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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의 창으로 본 요리

태양과 정열 오묘한 ‘멕시코 식탁’

  •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태양과 정열 오묘한 ‘멕시코 식탁’

태양과 정열 오묘한  ‘멕시코 식탁’

까사마야의 ‘몰레 포블라노’는 고추, 아몬드, 초콜릿 등 15가지 이상의 재료를 갈아 만든 소스를 끼얹은 닭고기 요리로, 묘하고 복합적인 맛이 일품이다(왼쪽). 파란 선인장의 미끈미끈한 감촉과 탄력 있게 씹히는 맛이 함께 느껴지는 선인장 샐러드.

모두들 즐겁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마실 것을 한 잔씩 들고 2시간 가까이 느긋하게 저녁식사를 기다리는 사람들. 그러나 칠레의 산티아고에 출장 온 한국 대표단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시계만 바라보고 있었다. 공식 만찬은 오후 7시에 시작했지만 테이블에 안내된 것은 9시가 다 되어서였다. 일본 사람들도 힘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게 우리와 비슷한 상황인 것 같았다. 그러나 30분을 더 기다린 후에야 전채가 나왔고 식사는 밤 12시까지 계속됐다. 6, 7년 전 정부간 교류를 위해 한국 대표단과 함께 라틴아메리카의 칠레를 방문했을 때의 경험담이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외국어로 이야기하며 식사하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아는 사람들은 다 알 것이다. 정작 식사가 시작되자 피곤에 지쳐 졸기 시작하는 한국 사람들이 눈에 띈다. 그런데 이 행사를 주관한 칠레 공무원들은 정말 즐겁게 저녁시간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시간이 흐를수록 활기를 띠면서. 내가 칠레 와인에 관심을 보이자 그 레스토랑에 있는 제일 좋은 와인을 추가로 주문해주기까지 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열리는 공식 만찬의 분위기와는 아주 다른,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라틴아메리카를 ‘축구 잘하는 나라가 많은 대륙’쯤으로만 생각하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중남미 여행을 하다 보면 수많은 문화적 차이에 놀라게 된다. 일단 생활 시간대가 우리와 현저히 다른데, 대부분 느지막하게 저녁을 먹고 한번 놀기 시작하면 새벽까지 정열적으로 시간을 보낸다. 멕시코의 디스코테크에 가면 거의 자정에 가까운 시각에 사람들이 모여들기 시작해서 새벽까지 열정을 뿜어낸다. 중간에 물줄기가 쏟아지기도 한다. 티셔츠가 젖어 몸에 달라붙으면 모두가 아주 관능적으로 보인다.

세종문화회관에서 현재 공연되고 있는 아르헨티나 원작의 ‘델라구아다’를 보면 이와 유사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줄에 매달린 공연자들이 공중에서 날아다니고 관객을 위로 들어올리기도 한다. 공연 도중 엄청난 양의 물이 관객 위로 폭우처럼 쏟아져 내린다. 우리나라 사람들도 남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열광하지만 우리 관객들 중에는 방수처리된 옷을 입고 오는 사람들이 많다.

유럽에 가도 남북은 확실히 차이가 난다. 북쪽 지역 사람들은 저녁을 일찍 먹고 일찍 자는 반면, 지중해 연안 쪽의 사람들은 늦게 먹고 늦게 잔다. 출장중에 만난 해외 파견 공무원들과 얘기해보면 지금까지 그들이 살아온 방식에 회의를 품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화끈하고 정열적인 남미인들의 삶을 보면서 정말 사람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되었다면서. 미국적인, 앵글로 색슨적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볼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들의 이야기다.



태양과 정열 오묘한  ‘멕시코 식탁’

‘마야인들의 집’ 이라는 뜻을 가진 까사마야 내부. 은은한 황금빛 조명과 아기자기한 멕시코 토속품들이 따스하고 편안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미국에 가면 멕시코 사람을 포함한 히스패닉을 많이 만나게 된다. 영어와 스페인어로 함께 기록한 공문서도 자주 볼 수 있다. 또 멕시코 요리를 가장 쉽게 만날 수 있는 곳이 미국이기도 하다.

널리 알려진 것이 토르티야(Tortilla)라는 옥수수 전병에 고기 등을 싸서 먹는 타코(Taco), 고기와 야채를 볶아 뜨거운 쇠판에 올려 내는 화히타(Fajita), 토르티야에 치즈가 걸쭉하게 들어간 엔칠라다(Enchilada) 등이다. 칵테일은 테킬라를 베이스로 한 마가리타, 맥주는 병에 레몬 조각을 끼워주는 코로나가 가장 많이 알려져 있다.

보편적인 외식 장소는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멕시코 레스토랑을 찾는 것이 어렵지는 않다. 서울 이태원의 ‘판초스’가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인데 이곳에서는 수많은 맥주의 종류에 놀라게 된다.

이번에 찾아가본 곳은 서울 강남의 ‘까사마야’(02-545-0591)였다. 스페인어로 ‘까사’는 집이라는 뜻. 따라서 이 레스토랑 이름은 ‘마야인들의 집’이라고 해석할 수 있겠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앞에서 4년간 운영하다 강남으로 옮긴 후 2년째 멕시코 문화와 요리를 알리고 있는 곳이다. 나무기둥 골격에 회벽 칠을 한 이곳의 실내 분위기는 시원하고 아늑한 느낌이었다. 곳곳에 놓인 멕시코 토속품들도 아기자기하다.

이곳에서 손님들이 많이 주문하는 요리는 ‘알람브레 콘 케소’라는 고기요리와 ‘케사디야’라는 치즈, 감자, 닭고기, 버섯 등이 속으로 들어간 멕시코식 파이라고 한다. 실란트로(고수)를 살짝 뿌려 먹는 타코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알본디가스(Albondigas)’와 ‘몰레(Mole)’였다. 이곳의 알본디가스는 치즈를 넣은 고기 완자에 크림치즈와 토마토로 만든 소스를 얹은 것인데 소스의 새콤한 맛이 자꾸 입맛을 다시게 만들었다. 푸른 토마토의 신맛을 치즈의 부드러운 맛이 감싸고 있고 단단한 고기의 육질과 물컹한 치즈의 감촉이 함께 느껴지는 것이 재미있었다.

태양과 정열 오묘한  ‘멕시코 식탁’

치즈를 넣은 고기 완자에 크림 치즈와 토마토 소스를 곁들인 노란색 요리 ‘알본디가스’.

몰레는 메뉴에 준비돼 있는 두 가지 종류 가운데 ‘몰레 포블라노’를 주문했다. 이 요리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대주교가 수녀원을 방문했는데 식사가 채 준비되지 않아 주방에 있는 재료를 전부 갈아서 만들었다는 것이다. 고추, 아몬드, 초콜릿 등 15가지 이상의 재료가 들어간 이 검은색 소스의 맛은 아주 묘하고 복합적이었다. 닭고기 위에 끼얹은 이 소스가 카레 같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한다.

그리고 호기심에 선인장 샐러드(Ensalada De Nopal)를 주문해보았다. 샐러드 자체는 평범한 편이지만 파란 선인장의 미끈미끈한 감촉과 탄력 있게 씹히는 맛이 흥미로웠고 나름대로 먹을 만했다. ‘까사마야’의 음식은 전반적으로 소박하면서도 뒷맛이 좋아 가슴을 훈훈하게 해주는 요리였다. 멕시코 친구 집에 초대된 듯한 분위기 속에서 ‘네그라 모델로(Negra Modelo)’라는 멕시코 흑맥주에 살짝 취해 편안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주간동아 390호 (p84~85)

김재준/ 국민대 교수 artjj@freecha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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