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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였다 풀었다 … 盧 전략 ‘변화무쌍’

‘재신임’ 초강수 후 ‘정치적 타결’ 급선회 … ‘정치개혁’ 요구 관철 위한 작전상 후퇴?

  •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조였다 풀었다 … 盧 전략 ‘변화무쌍’

조였다 풀었다 … 盧 전략 ‘변화무쌍’

APEC 정상회의 직후 열릴 정치지도자 회의는 재신임 정국의 방향을 트는 중대 고비가 될 전망이다. 9월에 열린 청와대 회의 모습.

10월15일 대한매일이 여권 고위인사의 표현을 빌려 야당이 반대하면 국민투표가 어려울 것이라는 보도를 내놓자 노무현 대통령은 크게 화를 냈다. “당장 발설자를 색출하라”는 지시가 떨어졌고 홍보수석실을 중심으로 문제의 여권 고위인사가 누구인지를 밝히느라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결국 유인태 정무수석비서관의 취중 발언이 문제의 발단인 것으로 드러났지만 노대통령의 국회 시정연설을 즈음한 청와대 분위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재신임 국민투표를 강행한다”는 쪽이었다. 육사 출신의 한 비서관도 “위헌 논란이 일고 있지만 국민주권이라는 헌법정신을 근거로 법해석을 하면 대통령 재신임 투표가 문제 될 것이 없다”는 논리로 주위를 설득하기도 했다.

재신임 여부를 묻겠다는 노대통령의 정치공세는 일단 성공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10월16일 실시된 MBC-코리아리서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재신임 발언이 노대통령과 통합신당에 큰 힘이 됐음을 알 수 있다. 정당지지도는 한나라당이 23.1%로 1위였고 민주당이 15.6%, 통합신당이 13.0%인 것으로 조사됐다. 3당의 지지율 순위에는 변화가 없으나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간극이 좁혀진 점이 눈길을 끈다.

실제 재신임 정국에 접어들면서 통합신당의 약진이 두드러진 것으로 나타났다. 10월12일 실시된 MBC-코리아리서치 공동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통합신당의 지지율은 10.4%였다. 한나라당이 26.2%, 민주당이 17.0%였다. 그러던 것이 불과 나흘 만에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반면 통합신당의 지지율은 올라간 것으로 나타나면서 여권은 크게 고무된 분위기다.

그런데 상황은 또 달라졌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한 지 1주일도 지나지 않아 국민투표 실시 자체가 불투명해지고 있다. 대한매일의 보도대로 야당은 국민투표에 반대했고 청와대도 “야당이 반대하는 상황에서 일방적으로 밀어붙이기는 곤란하다”며 당초의 강경 입장을 누그러뜨리는 분위기다. 그리고 노대통령이 APEC(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뒤 여야 정치지도자를 불러 국민투표에 관한 정치권의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청와대의 달라진 기류는 청와대 관계자들의 언행에서도 확인되고 있다.



“어떻게 하면 재신임 정국을 빨리 안정시킬 수 있겠나? 국민여론은 하루라도 빨리 지금의 혼란에서 벗어나자는 것 아닌가. 어느 정도에서 타협하면 야당도 만족하겠는가?”

노대통령의 재신임 정국 정치적 타결 방안이 알려진 직후인 10월18일 청와대의 한 비서관은 기자에게 이렇게 물었다. 이 비서관뿐 아니라 모든 청와대 근무자들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재신임 정국이라는 벼랑 끝 대치상황을 벗어나 정치권을 안정시키느냐에 모아지고 있다. 이렇듯 국민투표 강행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보이던 청와대의 기류가 근본에서부터 변화를 보이고 있다는 관측은 도처에서 확인된다.

앞서의 비서관은 “국민투표 외에도 국론 분열이 불가피한 현안들이 산적해 있다. 당장 이라크 파병문제만 해도 그렇다. 대통령은 파병의 큰 원칙만 결정하고 파병의 규모와 성격은 추후 결정하겠다고 했지만 논란이 불가피하다. 그런 상황에서 재신임 국민투표를 강행할 경우 엄청난 혼란이 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파병 외에도 부동산 안정, 청년실업 해소 등 풀어야 할 현안이 수두룩한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고집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 ‘정치적 해결’ 방안을 제안한 배경이라는 게 정가의 관측이다.

하지만 이런 관측에 동의한다 해도 의문은 여전히 남는다. 노대통령이 재신임 카드를 빼들었던 10월10일에도 이라크 파병문제는 중대 현안이었고 부동산 폭등이나 청년실업 문제 등도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 재신임 국민투표에 대한 야당의 반대가 정치적 해결론을 불가피하게 한 요인이라는 관측에도 문제는 있다. 정치를 조금이라도 이해하는 사람이라면 결국 야당이 국민투표에 반대할 것이라는 예측은 얼마든지 가능했다는 것이다.

이런저런 상황들을 모두 감안한다면 “대통령직을 걸고 국민들의 재신임을 받겠다”던 노대통령의 제안은 애당초 실현 불가능한 것이고 노대통령도 이를 알고 있었다는 얘기가 되고 만다.

이에 대한 청와대의 반응은 “그렇지 않다”는 것. 한 비서관은 “대통령의 시정연설은 그야말로 진심이었다. 대통령직을 걸겠다던 각오와 약속은 믿어도 좋다. 시정연설 이후 정치상황에 변화가 생긴 것일 뿐 연설 당시 대통령의 각오는 단호했던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아무튼 이런저런 정황 탓에 정가에서는 “노대통령이 국민투표 강행을 통한 정면돌파보다 우회적 타협으로 정치적 행보를 달리한 것 아니냐”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당장 여권에서는 ‘10월 말 대타협론’이 흘러나오고 있다. 그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노대통령은 여야 정당대표들을 청와대로 불러 몇 가지 제안을 할 것이다. 노무현 정권은 출범 전부터 정권의 정체성으로 ‘정치개혁과 지역통합’을 설정한 바 있는데 노대통령은 여야에 이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을 촉구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이하 인수위) 시절 노대통령은 그 산하에 서울대 임혁백 교수를 실장으로 정치개혁연구실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5년 재임기간 단행할 정치개혁과 지역통합 과제에 대한 연구를 맡긴 바 있다. 6월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는 선관위 안으로 정당법, 정치자금법 등 정치개혁 관련 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는데 그 핵심 내용은 인수위 정치개혁연구실이 마련한 방안과 대부분 비슷한 것이었다.

하지만 여야는 한목소리로 현역의원의 기득권을 대폭 제한한 선관위 안에 대해 부정적 반응을 나타냈다. 정치개혁 관련 법 입법에 대한 정치권의 부정적 시각은 정치개혁 관련 법 입법 지연으로 나타났다.

노대통령은 10월13일 시정연설에서도 “정치개혁을 위한 입법에 여야가 조속히 나서달라”고 촉구한 바 있는데 다가올 여야 정치지도자 모임에서 노대통령은 강도 높게 정치개혁 관련 법 입법을 요구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맞서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강도 높은 국정쇄신을 요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구체적으로 대규모 개각과 청와대 개편이 그 핵심 내용이 될 전망이다. 실제 10월19일 최병렬 한나라당 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열고 “재신임 문제와 예산안을 포함한 나라 살리는 일은 완전히 구분하는 정·경 분리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정부가 내각을 전면 개편하는 일대 국정쇄신을 단행하면 전폭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물론 청와대는 “개각은 국민투표 이후에나 검토할 일”이라고 답했지만 여야 지도자 회의에 앞서 한나라당의 요구사항이 청와대와 정부에 대한 인적 쇄신으로 확인된 이상, 그 범위와 시기는 재신임 정국 타개를 위해 여야가 합의하는 데 있어 중대한 열쇠가 될 전망이다. 실제로 한 청와대 고위인사는 한나라당의 요구에 대해 “야당이 개각을 요구하고 있는데 어느 정도 해야 그쪽(한나라당)에서 만족하겠느냐”며 주변의 의견을 묻기도 했다.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청와대와 한나라당 간의 물밑 의견조율이 빠른 속도로 진행중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노대통령 측근 문제가 향후 정국 변수

이라크 추가 파병 정국도 청와대와 한나라당의 거리를 더욱 좁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청와대는 파병한다는 원칙만 세웠을 뿐 파병 규모와 성격은 추후 결정하겠다는 입장이다. 정치권에서 파병에 가장 적극적인 집단은 한나라당이다. 아직 당론으로 정하지는 않았지만 한나라당은 전통적 한미 관계에 비춰 가급적 전투병을 포함, 대규모 병력 파병에 동의하는 분위기다. 반면 노대통령과 평소 ‘코드’가 맞는다던 통합신당은 파병에 대해 부정적이다. 민주당도 지도부 일부를 제외하곤 선뜻 파병에 동의하지 않는 분위기다.

청와대는 ‘국익’을 위해서는 파병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이고 국회 동의를 얻어 이를 관철시키려면 한나라당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이다. 자연 파병을 위해 청와대와 한나라당이 공조하는 정국도 예상할 수 있는데 이를 앞두고 정치적 휴전의 뜻으로 청와대가 ‘재신임 정국 정치적 해결 카드’라는 비둘기를 날렸다는 관측도 있다.

일부이긴 하지만 청와대가 최병렬 대표체제를 흔들지 않기 위해 재신임 국민투표라는 강수를 거둬들였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최대표는 당내 소수파라는 한계를 극복하고 당권을 잡은 인물. 최대표는 대표 경선 때부터 한나라당 개혁을 소리 높여 주장했고, 실제로 대표 취임 이후 젊은 의원들을 당직 일선에 배치하면서 자신의 개혁 의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하지만 재신임 선언 직후 조기 국민투표제 도입을 주장하다가 노대통령이 12월15일 전후 국민투표 실시를 제안하고 나서자 “최대표가 노대통령의 전략에 말려들어 당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당내 비판세력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한나라당 개혁을 주장하는 최대표의 입지가 좁아지는 것은 곧 노대통령이 주창해온 정치권 전반의 개혁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게 청와대의 판단이라는 것이다. 청와대가 돌연 강공 의사를 거둬들인 데는 최대표의 입지 약화를 막겠다는 속셈도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향후 정국은 어떻게 전개될까. 최근 다시 여론의 도마에 오른 노대통령의 측근 문제 처리 결과가 정국 전망의 중요한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당장 사표를 제출한 이광재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의 처리 문제가 관심사다. 이실장이 청와대를 떠날 경우 청와대 내 대통령 측근들의 연쇄 퇴진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그 규모는 알 수 없지만 선(先)국정쇄신 차원의 개각 단행도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야당이 요구하는 청와대 쇄신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이쪽의 요구조건을 관철시켜 나가겠다는 게 청와대의 복안으로 보인다. 재신임 국민투표 강행이라는 벼랑 끝 전술을 유보하는 대신 이에 상응하는 협조를 요구하겠다는 것이다. 여야 공동발의로 정치관계법 개정안을 이번 회기 안에 통과시키는 것도 그 한 예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과연 어떤 시나리오가 현실로 나타날까. 노대통령이 10월24일 APEC 정상회의를 마치고 귀국하는 순간부터 그 해답을 공개하는 카운트다운이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주간동아 407호 (p20~22)

김기영 기자 had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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