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14일 오전 전국 북한 민주화를 위한 학생연대 소속 학생들이 한나라당사 앞에서 북한의 인권문제를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자전거 행진을 벌이고 있다.
8월14일 서울 도심에서 북한 인권문제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는 자전거 행진을 벌인 북한민주화네트워크가 작성한 결의문의 일부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는 ‘김정일 타도’ ‘북한 해방’을 목적으로 만들어진 시민단체. 이들의 북한 관련 주장은 한총련이 ‘수구세력’이라고 부르는 보수집단보다도 더 강경해 보인다. 하지만 이 단체 회원들의 ‘성향’을 뭐라 똑 부러지게 단정하기는 어렵다.
6·15 선언 3주년을 맞이한 지난 6월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사무실에 활어횟감 세트가 배달됐다. “더운 날 고생이 많다”며 횟감을 보낸 사람은 인터넷사업가 허현준씨(35). 허씨는 한국의 학생운동이 쇠락하게 된 결정적 계기인 1996년 연세대 점거 농성 당시 실무를 맡았던 장본인이다. 당시 직책은 한총련 중앙집행위원장. 주체사상에 심취했던 허씨가 북한민주화네트워크를 돕고 있는 것은 97년 이후 북한의 기아 상황과 탈북자들의 진술을 접하면서 북한의 실체에 대해 회의가 들었기 때문이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의 기저를 이루고 있는 세력은 허씨처럼 주체사상을 ‘학습’한 NL(National Liberation·민족해방) 계열이다. 북한민주화네트워크 회원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진보세력’이라고 여긴다. 심지어 이들 중 일부는 북한의 주체사상이 김일성 부자에 의해 독재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잘못 사용된 것과 수령론 등이 문제일 뿐 이념으로서의 주체사상은 여전히 유효하며 가치가 있다는 신념을 갖고 있기도 하다. 주사파(NL파)에서 반북(反北)인사로 변신한 상징적 인물로는 주체사상의 틀에 따라 반미자주화운동 이론을 제시한 80년대 운동권의 대표적 이론가 김영환씨(40)와 86년 구국학생연맹 투쟁부장을 지내고 월간 ‘말’ 취재부장이던 당시에 밀입북했던 조유식씨(39·인터넷서점 알라딘 대표) 등이 있다.
주사파에서 북한민주화운동 세력으로 180도 선회한 NL 운동권 출신들은 현 학생운동에도 일부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한총련(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의 지방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유일한 곳이 전북지역이다. 97년 한총련을 탈퇴한 전북총협은 북한민주화네트워크와 같은 노선을 걸으며 한총련에 대해 비판적 자세를 견지하고 있다. 전북대 총학생회는 이라크전 당시 “다른 시각의 접근도 필요하다”며 이라크 민중을 후세인으로부터 해방시켜야 한다는 내용이 담긴 총학생회 명의의 대자보를 붙였다 한총련으로 상징되는 주류 학생운동 세력에게 맹공을 당하기도 했다.
‘북한 실체’에 대한 회의감이 변심 원인인 듯
북한민주화운동을 벌이고 있는 이들의 뿌리인 NL 계열은 88년 ‘북한바로알기운동’을 이끌었다. 북한바로알기운동이 당시 학생운동권에 미친 영향은 엄청났다.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지금 ‘변절한’ NL 계열이 ‘제2의 북한바로알기운동’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어깨를 겯고 통일운동의 씨앗을 뿌렸던 이들이 극과 극으로 갈려 서로를 적대시하고 있는 작금의 현실을 어떻게 봐야 할까.
북한민주화네트워크 관계자는 “북한의 일본인 납치사건을 인정치 않던 일본 좌파는 지금 궁지에 몰려 있다. 북한의 실상을 바로 보기를 거부하는 한총련 내 강경파가 북한의 김정일 정권이 붕괴한 후 김정일 정권의 만행이 고스란히 드러났을 때 극우세력에 대항해 어떤 말을 할 수 있을지 궁금하다”며 한총련을 공격했다. 반면 정태흥 민주노동당 학생위원장(한총련 3기 의장)은 “북한민주화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알고 있다”며 “한국의 현실을 무시한 채 극우세력보다도 더 극우의 목소리를 내는 그들의 주장과 논의는 한국사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