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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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 없는 싸움터 … 스크린은 무슨 말을 할까

  • 이명재/ 자유기고가 minho1627@kornet.net

    입력2003-10-16 13: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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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분 없는 싸움터 … 스크린은 무슨 말을 할까
    한국 전투병의 이라크 파병을 둘러싼 논란에는 이라크 전쟁이 과연 정당한 전쟁인가에 대한 논란도 담겨 있다. 국익에 도움이 되느냐 안 되느냐는 실익론에 대해서야 시각이 엇갈리지만 명분에 대해서는 이미 어느 정도 판정이 내려진 상태인 듯하다. 그러나 지금 서둘러 결론을 내릴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역사’라는 엄정한 관찰자로부터 심판을 받기 이전에 또 하나의 상식적인 판관이 판정을 내려줄 터이기 때문이다.

    그 판관은 바로 스크린이다. 전쟁만큼 극적인 드라마도 없기에 인류사에 기록된 허다한 전쟁은 늘 영화의 매력적인 소재였고, 그래서 영화 속에 투영된 특정 전쟁에 대한 이미지는 그 전쟁이 얼마나 명분을 갖춘 정당한 전쟁이었는지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있다.

    가령 영화 속에 비친 제2차 세계대전과 베트남 전쟁의 이미지는 매우 대조적이다. 둘 다 인명이 대량 살상된 참화였던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다른 건 그 전쟁에 동원된 군인들이 스스로 던지는 전쟁의 성격에 대한 의문이다.

    ‘지상 최대의 작전’이나 ‘머나먼 다리’ 같은 고전에서부터 ‘라이언 일병 구하기’ 같은 최근작에 이르기까지 제2차 세계대전을 다룬 영화는 적군과의 스펙터클한 전투장면이 중심을 이룬다. 영화 속 병사들에게 ‘내가 왜 이 전쟁터에 나와 피를 흘려야 하는가’ 하는 심각한 회의는 들지 않는 듯하다. 그건 무엇보다 이 전쟁이 선악이 분명한 싸움이라는 인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치라는 명백한 적에 대항한, 정의를 위한 전쟁이라는 신념이 어느 정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영화 속 베트남 전쟁에서 가장 치열한 전장은 적군과의 그것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끊임없이 이 전쟁의 의미에 대해, 그 속에 휘말린 자기 자신의 실존에 대해 갈등하는 병사들의 내면이야말로 가장 치열한 싸움터였다. 물론 냉전적 시각으로 가득 찬 람보 류의 영화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굿모닝 베트남’(사진)에서부터 ‘디어 헌터’ ‘지옥의 묵시록’ ‘플래툰’에 이르기까지 대개의 베트남 전쟁을 다룬 영화들에는 그 같은 회의와 갈등이 배경음악과도 같이 흐르고 있었다. 굳이 베트남전의 추악한 진실을 담은 미국 국방성 비밀문서나 언론의 폭로에 기대지 않더라도 베트남전의 성격은 사실상 스크린에서 결론이 내려져온 것이다.



    하지만 명분과 정당성을 갖춘 전쟁이라고 해서 전쟁 그 자체에 내재된 불합리한 속성마저 덮을 순 없다. 전쟁을 사상자 몇 명 하는 식으로 몇 개의 건조한 숫자에 담아 역사 속의 한 사건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있다면 그 같은 명분이 전쟁의 성격을 한두 마디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거대한 장막을 걷고 참호 속에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 구체적 현장을 쫓을 때 드러나는 전쟁의 진실이란 결국 아무리 그럴싸한 명분으로도 위장할 수 없는 몰이성과 광기다.

    거장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영광의 길’이란 작품은 제1차 세계대전 중 프랑스군에서 일어났던 실화를 바탕으로, 바로 그 참호 속 진실을 보여준다.

    프랑스군 사단사령부의 군단장이 밀러 사단장을 찾아와 난공불락의 고지를 48시간 이내에 점령하라고 명령한다. 밀러는 닥스 대령에게 이 명령을 따를 것을 지시하지만 닥스는 무모한 명령이라며 거세게 반발한다. 하지만 군령은 군령이라 결국 그는 명령에 따를 수밖에 없다. 결국 작전이 시작되지만 아군은 참호에서 세 발자국도 나갈 수가 없다. 사단장은 참호에서 나가지 않는 아군이 공격하도록 하기 위해 아군을 향해 포격하라는 어처구니없는 명령을 내린다. 그러나 포대장은 이를 거부하고, 결국 작전은 실패하고 만다. 사단장은 병사들에게 용기가 없었던 탓이라며 희생양을 찾는다. 한 중대당 10명씩, 100명을 명령 불복종으로 총살형에 처하겠다는 것이다. 닥스의 항의로 세 명의 병사만을 군법회의에 회부하고 결국 세 명은 억울하게 총살형을 당한다.

    영화 속에서 이라크 전쟁은 과연 어떻게 그려질까.



    영화의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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