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2003.10.30

소리 없는 인체 저격수 ‘C형 간염’

증상 없는 경우 많아 방치 일쑤 … ‘B형’ 비해 자연치유 안 되고 ‘만성’ 진행 가능성 85%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3-10-23 16: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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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소리 없는 인체 저격수 ‘C형 간염’

    간염 바이러스는 잠복기가 있어 곧바로 진단하기가 어렵다.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된 간은 만성 간염에서 간경변, 간암(아래 사진 왼쪽에서 오른쪽으로)으로 이행된다.

    간은 인체 내에서 각종 단백질과 영양소를 만들고 저장하며, 몸에 해로운 물질들을 해독하는 기능을 담당해 화학공장에 비유되곤 한다. 그런데 이처럼 우리 몸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간은 손상되어도 그 증세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아 즉시 진단하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기가 쉽지 않다. 간 관련 질병이 다른 질병들보다 예방과 적극적인 치료가 더욱 강조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보건복지부의 ‘2003년 사망원인 통계조사’ 결과에서 간 질환이 우리나라 40대 남성의 주요 사망요인 2위로 나타난 점은 여전히 간 관련 질환이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간질환의 경우 대개 생산성이 가장 높고 가족에 대한 부양 의무가 있는 30~50세 남성들 사이에서 잘 발생해 개인뿐 아니라 사회·경제적으로 큰 부담을 주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간암으로 인한 사망률은 세계 1위이며, 간암환자 중 70%가 B형 간염으로부터 발병한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가 B형 간염의 수직감염을 막기 위해 대대적인 캠페인을 벌이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회구조가 변모하면서 주로 선진국에서 발병해왔던 C형 간염이 점점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B형 간염만큼 유병률(일정한 시일에 임의의 지역의 병자수의 그 지역 인구에 대한 비율)이 높지는 않지만 전체 인구의 1%에 달하는 45만명 이상이 C형 간염 보균자로 추산된다. 만성 간염 환자 중 B형과 C형의 비율이 2대 1 내지 3대 1 정도로 아직은 B형 간염 환자가 많지만, B형은 백신 접종으로 인해 감소 추세를 보이는 반면 C형은 날로 증가하고 있다. 실제로 미국, 서구, 일본 등지의 선진국에서는 B형 간염 환자보다 C형 간염 환자가 더 많다.

    C형 간염은 주로 환자의 혈액을 통해서 전염되는데, 대체적인 전염경로는 B형 간염이나 에이즈(AIDS·후천성면역결핍증)와 유사하다. C형 간염은 급성 및 만성 간염으로 구분하며, 감염되면 일정한 잠복기간 동안 바이러스가 증식하고 자각증상이 나타난다. 급성 간염의 경우 3~4개월이 경과하면 회복되어 자각증상이 없어지고 간기능도 정상으로 회복된다. 그러나 6개월∼1년 이상 자각증상이 나타나고 간기능도 회복되지 않으면 만성 간염으로 이행되었음을 의미한다.

    전염경로 차단이 예방 최상책



    하지만 C형 간염의 경우 B형 간염과 달리 자연치유가 잘 되지 않아 만성 간염으로 진행할 가능성이 85%에 이르며, 이 가운데 20~30%는 간경변으로 진행된다. 사망의 직접적 원인이 되는 간경변이나 간암으로의 이행률이 높으므로, C형 간염 진단을 받았다면 지체 없이 의사와 상의해야 한다.

    B형 간염의 경우 1980년대부터 백신이 실용화돼 국내 B형 간염 환자를 줄이는 데 크게 기여해왔다. 그러나 C형 간염의 경우는 아직 백신조차 개발되지 않아 예방접종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따라서 C형 간염의 경우 전염경로를 차단하는 것이 최선의 예방책이다. 특히 혈액을 통한 감염의 위험이 높으므로 일반인의 경우 불필요하게 몸에 상처를 내거나 소독되지 않은 주사기로 주사를 맞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또 성적 접촉을 통해서 감염될 수 있으므로 건전한 성생활을 하는 것도 예방책 중의 하나다.

    소리 없는 인체 저격수 ‘C형 간염’

    지난해 간의 날, 간 홍보대사로 위촉된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이운재 선수(왼쪽).

    이 밖에 일상생활 중에서도 침을 맞거나 문신을 하거나 귀를 뚫는 과정 등에서 전염될 수 있으므로 허가받은 업체를 이용하도록 하고, 주사기, 면도기, 손톱깎기, 칫솔, 이·미용 기구 등을 함께 사용하다 감염될 확률도 높으므로 이들 기구들을 공동으로 사용할 때는 제대로 소독하고 사용하고 되도록 공동 사용 자체를 피하는 게 좋다.

    급성 C형 간염의 대표적인 증상은 피로감, 식욕부진, 오심(惡心), 구토, 오른쪽 윗배 부위 통증 등이다. B형 간염과 증상은 유사하지만 그 정도는 경미하다. B형 간염과 달리 황달은 없는 경우가 더 흔하며, 증상이 있는 환자의 25%에서만 황달증상이 나타난다. 하지만 황달증상도 대부분 1개월 이내에 없어지고 자각증상도 없어진다.

    문제는 급성 C형 간염의 경우 증상이 있는 경우에 비해 없는 경우가 더 흔하다는 점. 간염이 심하지 않을 때는 약간의 피로감만 느낄 뿐이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고 지내는 경우가 많다. C형 간염의 경우 만성화되더라도 증상이 심하지 않아 평소에 잘 모르고 있다 정기적인 신체검사시나 헌혈시에 우연히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심지어 감염된 지 수십 년이 지난 후 간경변이나 간암으로 진행된 후에야 자신이 C형 간염 환자였음을 알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C형 간염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만성화하는 경향이 많아 급성 간염의 50∼80%가 만성 간질환을 유발하게 되므로 감염된 것으로 확인되면 항바이러스 제제를 통한 적극적인 치료가 필요하다. 간염 바이러스를 제거해 간이 섬유화하거나 간경변으로 진행하는 것을 막고 증상을 없애야 하기 때문이다.

    이제까지 만성 C형 간염을 치료하는 데는 기존 인터페론(interferon)이 유일한 치료제로 사용돼왔지만 최근에는 인터페론과 리바비린(ribavirin)을 병용하는 요법이 도입돼 괄목할 만한 효과를 거둬 이 요법이 표준 치료법이 됐을 정도다. 환자들은 유전자형이나 혈중 바이러스 농도에 따라 24주∼48주 정도 치료를 받는데 인터페론 주사를 1주일에 3회 맞고 리바비린 알약을 복용한다.

    ‘간의 날’ 정해 대국민 캠페인

    최근에는 인터페론에 폴리에틸렌 글리콜(polyethylene glycol)을 부착시킨 페가시스(페그인터페론, pegylated interferon)가 개발됐는데 일주일에 1회 투약으로도 기존 인터페론 이상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어 주목받고 있다. 국제 의학계에서 페그인터페론과 리바비린을 함께 투약하면 치료 성공률이 60%까지 향상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국내에서는 내년부터나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편 대한간학회(회장 문영명 연세대 의대 내과 교수)는 간질환의 중요성을 알리고 간질환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촉구하기 위해 2000년부터 10월20일을 ‘간의 날’로 제정, 간질환 치료와 예방을 위한 대국민 캠페인을 펼쳐왔다. 이 캠페인은 세계 20여개 국가에서 공동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간염 퇴치와 건강 음주’라는 주제로 치러진 올해 행사에는 거북이 마라톤, 간질환 무료 공개강좌, ‘간염 없는 세상을 위한 강동석의 희망 콘서트’ 등 부대행사에 많은 시민이 참가해 간의 소중함을 되새겼다.

    대한간학회 문영명 회장은 “우리 사회에 깊숙이 자리잡고 있는 간질환에 관한 잘못된 인식을 뿌리뽑아 간질환에 대한 인식을 재정립하고 건전한 생활습관을 정착시키기 위해 간의 날 행사를 마련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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