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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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茶 맛이 뭐가 다르기에…

녹차 이어 2라운드 ‘작설차’ 논쟁 가열 … 정체성 찾고 차 대중화 계기 삼아야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입력2003-06-19 13:3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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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茶 맛이 뭐가 다르기에…

    지허 스님(왼쪽)과 수제설록차 명인 신광수씨의 전통차 분쟁이 국내 차문화의 발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다.

    최근의 전통차 논란은 어디까지 갈 것인가. 선암사 지허 스님과 수제설록차 명인 신광수씨 간의 분쟁뿐 아니라 지허 스님과 대흥사 일지암 여연 스님 간의 전통차 논쟁 등을 바라보는 차인(茶人)들은 이번 사건이 소모적인 다툼으로 끝나지 않고 오히려 전통차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논란의 단초는 지허 스님의 책 ‘아무도 말하지 않은 한국 전통차의 참모습; 지허 스님의 차’였다. 이 책에서 지허 스님은 ‘현재 대부분의 차나무는 일제강점기에 들어온 야부기다종으로 자생 차나무는 선암사, 전남 보성 대원사 등 일부에만 있다. 자생 차나무의 차는 다갈색에 구수한 숭늉 맛이 난다’는 주장을 폈다.

    흔히 우리가 전통차로 여기고 있는 ‘녹차’는 쪄서 만드는 차로 일본에서 들어온 왜색차라는 것이다. 일본의 풍토에서 일본인의 입맛과 체질에 맞게 만든 일본차인 녹차는 근본적으로 차나무가 다르고 향, 색, 맛, 효능이 전혀 다르다고 한다. 데쳐서 말린 것이어서 우리면 녹색이 나 녹차라고 하는데, 약간 역겨운 풋비린내가 나며, 녹차를 만드는 녹차나무(야부기다)에 비료와 농약을 주어야 하므로 그 잔류 성분이 몸 안에 들어가 수전증을 유발한다 하여 현재 일본에서는 녹차의 수요가 급격히 줄고 있다는 것. 그런 것이 일본의 다도라는 것과 함께 상업적으로 이용돼 ‘전통차=녹차’로 인식되면서 전통차 행세를 하고 있다는 파격적인 주장이다.

    제조법 ‘법정공방’ 자존심 싸움

    이에 대해 녹차를 주로 만들어온 여연 스님이 3월 중순 불교신문에 ‘차를 알고 써야 차맛 나지’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 반론을 폈다. 여연 스님은 지허 스님의 책이 차의 육종학이나 일반 차 이론을 무시한 글이라고 주장했다. 차나무도 사과나 배처럼 육종을 통해 개량해야 맛과 향이 뛰어난 품종을 얻을 수 있으며 수명이 150년 이내인 야생 차나무를 그대로 놔두면 돌배나 돌사과처럼 점차 찻잎의 질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또 조선시대 다시(茶詩)를 살펴보면 가장 좋은 차에 대해 색은 ‘취색(翠色)’, 맛은 ‘소락재호(옅은 우유나 치즈 맛)’, 향은 ‘진향(眞香) 난향(蘭香) 순향(純香) 청향(淸香)’이라고 돼 있는데 다갈색에 숭늉 맛만 나는 차를 전통차라고 고집하는 건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이처럼 전통차에 대한 두 스님의 의견이 엇갈리듯 이들이 만든 차도 구별된다. 지허 스님의 차는 찻잎을 열 번 이상 볶고 손으로 일일이 비벼 만든 고급품(1통 15만원)인 반면 여연 스님의 차는 저렴하면서도 질이 좋은 것으로 유명하다.

    제2의 논쟁은 작설차 논쟁. 선암사 전 주지 용곡 스님의 아들이자 농림부가 지정한 전통식품 명인인 신광수씨와 현 주지인 지허 스님이 작설차 제조법을 놓고 법정공방까지 벌이는 사상초유의 일이 일어났다.

    전통茶 맛이 뭐가 다르기에…

    드넓은 하동 차밭에서 찻잎을 따고 있는 사람들.

    신씨는 결국 4월 초 출판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6월3일에는 지허 스님과 출판사인 김영사를 상대로 3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신씨는 소장에서 “모든 차는 제조 방법과 과정에 따라 엄연히 그 맛과 향이 다르다. 나는 오랜 기간의 수행으로 독특한 작설차 제조 비법을 익혀 전통식품 명인의 반열에까지 올랐다. 피고는 ‘작설차를 만드는 방법은 전통적 차 제조법 한 가지밖에 없는데도 정부가 비법이 있는 것처럼 인정해 명인으로 지정한 건 잘못됐다’는 내용의 책을 펴내 원고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주장했다.

    이에 지허 스님은 “나는 책에서 한국 전통차 문화의 왜곡을 막기 위해 농림부가 작설차에 대해 올바로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뿐 원고의 이름과 원고가 판매하는 작설차 상표를 직접 거론하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6월13일 가처분신청은 기각됐지만 소송은 진행중이다. 오랜 세월 가까이해온 두 사람이 이런 분쟁에 휘말리게 된 건 전통차에 대한 해석이 달랐기 때문이다. 신씨는 “작설차는 찻잎이 참새 혀 크기만할 때 따서 차를 만들면 가장 감미롭고 향이 좋다 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유구한 차문화 역사 속에 우리 민족의 차란 뜻이 담겨 있다”며 “신광수 수제작설차는 오염원이 없는 청정지역 10만여평의 다원에서 재배해 친환경 유기농산물(재래종) 품질 인증을 받은 찻잎만을 원료로 한다”고 말했다.

    반면 지허 스님은 “작설차는 신씨의 주장처럼 모양만 참새 혀 같아서는 안 되고 색깔이 자줏빛이 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양한 차맛 다양한 입맛 인정을

    그러나 신씨와 지허 스님의 분쟁에는 무형문화재 지정과 관련된 알력도 있어 뒷맛을 개운치 않게 하고 있다. 신씨는 지난해 10월 문화관광부에 전통차 제조에 대한 중요 무형문화재로 지정해달라고 신청했고, 지허 스님 역시 한 달 뒤 같은 신청을 했다. 지허 스님은 “무형문화재 지정 신청은 신씨와 무관하게 2년 전부터 나와 함께 차를 마시고 얘기를 나누는 한국전통자생차보존회 사람들이 준비한 것이다”며 “나는 중노릇이나 잘하는 게 목표지 결코 무형문화재에 욕심이 있는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이런 논쟁을 지켜보는 일반인들은 이런 분쟁이 한국 전통차가 정체성을 찾고 발전하는 데 도움이 되는 쪽으로 결말이 나기를 바라고 있다. ‘차맛 어때’라는 인터넷 전통차동호회 홈페이지 게시판에서 ‘멋과 끼’라는 아이디를 가진 이는 “다객들이 지허 스님의 차 이야기를 얘깃거리로 삼고 있다. 차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고 차를 접하자는 생각은 옳지만 확실한 증거와 검증이 없는 주장은 많은 사람들에게 혼란을 초래할 수 있으므로 조심해달라”고 요구했다.

    경남 하동에서 ‘곡천다원’을 운영하고 있는 이호복씨(40)는 “자칭 차 전문가라고 하는 이들 중 상당수가 독선적이다”며 “막연한 말로 특정한 맛을 표현하고 그 맛이 아니면 모두 저급한 차로 취급하려는 경향이 있는데 무엇보다 차맛은 다양하고, 사람들의 입맛도 제각각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와 관련, 차 관련 단체들은 불똥이 어디로 튈지 몰라 침묵을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차문화협회 김해만 사무처장은 개인적인 의견임을 전제한 뒤 “이번 논란에서 틀린 논점은 바로잡아야겠지만 이전투구식으로 싸우는 모습은 지양해야 한다”며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결론이 나서 차문화가 대중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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