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7

2003.10.30

허허벌판서 일군 '대덕의 기적'

연구단지 창립 30년­ 연구원 낮은 여건 속에서도 인공위성 개발 등 숱한 성과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3-10-23 14:3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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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허허벌판서 일군 '대덕의 기적'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액체추진과학로켓.

    정말 조용하다. 가을 햇살이 눈부신 대덕연구단지 내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이하 항우연). 연구원 내의 널찍한 부지 안을 걸어다니는 사람은 오직 기자 일행뿐이다. 항우연 홍보실 직원 옥수현씨는 “어떤 때는 너무 조용해서 400명이 넘는 연구원들이 이 안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는다”며 웃었다. 가끔 지나치는 베이지색 점퍼 차림의 연구원들은 한결같이 골똘한 표정으로 바삐 걸음을 옮겼다.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기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한국의 실리콘밸리 대덕연구단지가 창립 30주년을 맞았다. 840만여평의 부지에 41곳의 정부출연기관과 기업부설 연구소가 있는 대덕연구단지는 연구인력 1만4000여명(박사급 4500여명), 이들을 지원하는 인력 4000여명, 도합 1만8000여명의 과학인력이 모여 있는 한국 과학기술의 메카다.

    과학인력 1만8000명 ‘과학기술 메카’

    대덕연구단지의 정확한 탄생일은 1973년 11월30일이다. 이날 ‘대덕연구학원도시 건설계획’에 따라 현재의 연구단지 일대가 ‘교육 및 연구지구’로 지정,고시되었다. 당시의 행정구역은 대전이 아닌 충남 대덕군. 현재 대덕연구단지가 대덕구가 아닌 대전 유성구에 속해 있는데도 ‘대덕’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이듬해인 74년 기반시설과 연구소 건설에 들어갔고 78년 4월부터 표준연구원, 화학연구원 등 정부출연연구기관의 입주가 시작됐다. 올해는 대덕연구단지 입안 30주년인 동시에 대덕연구단지가 실제 운영에 들어간 지 25주년이 되는 해인 셈이다.



    그동안 대덕연구단지가 이뤄낸 성과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곳에서 우리별, 아리랑 등의 국산 인공위성들이 만들어졌고 초정밀 AIDS(후천성면역결핍증) 신약이 개발되었으며 휴대전화에서 꼭 필요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방식 기술이 실용화되었다. 그러나 입주 초창기만 해도 허허벌판인 대덕연구단지에 아무도 오려고 하지 않아 해외거주 과학자들에게 평당 2만원 안팎의 헐값에 단독주택 대지를 불하하기도 했다.

    대덕연구단지의 가장 큰 이점은 여러 연구기관들이 모여 있어 인적, 물적 교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명과학뿐만 아니라 전반적으로 인근 학문간의 합동연구가 많이 이루어지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입니다. 따라서 대덕연구단지에서 모여 연구하는 이점이 크죠.”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이하 생명연) 융합생명공학연구실 김민곤 박사의 설명이다.

    연구원들은 대체로 대덕연구단지의 연구환경에 대해 만족스럽다는 평가다. 최근 들어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투자가 늘면서 연구비는 비약적으로 늘어났다. 생명연의 경우 한 해 연구비 규모가 600억원을 넘는다. 또 ‘두뇌한국(BK) 21’ 등 대규모 프로젝트가 늘면서 연구의 안정성이 커졌다는 것도 연구원들로서는 흡족한 부분이다.

    허허벌판서 일군 '대덕의 기적'

    한국생명공학연구원의 NSOM 현미경

    그러나 연구비 규모가 늘어난 것처럼 연구원들에 대한 처우가 나아진 것은 아니다. “처음 입사할 때만 해도 그리 큰 차이가 안 난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연구원의 급여가 오르는 정도가 일반 기업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적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40대 초반 연구원인 최모 박사는 “일반 기업에 다니는 친구들과 3000만원 이상, 임원이 된 친구들에 비하면 1억원 가까이 연봉이 차이 난다. 어쩌다 서울 가서 동기들을 만나면 술값은 그쪽에서 내는 게 당연하다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정부출연연구기관 소속이라고 해도 연구원들은 공무원이나 군인, 교원과는 달리 퇴직 후 연금혜택을 받지 못한다.

    연구원들이 연구기관보다 대학을 선호하는 것도 연구환경보다는 안정성과 퇴직 후의 연금혜택 등의 이유가 크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지난해 대덕연구단지 내 22개 정부출연연구기관들은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라는 연합대학원을 만들었다. 대학원 교수가 되면 퇴직 후 교원연금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연구원들이 이 대학원에 거는 기대는 컸다. 그러나 학부가 없는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의 학생 수는 150명에 불과해 이곳의 겸임교수가 될 수 있는 연구원은 얼마 되지 않을 전망이다.

    더구나 IMF 외환위기 이후로는 개개 연구원이 프로젝트를 수주해 인건비를 조달하는 PBS(Project Based System)를 시행하다 보니 연구능력보다도 ‘연구비를 따내는 능력’이 더 중요하게 여겨진다. 연구원들은 “연구비를 받기 위해 기획서, 보고서 쓰느라 정작 연구할 시간은 없다”고 공공연히 말한다. 항우연 이주진 다목적위성사업단장은 “정부가 연구기관에 너무 가시적 성과를 요구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인공위성 분야의 경우 직접적으로 쓰여지는 연구성과 외에 다른 부분의 연구들도 장기적으로 볼 때는 모두 국가 경제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의 연구원들은 자신의 일에서 보람을 느끼며 과학자로서의 삶을 후회하지 않는다. 항우연 우주발사체사업단의 정의성 박사(설계종합그룹장)는 “솔직히 노후보장 문제를 생각하면 좀 막막하다. 여기 있는 연구원들은 대전에 아파트 한 채 가지고 있고 아이들 학교 보내는 게 전부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그 일이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것에 만족한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액체추진과학로켓 발사에 성공한 정박사는 “로켓 발사에 성공할 때마다 느끼는 성취감과 허탈함은 말로 다 못한다. 우리 팀 연구원들은 액체추진과학로켓이 발사되는 순간에 모두 울었다”며 과학자만이 가질 수 있는 순수한 감정의 일단을 내비쳤다.

    정부 무관심 속 30주년 행사 조촐히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대덕연구단지는 ‘대전의 섬’ 같은 곳이었다. 대전 시가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데다 연구원과 가족들만이 이곳에 거주하다 보니 대전시민들은 아예 대덕연구단지에 출입조차 못하는 줄로 알았다고. 그러나 93년 대덕연구단지를 중심으로 엑스포가 열리고 98년 정부 제3청사가 대전으로 이주하면서 대덕연구단지와 대전시의 거리는 많이 가까워졌다. 정부 제3청사가 들어선 둔산 신도시는 대전 시가지와 대덕연구단지 사이에 위치해 있다. 이 신도시가 대덕연구단지와 대전을 잇는 다리가 된 셈이다. 이후 연구단지 내 주거지역인 전민동 어은동 등에 들어와 사는 대전시민들도 늘어났다.

    허허벌판서 일군 '대덕의 기적'

    한국항공우주연구원의 풍동. 인공적으로 바람을 일으키는 장치로 항공기 연구 등에 사용된다.

    그런데 정작 대덕연구단지를 감독해야 할 주관부서인 과학기술부(이하 과기부)는 대전 제3청사가 아닌 과천 제2청사에 있다. 연구원들은 “과기부 한번 다녀오려면 하루가 다 간다”고 냉소적으로 말한다.

    그렇다고 해서 과기부가 대덕연구단지 30주년을 특별히 챙기는 것도 아니다. 심포지엄 등 몇몇 30주년 기념행사는 대덕연구단지 내에서 ‘집안 잔치’로 열렸다. 서울에서는 대덕연구단지 30주년을 기념하는 어떤 행사도 열리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덕연구단지 30주년은 충청권 일부 지방 언론에서만 주목했을 뿐 그저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과기부에서 대덕연구단지를 담당하는 부서는 지방과학진흥과다. 그런데 적어도 과기부 내에서 대덕연구단지는 ‘지방’이 아니라 ‘중앙’ 아닐까.



    대덕연구단지 배치도. 상업지역(빨간색)은 거의 없고 주거지역(노란색)과 교육, 연구시설(베이지색)을 제외하면 대부분 녹지와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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