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2

2003.07.10

‘두 얼굴의 사나이’ 디지털 환생

  • 김영진/ 영화평론가 hawks1965@hanmail.net

    입력2003-07-03 10:3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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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 얼굴의 사나이’ 디지털 환생
    이안 감독은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감독이다. ‘쿵푸 선생’에서 ‘센스 & 센서빌러티’, ‘아이스 스톰’, ‘라이드 위드 더 데블’, ‘와호장룡’에 이르기까지 그의 영화들은 한 감독의 작품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다. 놀라운 흡수력으로 다양한 문화와 인종을 빨아들이고 그를 통해 세계를 이해하고 묘사하는 그는 진정한 코스모폴리탄이다. 그렇더라도 ‘와호장룡’을 잇는 이안의 신작이 만화가 원작인 TV 시리즈물 ‘헐크’라는 것은 뜻밖이다. 특히 미국인들에게는 내용이 너무 잘 알려져 있는 이 영화는 특수효과가 중요한, 이른바 블록버스터다. 그가 아무리 재능 있는 감독이더라도 볼거리에 대한 요구에 밀려 뭔가 따로 보여줄 수 있을까라는 의구심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배트맨’이나 ‘엑스맨’과 비교하면 이 영화 속 헐크는 도무지 카리스마가 없다. 특수효과로 태어난 ‘디지털 헐크’가 정상인 상태의 브루스에 비해 터무니없이 크고 민첩한 것도 우스꽝스럽다. 감독도 그 점을 알고 있을 것이다. 극의 후반부에 헐크가 펼치는 스펙터클을 정당화하기 위해 변신 이전의 브루스의 이모저모를 묘사한 영화 초반을 어쩔 수 없이 지루하게 끌고 가는 것이다.

    유약한 천재 과학자인 브루스는 사랑하는 여자 베티에게 사랑 고백도 제대로 하지 못할 만큼 움츠러든 남자다. 그러나 이 소심한 남자의 마음속에는 자신도 모르게 드러나는 괴물 헐크에 대한 매혹이 숨어 있다. 세상에게 헐크는 제거돼야 할 괴물이지만 브루스 자신은 헐크로 변신하는 그 순간을 즐긴다. 이쯤 되면 프랑켄슈타인에서 모티브를 빌려온 헐크 신화의 뿌리를 능히 짐작할 수 있다. 마음속에 뭔가 내밀한 불안을 지니고 그걸 끊임없이 외부로 확장해 힘을 행사하려는 슈퍼 아메리카에 대한 은유를 이 괴물이자 영웅인 헐크에게서 읽어낼 만하다.

    물론 그런 딱딱한 주제 때문에 영화를 볼 이유는 없을 것이다. 영화 ‘헐크’는 인정사정없는 과학자였던 아버지에게서 천형을 물려받은 브루스(헐크)의 어두운 가족사를 응시하면서 적절한 시기에 화려한 스펙터클로 융통성 있게 옮겨간다. 헐크는 ‘사막의 리무바이’(‘와호장룡’의 주인공 무사)다. 이 영화에서 가장 볼 만한 장면은 사막의 비밀기지를 빠져나간 헐크가 그랜드캐니언과 유타의 사막을 거쳐 눈 깜짝할 사이에 LA로 날아가는 장면이다. 디지털 헐크가 지나치게 만화적으로 과장된 캐릭터라고 여겼던 관객도 이 순간만은 입을 다물게 된다. 개구리처럼 뛰어오르는 헐크의 몸뚱이는 세상에서 유배당한 자의 쓸쓸함과 고독과 분노를 느끼게 하며, 나아가 무협영화에서의 무사들의 신묘한 경공술처럼 추상적인 움직임의 아름다움까지 전해주는 것이다. 모두를 흡혈귀로 만드는 흡혈귀처럼 모든 소재를 자기 것으로 만드는 이안 감독은 블록버스터 영화에서도 자기 장기를 잃지는 않는다. 그러나 ‘헐크’는 이전의 이안 감독 영화에 비해 훨씬 들떠 있고 침착하지 못하다. 그래서 그럭저럭 즐길 만한 수준은 되지만 박수를 받을 정도는 못 된다.

    ‘두 얼굴의 사나이’ 디지털 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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