. 유아교육법 제정에 줄곧 반대해온 전어련이 ‘유아교육법 제정안과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에 사립 시설에 대한 운영비 및 인건비 지원을 넣는다’는 조건으로 이 두 법안의 국회 통과에 합의했다. 1월3일 발표된 합의사항은 유아교육법 통과의 가능성을 높였다. 이에 한보련은 유아교육법 조항에서 유치원의 ‘보호’ 기능을 삭제하라는 막판 협상 카드를 내밀었다. 보육시설의 주된 기능이 ‘보호’인 만큼 자신들의 영역을 유치원에 뺏기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이다. 한보련의 주장이 막판 협상에서 받아들여졌고 표류하던 법안은 어렵사리 국회를 통과했다.

    유아교육법이 천신만고 끝에 만들어졌지만 최종 실현까지는 아직 갈 길이 멀다. 우선 법안이 지원 대상과 방법을 시행령에서 정하기로 하는 등 갈등을 빚을 만한 쟁점을 내버려둔 상태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엄마 아빠 주름살 순탄히 펴질까

    한글교육을 받는 서울 장충초등학교 병설유치원의 아이들.

    특히 유치원의 ‘보호’ 기능이 빠진 데 대해 전교조, 참교육학부모회 등 교육·시민단체들이 강력히 반발하고 있다. 유아의 바른 성장을 위해 ‘교육’과 ‘보육’이 분리되어선 안 된다는 주장이다. 이들은 또 “보육시설의 보호 및 교육 기능은 인정하면서 유치원의 ‘보호’ 기능을 빼는 것은 궁극적으로 유치원 종일제 시행마저 어렵게 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반면 한보련측은 유아교육법에 명시된 “‘국무총리 산하에 유아교육·보육위원회를 설치한다’는 원안에서 보육위원회 부분을 삭제할 것을 요구하겠다”고 밝혔다. 유치원과 어린이집의 역할은 별개라는 것을 강조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논란에 대해 교육부는 현실적으로 유치원과 보육시설이 모두 교육과 보육을 담당하기 때문에 ‘보호’ 기능이 삭제됐더라도 큰 영향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이 또한 교육부의 아전인수식 해석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따라서 교육과 보호의 개념에 대한 논란은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또 다른 문제는 갑작스럽게 늘어난 예산을 감당할 수 있느냐는 점. 2007년까지 보육시설과 유치원을 통틀어 만 5세 아동 무상교육을 전면 시행한다는 교육부의 방침이 이루어지려면 1조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그러나 올해 예산은 보육시설 4107억원, 유치원 345억원 등 필요한 예산의 절반인 5000억원이 채 안 되는 실정이다. 그러나 한편에서는 현재 유아교육진흥법 개정안에 따라 이미 20%에 달하는 아동이 무상교육 혜택을 받고 있으며, 무상교육이 단계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공교육으로의 전환에 큰 무리가 따르진 않을 것이라고 예상하기도 한다.

    유아교육법 제정안과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의 동시 통과는 유치원, 어린이집, 놀이방의 완전경쟁체제를 강화시켜 유치원은 ‘보호’ 기능에, 어린이집은 ‘교육’ 기능에 더 집중하게 될 것이다. 두 기관의 역할이 점차 유사해지면 다시 두 법의 통합 논의가 불거지게 될 것이란 예측이 지배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대부분 국가들은 동일연령대의 유아를 한 부처에서 담당해 혼란을 줄이고 있다. 3~5세 취학 전 유아교육은 교육부가 맡고, 그 이전의 영아보호는 보건복지부가 맡는 식이다. 동일연령대의 유아를 두 개 부처에서 함께 담당하고 있는 나라는 한국, 일본, 영국, 미국 등 소수에 불과하다. 일원화에 반대하는 보육계, 교육과 보육이 궁극적으로 통합돼야 한다는 유아교육계의 주장 중 어느 쪽을 택할 것인가는 유아교육법이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로 남아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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