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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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수 울리는 함량미달 에이전트

  • 최원창/ 굿데이신문 종합스포츠부 기자 gerrard@hot.co.kr

    입력2003-02-12 17:3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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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수 울리는 함량미달 에이전트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입단하기 위해 출국했다 엑셀시오르에 임대된 김남일(왼쪽)과 영국 사우스햄턴행이 좌절된 이천수.

    한국 축구선수들이 2002년 월드컵 이후 주가가 높아지며 속속 유럽에 진출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에게 힘이 되어주어야 할 국내 에이전트들은 여전히 △국제협상력 부재 △경험 미숙 △무자격 에이전트의 난립 △한탕주의적 일처리 등 많은 문제점을 보이고 있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웨스트햄 진출에 실패한 김남일이 최근 네덜란드 페예노르트에 입단하기 위해 출국했다 현지에서 엑셀시오르에 임대됐다. 이렇게 된 데는 현지 시장에 대해오판한 에이전트의 책임이 컸다.

    한국 에이전트의 문제점은 프로축구 초창기부터 제기돼왔다. 심지어 아프리카에서 ‘골목축구’나 하던 선수를 `‘국가대표’로 둔갑시켜 수입하는 일까지 벌어지기도 했다. 에이전트의 문제점이 크게 부각된 것은 1999년 최용수와 김도근의 잉글랜드 웨스트햄 입단이 좌절되면서부터다. 당시 에이전트는 입단이 확정됐다는 보도자료를 돌린 후 이들과 함께 잉글랜드로 떠났지만 웨스트햄은 영국에 도착한 이들에게 테스트를 요구해 혼선이 빚어졌다. 한국 국가대표의 주축이었던 이들은 우여곡절 끝에 테스트를 받고 자존심만 구긴 채 한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밖에 없었다.

    이후에도 에이전트의 크고 작은 실수는 계속됐다. 시드니올림픽 대표였던 신병호(현 전남)는 에이전트를 잘못 만나 3년간 국제 부랑아로 전락하기도 했다. 최근 무적 선수로 고생했던 황선홍과 유상철, 잉글랜드 사우스햄턴행이 좌절된 이천수, 교토 잔류와 아인트호벤행을 두고 혼선을 거듭한 박지성 모두 에이전트의 국제정보 무지와 미숙한 일처리로 손해를 본 선수들이다.

    미국 메이저리그의 `전설적인 홈런왕 베이브 루스의 장화 배달원 크리스터 월시로부터 시작된 에이전트는 80여년이 흐른 지금 스포츠계에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전문가 집단으로 성장했다. 에이전트의 고향인 미국이 매년 선정하는 `‘스포츠계의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100명엔 늘 ‘슈퍼에이전트’가 6∼7명씩 얼굴을 내민다. 산업으로 성장한 스포츠 세계에서 에이전트는 빠질 수 없는 중요 요소가 된 것이다.



    축구의 경우 에이전트는 두 종류가 있다. 하나는 일반적으로 잘 알려진 선수대리인으로서의 에이전트(Player Agent)이며 다른 하나는 경기를 주선해주는 경기중개인으로서의 에이전트(Match Agent)다. 국제축구연맹(FIFA)은 두 종류의 에이전트를 구분해서 자격증을 주고 있다. 통상 에이전트가 선수로부터 받는 수수료는 연봉의 4∼8%이며 이적 때는 10%+α,광고 계약 때는 30% 수준에 이르기도 한다.

    FIFA 홈페이지에 따르면 한국엔 총 16명의 공인 에이전트가 있다. 그러나 실상은 이보다 훨씬 많은 `‘무자격 에이전트’들이 국내 축구계를 오염시키고 있다. 무자격 에이전트들은 체계적인 선수 관리와 이적을 중계하는 공인 에이전트와 달리 `‘한몫 잡고 끝낸다’는 식의 무성의와 주먹구구식 일처리로 선수들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

    선수 울리는 함량미달 에이전트

    스포츠 에이전트의 세계를 그린 영화 ‘제리 맥과이어’.

    에이전트라면 영화 ‘제리 맥과이어’의 톰 크루즈처럼 선수의 말동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선수의 가족과 친구들도 관리해야 하며 필요하면 통역도 해야 한다. 한마디로 선수의 손과 발, 그리고 입이 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한탕주의’에 빠진 에이전트는 선수의 계약이 끝나면 그것으로 그만이다. 이렇다 보니 유럽에 진출한 선수들이 초창기 적응에 실패하는 일이 다반사다. 또 자격증조차 없는 이들은 유럽과 일본의 또 다른 에이전트나 중개인을 2중, 3중으로 끌어들여야 하기 때문에 비용이 만만찮게 든다. 이 비용 부담은 고스란히 선수가 져야 하기 때문에 문제는 더욱 크다.

    FIFA는 2002년 3월1일 선수들의 입단 및 이적 관련 업무를 처리하는 플레이어 에이전트의 난립을 막기 위해 자격기준을 강화했다. 또 각국 축구협회에서 자격시험을 실시하도록 정관을 바꿨다. 이에 따라 대한축구협회는 지난해 9월 제1회 플레이어 에이전트 시험을 실시했고 앞으로 매년 3월과 9월 두 차례 시험을 통해 자격자를 배출해 장기적으로 무자격 에이전트를 퇴출시킬 계획이다. 협회 역시 고질적인 해외시장 정보 부족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하지만 협회는 최근 이런 조치에도 불구하고 무자격 에이전트의 난립이 계속되자 보다 강경한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잘못된 중개로 문제가 발생할 경우 축구계에서 영원히 퇴출시킬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고 있는 것. 이 같은 조치는 선수를 보호하고 그들의 가치를 높여 한국의 축구시장을 건전하게 만들기 위한 것이다.

    에이전트가 난립하는 데는 선수들의 책임 또한 크다. 선수들은 막 스타로 떠오를 때쯤 에이전트와 계약을 맺게 된다. 이때 이것저것 재보지 않고 지인을 통해 소개받아 계약하면 해외진출 때 낭패를 보기 쉽다. 안정환이 월드컵 이후 유럽진출에 실패한 것도 여러 에이전트에게 위임장을 남발한 게 주요 원인이 됐고 최근 해외진출 실패를 거듭하고 있는 이천수도 에이전트와의 2중계약이 문제가 됐다.

    에이전트는 분명 스포츠 세계를 움직이는 필수불가결한 `‘커뮤니케이션 채널’이다. 이들이 있기에 선수들은 운동에 전념할 수 있고 자신의 기량에 걸맞은 대우를 보장받을 수 있다. 또 에이전트는 선수와 구단의 거래에 있어 공증인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건전한 에이전트 문화는 그 국가 스포츠 문화의 성숙도와 비례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스포츠는 그렇지 못했다. 밀실에서 이뤄지는 나눠먹기식 일처리가 많아서인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에이전트를 한낱 연예인 매니저 정도로 여기는 듯하다.

    이제는 에이전트뿐 아니라 협회 연맹 구단 선수와 팬들 모두 건전한 에이전트 문화를 위해 조언을 아끼지 말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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