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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 ‘와일드 카드’

형사와 연쇄살인범 ‘숨막히는 추격전’

  •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형사와 연쇄살인범 ‘숨막히는 추격전’

형사와 연쇄살인범 ‘숨막히는 추격전’
경기 침체에 사스 공포까지 가세해 사회 분위기가 어수선하지만 영화판은 신이 나 있다. 수준 높은 한국영화들이 줄지어 개봉되고 있고, 흥행성적도 좋기 때문이다. 반면 외화는 ‘엑스맨2’ 외에는 그다지 힘을 못 쓰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영화가 화성 연쇄살인사건을 다룬 송강호· 김상경 주연의 ‘살인의 추억’(감독 봉준호)이다. 이 밖에도 ‘오! 해피데이’ ‘나비’ ‘선생 김봉두’ ‘별’ ‘오세암’ ‘동승’ ‘와일드 카드’ 등 삶에 대한 독특한 시선을 담고 있는 방화들 역시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

특히 5월16일에 개봉하는 ‘와일드 카드’(감독 김유진)는 ‘살인의 추억’과 어깨를 견줄 만한 ‘대어’로 평가받고 있다. ‘와일드 카드’ 역시 ‘살인의 추억’처럼 경찰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있는 데다 탄탄한 시나리오와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받쳐주고 있어 롱런을 예고하고 있다.

영화는 형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기존 영화들과는 조금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모든 사건을 철저히 형사의 시점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기존 영화들이 범인과 형사를 비슷한 비중으로 보여주며 예측 가능한 결말로 이끌어갔다면 이 영화는 실제 사건이 발생했을 때 형사들이 어떤 일들을 겪는지에 초점을 맞췄다. 따라서 관객은 마치 실제로 서울 어느 경찰서 형사들의 수사 과정을 실시간 생중계로 보고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진다.

주요 사건은 최근 몇 년 동안 우리 사회에 널리 퍼졌던 ‘퍽치기(취객들을 가해하고 지갑을 터는 수법)’ 4인방의 연쇄살인. 영화는 베테랑 형사 오영달(정진영 분)과 신참 형사 방제수(양동근 분)가 이들을 쫓는 과정을 담는다.



형사와 범인들은 영화 중·후반부에 만나기 때문에 극적 긴장감은 오히려 형사들의 일상적인 움직임에서 조성된다. 형사들이 피해자를 바라보는 안타까운 시선,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사건에 대한 긴장감, 범인과 혈투를 벌일 때 느끼는 생명의 위협 같은 것들….

형사와 연쇄살인범 ‘숨막히는 추격전’
그런데 대한민국 경찰이 도대체 어떻다는 말인가. 2002년 살인 강도 강간 절도 폭력 등 범죄 건수 53만2243건, 범인 검거 39만6885건, 1인당 보호해야 할 국민 수 526명, 5년 연속 순직 공무원 수 최다, 한 달에 15일 이상 야간근무, 업무중 상해 피해 903명, 순직 38명. 이것이 대한민국 경찰의 오늘의 모습이다. 이런 상황이지만 평범한 경찰들에 초점을 맞춘 영화는 드물었고, 바로 이 점을 김유진 감독이 파고들었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약속’ 등으로 유명한 김감독은 4년에 한 번씩 작품을 내놓는다고 해서 ‘올림픽 감독’이라고 불린다. 그만큼 그는 한 작품에 몰입하는 타입이다. 김감독은 “강력반 형사들도 범인의 손에 들린 칼을 보면 무서워 떠는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면서도 고된 길을 선택한 이들의 집념과 순수함에 끌렸다”며 “그들도 밥 먹고 잠자고 연애하고 결혼하는 평범한 사람이라는 점을 영화에 담고 싶었다”고 말했다.

양동근과 정진영의 밀도 있는 연기는 감독의 이러한 의도 탓에 자칫 지루해질 수 있는, 극적 요소가 부족하다는 영화의 ‘약점’을 잘 가리고 있다. 어눌한 양동근이 취조하면서 범인의 가족사를 자신의 가족사로 바꿔 범인의 마음을 사로잡는 연기도 재미있고, 집에서는 더없이 자상한 아빠지만 밖에서는 다혈질로 변해 끊임없이 사건을 일으키는 오영달 역을 연기한 정진영의 열연도 볼 만하다.

‘약속’ ‘달마야 놀자’ 등에 출연했던 정진영은 기자회견에서 “이 영화는 묘하게 사람 냄새를 풍기는, 그러니까 주인공들의 행동에 대해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 않고 그대로 보여주기 때문에 결국에는 자연스럽게 그들의 행동이 관객에게 받아들여지는 그런 영화다”라고 소개했다.

클라이맥스는 주인공 형사들의 동료애. 오래 전 범인이 휘두른 칼에 다친 경험이 있어 위험한 일은 슬슬 피하고 실적을 채우기 위해 ‘중삐리’들이나 잡아들이는 겁 많은 형사 장칠순(김명국 분)이 자신을 선배로 보지 않고 늘 무시하는 방제수를 대신해 ‘퍽치기’ 두목의 칼을 맞는 장면이 압권이다.

영화의 재미를 이어가는 또 하나의 미덕은 삶이 밴 유머다. 억지로 웃기려 지어낸 상황이 아니라 실제 삶 어디에서건 마주칠 수 있는 잔잔한 유머들이다. 이런 여러 강점 덕분에 ‘와일드 카드’는 1993년을 화려하게 열었던 ‘투캅스’와 이후 나온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공공의 적’ 등 완성도 높은 형사영화의 계보를 잇는 한 편의 수작이 될 것 같다.





주간동아 384호 (p86~86)

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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