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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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쩌민 벌써 ‘종이 호랑이’로 전락?

신세대 ‘적극 지지’ 속 후진타오 약진 가속 … “세대교체 하라” 당 원로들 나서 퇴진 압력

  • 강현구/ 인하대 산업경제연구소 전문연구원 hanaj@hanmir.com

    입력2003-06-26 11: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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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중국 권력의 새로운 흐름을 감지할 수 있게 하는 두 가지 중요한 소식이 전해졌다. 하나는 후진타오가 장쩌민으로부터 당의 중앙 외사공작영도소조(外事工作領導小組)의 책임을 넘겨받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상하이 최고 갑부인 저우정이(周正毅·42) 눙카이(農凱)그룹 회장이 금융비리사건에 연루되어 조사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중앙 외사공작영도소조는 외교와 안보 분야의 최고정책결정기구로 우리의 ‘국가안전보장회의’에 해당한다. 당 총서기이자 국가 주석인 후진타오가 이 기구의 책임자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중국의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지난 당 대회와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장쩌민은 당과 국가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자리를 유지했다. 이는 곧 국방과 안보 분야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계속 유지하겠다는 장쩌민의 의지로 받아들여졌다. 이런 상황에서 국가 안보의 중요한 정책기구를 후진타오에게 넘겼다는 것은 중국 권력지형에 중대한 변화가 있음을 예고하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인선에서 그간 장쩌민을 대리해 국가 안보의 실무를 담당해온 쩡칭훙이 제외된 점은 주목할 만하다.

    이로 인해 중국 정가 주변에는 갖가지 설이 난무한다. 먼저 장쩌민에게 밀려난 차오스(喬石)가 친(親)후진타오파 당 원로인 쑹핑(宋平), 완리(萬里) 등을 움직여 장쩌민의 완전 축출을 시도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 웹사이트인 ‘둬웨이(多維)’가 미국의 소리(VOA)와 CNN 등을 근거로 이런 소문을 증폭하고 있다. 차오스를 비롯한 일부 당 원로들이 이달 초 당 중앙에 연명한 건의서를 보내 장쩌민의 중앙군사위원회 주석직의 조기 이양을 요구하는 등 퇴진 압력을 가했다고 한다.

    이 소식에 따르면 최근 중국을 휩쓴 사스(SARS·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와 잠수함 사태 등 일련의 위기상황에 장쩌민 일파가 제대로 대처하지 못한 데 반해,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 신지도부들은 신속하고 대담하게 대응해 사태를 조속히 마무리함으로써 당 원로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주었다. 게다가 과거 장쩌민에게 밀려난 차오스 등이 나서 “완전한 세대교체만이 순조로운 국정 운영을 보장한다”고 당 원로들을 설득하고 있다.

    차오스, 장쩌민 축출 소문 파다



    장쩌민은 권력 이양기 때 덩샤오핑이 그랬던 것처럼 ‘국가원로회의’ 형태의 기구를 구성해 권력의 끈을 놓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덩샤오핑이 자신에게 비판적인 당 원로들을 포함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다 결국 원로회의를 무산시켰다는 설이 나돌면서 차오스 등의 움직임이 상당한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다른 소문은 후진타오 등 현재 지도부가 장쩌민을 보호하기 위해 상하이방(上海幇)의 하부를 가지치기하고 있다는 설이다. 이번에 구속된 저우정이의 비리를 고리로 상하이방의 핵심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이자 국무원 부총리인 황쥐(黃菊)가 공격을 받고 있는 데다 이 공격이 정치국 상무위원인 우방궈(吳邦國)와 장쩌민의 아들에게까지 미칠 조짐을 보이자, 현 지도부가 장쩌민이 다치는 것을 우려해 서둘러 봉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건국 이래 최대 금융사기극으로 불리는 눙카이그룹 사건은 황쥐의 상하이 시장 재임기간과 저우정이의 전성기와 맞물린다는 점에서 많은 의혹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저우정이가 은행대출 비리, 상하이 징안구 재개발사업을 둘러싼 보상비 문제, 주가 조작 및 영업실적 위조 등의 혐의를 받고 있는 이 사건과 관련해 중국은행, 건설은행, 흥업은행 등으로부터 대출받은 총액이 100억 위안(약 1조6000억원)에 달하며, 이는 권력의 개입 없이는 불가능한 액수라는 것이다. 결국 이 사건은 황쥐를 주축으로 한 상하이방과 연결돼 있고, 장쩌민 역시 이 사건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추측이 난무한다. 장쩌민을 비롯한 핵심인물을 보호하기 위해 중앙이 나서서 수사를 벌이고 있다는 주장이다.

    현재 중국의 권력구도는 장쩌민을 중심으로 한 기존 권력의 한 축이 무너지면서 후진타오를 비롯한 현 지도부가 약진하는 상황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후진타오와 원자바오 등을 천거한 당 원로들이 장쩌민을 경계하고 있고, 과거 장쩌민의 든든한 ‘배경’이었던 신세대 테크노크라트들이 신지도부의 손을 들어주면서 후진타오의 위상은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반면 장쩌민은 태자당을 중심으로 한 자신의 일파와 함께 고립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쑹핑, 완리 등 당 원로들은 사스 피해와 건국 이래 최대 군사사고라는 잠수함 사태에 대해 장쩌민 일파가 소극적으로 대응해 국정 혼란을 야기했을뿐 아니라 국가 시스템 전반을 위태롭게 만들었다고 비판하고 있다. 비슷한 이유를 들어 신세대 테크노크라트들도 장쩌민에게 보내던 지지를 빠르게 거둬들여 후진타오 쪽으로 옮겨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국의 테크노크라트를 얘기할 때 류샤오치에서 덩샤오핑에 이르는 혁명세대를 1세대로, 장쩌민에서 주룽지까지를 2세대로, 그리고 지금 한창 부상하고 있는 태자당 엘리트들과 문화혁명이 끝난 뒤 대학원에 입학하여 최근 간부 연소화의 바람을 타고 중견간부로 진출한 세대를 3세대로 분류한다.

    하지만 같은 3세대라 할지라도 태자당과 그외 인물들은 기본적으로 입장이 다를 수밖에 없다. 태자당이 막강한 부모를 둔 덕분에 유학을 다녀와 비교적 쉽게 군과 정치에서 핵심인물로 떠오른 사람들이라면, 후자는 힘겨운 문화혁명기를 거치면서 자수성가한 사람들이다.

    이들 신세대 테크노크라트들은 사실상 장쩌민 시대의 은덕을 입은 사람들이다. ‘간부 연소화’ 바람이 없었다면 여전히 현장관리자로 남아 있을 그들이 이미 국가의 중추로 자리잡았다. 하지만 이들이 후진타오 쪽으로 돌아선 이유는 한마디로 후진타오와 ‘코드가 맞기’ 때문이다. 또 장쩌민이 권력 후반기에 지나치게 자신의 몫을 챙기고, 특히 태자당을 대거 기용해 친위부대로 삼으면서 명분을 잃었다는 점도 한 원인이다.

    과거에는 장쩌민의 반(反)부패에 열광하던 이들이 지금은 장쩌민 일파를 겨냥한 후진타오의 반부패에 동조하고 있다는 사실이 중국 정치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들보다 더욱 후진타오에 열광하면서 장쩌민 일파를 몰아치는 젊은 세대들이 있다. 칭화대(淸華大)와 궁칭퇀(共靑團)을 기반으로 하는 이들은 장쩌민 시대에 대해 근본적인 불신을 품고 있다. 이들의 생각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지난 3월 발생한 칭화대와 베이징대의 폭발물 사건이다. 3월 권력 이양을 앞두고 칭화대와 베이징대에서 폭발사건이 발생하자 일각에서 장쩌민 일파의 자작극설이 돌았다. 큰 피해가 없었는데도 오랜 관례를 깨고 공안이 대학 내에 진입하고 대학 곳곳에 CCTV를 설치한 것에 대한 항의와 불신의 표시였다.

    중국의 대학 치안은 일반적으로 바오웨이(保衛)라 불리는 대학경비들이 자체적으로 해결한다. 형사사건이 신고되지 않는 한 공안이 대학 내에 진입하는 일은 거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이 사건에 불순한 의도가 있다는 이들의 주장은 일정 부분 설득력이 있다.

    지금 중국의 권력지형은 급속도로 변하고 있다. 성공적인 정권교체를 끝마친 장쩌민은 자신이 앉았던 자리가 채 식기도 전에 이런 상황이 오리라고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현실정치의 실상은 더욱 복잡하겠지만 민심이 장쩌민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그 최전선에 젊은 세대가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민심 앞에 권력은 초라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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