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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의 책 | ‘한 남자의 그림 사랑’

애정으로 본 한국 미술의 오늘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애정으로 본 한국 미술의 오늘

애정으로 본 한국 미술의 오늘
나이 쉰을 맞은 은행원 김순응씨는 어느 날 그동안 해오던 일과 아무 상관 없는 미술품 경매회사로 자리를 옮겼다. 그저 첫사랑에 얼굴 붉어지던 시절부터 그림을 사랑했을 뿐 제대로 된 미술교육 한번 받지 않은 그가 출가라도 하듯 하루아침에 삶의 방향을 바꿔버린 것이다.

그때 그는 신학자 마틴 부버의 조언을 따르고 있었다. ‘너의 마음이 어느 길로 가고자 하는지 잘 들어보아라. 그리고 온 힘을 다해 그 길로 가라.’ 그리고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혼자서 가라’라는 인도 경전 숫타니파타의 한 구절도 가슴에 담았다.

은행을 떠나면서 그가 잃게 될 것은 평범한 사람들이 평생 얻기 위해 몸부림치는 것들이다. 23년 동안 구축해온 탄탄한 인간관계, 사회적 지위, 넉넉한 보수, 안정적인 미래, 편안한 생활….

그가 옮겨 간 ‘서울옥션’이라는 회사는 10여명의 직원이 일하는 ‘벤처’ 기업이었다. 임원 승진을 코앞에 둔 앞길 창창한 은행 간부가 미술품 거래 시장조차 활성화돼 있지 않은 국내에서 미술품 경매회사로 옮긴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모한 ‘모험’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그림을 사고 파는 데는 익숙했지만 ‘취미’를 ‘직업’으로 바꿀 용기는 없었다. 그러던 중 ‘가나아트’ 이호재 사장으로부터 서울옥션의 CEO(최고경영자)를 맡아달라는 제의를 받고 ‘강한 전류에 이끌리듯’ 그 제의를 받아들였다. 흔히 말하듯 ‘모험을 하기에는 너무 늦은 나이’였지만 그는 ‘안정’보다는 사랑하는 그림과 함께 뒹구는 생활을 택했다.



‘한 남자의 그림 사랑’은 그런 용기를 보여준 한 남자의 자서전이자, 그가 인생 후반기에 새롭게 발견한 미술세계와 국내 미술 시장에 대한 흥미로운 보고서다. 그에 따르면 좋은 미술작품은 우리에게 휴식과 위안을 주고, 마음을 아름답고 정갈하게 한다. 우리가 늘 마주치는 벽에 걸린 그림 한 점은 정신에 영향을 끼치는 실제적인 물건(?)이다. 또한 좋은 그림은 우리가 편안하게 몸을 맡길 수 있는 욕조에 담긴, 알맞게 따뜻한 물과 같다.

그런데 그런 작품을 생산해내는 예술가들은 대부분 소외된 채 가난과 고통 속에서 살다 간다. “그림을 그리기는 쉽다. 문제는 팔기가 어렵다는 것이다”고 했던 고갱이 그랬고, 평생 가난에 시달리다 쓸쓸히 생을 마감한 고흐와 이중섭의 삶이 그랬다. 김순응씨는 “그들에게 인간의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면 그들은 더 오래 살아남아 인류에게 훨씬 더 풍요로운 유산을 물려줬을 것”이라고 아쉬워한다.

물론 서양미술사를 살펴보면 대개의 천재적인 작가들은 일찍 죽지 않는 한 부와 명성을 누렸다. 그러나 국내의 경우 대부분의 작가는 고흐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서 암흑 속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작품활동만 해서는 생계를 꾸릴 수 없는 구조 속에서 자신의 능력을 마음껏 펼치지 못하고 살고 있는 것이다.

물론 미술 시장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이중가격제, 호당가격제, 수요와 공급이 전혀 맞아떨어지지 않는 왜곡된 시장구조, 빈약한 하부구조가 우리 미술계의 현주소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김씨는 더 큰 문제는 작가들에게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소비자인 미술 애호가들에게 사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물건(작품)을 만들었는지 작가들에게 묻고 있다. 가르치는 일과 창작을 겸하는 ‘겸업작가’에게는 타이거 우즈가 ‘레슨’을 하면서도 골프황제의 자리에 있을 수 있겠느냐고 묻는다.

그럼에도 김씨는 독자들에게 미술품 투자가가 돼보기를 권한다. 미술품에 대한 ‘열정과 안목’만 있다면 미술품 투자는 적은 돈으로 주식 투자나 부동산 투자보다 훨씬 안정적인 투자 수익을 올릴 수 있게 하는, 투자가치가 높은 투자처라고 한다, 경기의 영향을 덜 받고, 일정한 가격 상승세를 유지하는 데다 아무리 가격이 하락해도 그림 자체는 남는, 그야말로 ‘남는 장사’라고.

더욱이 미술품에 관심을 갖고 작품을 구입하면 그 작가와 작품에 대해 연구하게 되고, 이것은 다시 다른 작가에 대한 관심으로 확대되며 자연스럽게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회장 등에도 드나들고, 신문이나 잡지의 문화면에 눈길도 주게 되면서 삶이 풍요로워진다는 것.

김씨는 더 많은 사람들이 미술품을 사, 미술 시장이 불황에서 벗어나 훌륭한 작가들이 가난의 고통에서 해방되기를, 미술을 공부한 사람들이 일자리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시대가 하루빨리 오기를 바라고 있다.

한 남자의 그림 사랑/ 김순응 지음/ 생각의 나무 펴냄/ 265쪽/ 9800원





주간동아 401호 (p194~194)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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