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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미진진 ‘말싸움 행진’ 코미디 뺨쳐

미디어 위력 상대 후보 공격 연일 포문 … 갖가지 비유·조어 양산 ‘票心도 출렁’

  •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흥미진진 ‘말싸움 행진’ 코미디 뺨쳐

흥미진진 ‘말싸움 행진’ 코미디 뺨쳐

대통령선거 기간 동안 대선후보 진영 등 정치권에선 말 공방이 치열하게 전개됐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는 12월1일 부산의 한 시외버스 터미널의 대형버스 운전석에 앉아 핸들을 잡고 운전하는 포즈를 취했다. 한나라당의 첫번째 TV광고에도 버스가 등장했다. ‘경륜 있는 버스 운전사가 버스를 운행해 승객들이 만족해한다’는 컨셉이었다. 한나라당만이 나라를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의도였다.

이 직후 민주당 대변인실은 “이후보는 운전면허증이 없다”는 논평을 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도 12월10일 경제분야 TV 합동토론회에서 다른 말에 슬쩍 끼워서 “이후보는 운전면허증 없지요? 나는 있는데….”라고 잽을 날렸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가 노후보와 공동유세에 나서자 한나라당은 “물과 기름이 만났다”고 비아냥거렸다. 이 말을 들은 정대표는 “물과 기름이 합쳐지면 폭발력 있는 수소 에너지가 생긴다”고 맞받았다. 그러자 한나라당은 “물과 기름이 만나면 가짜 휘발유가 될 뿐”이라고 되받아쳤다. 한나라당은 ‘가짜 휘발유 넣어 대한민국이라는 자동차를 운행할 거냐’는 카피로 노-정 연대를 거듭 비난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민주당 노무현 후보 진영 간의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말말말 싸움’이 올해 대통령 선거의 또 다른 화제로 떠올랐다. 소위 누구 ‘말발’이 더 세냐에 따라 대선 전체 판세가 요동쳤다. 예를 들어 국가정보원 도청 공세에선 노후보측 말이 ‘백중우세’였다. “노후보도 도청당한 거 아니냐”는 논리가 먹혔다. 행정수도 이전 논란에선 한나라당 기세가 살아났다.

물과 기름→수소→가짜 휘발유 공방



양측 간 말싸움이 치열해진 것은 미디어 위력이 과거 대선 때보다 훨씬 세졌기 때문이었다. 투표일 5일 전까지 부동층이 30%에 이르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이었다. ‘귀가 얇은’ 유권자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말의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각 당의 후보, 선대위 고위 관계자, 대변인 등이 공·사석, 유세장에서 내뱉은 말이나 논평은 언론에 그대로 전해져 유권자들의 표심에 상당한 영향을 주고 있다.

민주당 이낙연 대변인은 노-정 후보단일화 직후 노후보의 지지율이 급상승하자 이를 ‘단풍(單風)’이라고 표현했다. 12월9일 한나라당이 제동을 걸었다. 이규택 원내총무는 국회 귀빈식당에서 민주당 정균환 총무와 만났다. 이총무는 “요즘 날씨가 많이 추워졌다”면서 “단풍 다 지겠다”고 넌지시 정총무를 자극했다.

한나라당-민주당은 자갈치 아줌마, 학부모 등 TV 찬조연설자의 신분문제로 치열한 공방을 벌였다. 노후보의 TV 찬조연설자 중엔 가수 신해철씨도 있었다. 신씨의 찬조연설이 방영된 직후 한나라당은 신씨가 마약을 복용한 전력이 있음을 우회적으로 거론했다. 신씨는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마약 복용과 관련된 질문을 받자 “나는 ‘군대에 가서’ 마약 했다”며 ‘군대’를 힘주어 말했다.

흥미진진 ‘말싸움 행진’ 코미디 뺨쳐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위 왼쪽)가 불교계 인사와 악수하고 있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거리유세를 펼치고 있다(아래).

대선에 뛰어든 정치인들은 명분을 얻기 위해, 유권자들을 설득하기 위해, 또는 퇴로를 만들어놓기 위해 상황에 따라 여러 비유를 구사했다. 국민통합21 정대표는 12월3일 첫 TV 합동토론회 직후 “노-정 단일화는 노후보와 민주당 정대철 선대위원장 간 연대 아니냐”고 말했다. 정대표 특유의 ‘관망적’ 행보가 드러나는 대목이었다. 결과적으로 며칠 뒤 노후보는 차기 정부를 정대표와 공동 운영하기로 했다. 정대표는 차기 정부 총리후보로 본인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선 “어린애 장난 같다”는 말로 일축했다.

이인제(IJ) 의원이 민주당을 탈당, 자민련에 입당하자 김종필(JP) 자민련 당시 총재는 12월2일 “가는 사람 잡지 말고 오는 사람 막지 말라 했다”고 말했다. 잡지 말라는 것은 민주당에 한 말이었고, 막지 말라는 것은 환영의 표시였다. 그러나 민주당이 이의원을 친절하게 배웅해줄 리는 만무했다. 이종상 부대변인은 “이인제 의원의 가출 습관이 또 도졌다”고 말했다. JP는 IJ에게 자민련 총재 자리를 선뜻 내줬다. 그러나 두 사람은 미묘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JP 측근은 “수렴청정은 당분간 계속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IJ는 “예리한 화살도 속도가 느리면 어느 것도 뚫을 수 없다”며 JP에게 각을 세웠다. ‘노후보 당선을 막기로 한 이상 빨리 한나라당을 돕자’는 뜻이었다.

선거 정국 초반엔 한나라당에 입당하는 인사들이 많았다. 6년 전 한나라당을 탈당, 민주당 경남도 지부장을 역임한 이원계씨는 다시 한나라당으로 복당하면서 “계절이 바뀌면 이동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철새론’을 ‘정면돌파’한 셈이었다. 79세의 김재순 전 국회의장이 한나라당에 입당하자 민주당은 “한나라당 평균 나이가 또 높아졌다” “잊혀진 옛 정치인을 다시 보는 즐거움이 있다”고 평했다. 그러나 대선 중반 이후 노후보에게도 각계 인사들이 몰렸다. 유종필 공보특보는 “늦게 오면 자리가 없다”고 말했다.

막판 혼전 양상이 거듭되면서 한나라당은 노-정 단일화, 행정수도 이전 공약, 현 정부 계승자론과 관련 노무현 후보를 비난하는 갖가지 비유를 동원했다. ‘OH NO 무현!’ ‘노무현 후보는 무소속이냐’ ‘노-정 연대는 잘못된 만남’ ‘부산의 아들이 아닌 목포의 데릴사위’ ‘국민후보가 아닌 노사모 후보’ ‘서울 이전 공약은 단군 이래 가장 큰 거짓말’ 등이 그것이다. 여기엔 민주노동당도 가세했다. ‘노-정 공동정부는 노몽현 정부’ ‘이회창-노무현 후보 사이엔 실개천이 흐르고 이들과 권영길 후보 사이엔 강물이 흐른다.’(이상 김종철 민노당 대변인)

걸쭉한 입심 유감없이 발휘

노후보측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후보가 당선되면 재산을 헌납하겠다고 발표하자 노후보는 “그럴 기회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한나라당은 설당’(한나라당의 도청 의혹설 제기에 대한 반발), ‘이후보는 금배지 폭식증 환자’(의원영입에 대한 비판), ‘연탄 만지던 손으로 밀가루 반죽 할 수 있나’(이후보의 정치개혁방안 발표에 대한 비판) 등 이후보에 대한 직격탄이 이어졌다. 12월12일 이후보의 부산 유세장엔 “노무현은 부산 사람이 아니다”라고 쓴 플래카드가 걸렸다. 이에 대해 민주당 이미경 대변인은 “노후보는 부산 사람이다. 호적 바꾸지 말라”며 이후보를 공격했다.

평소에도 입심 좋기로 유명한 한나라당과 민주당 대변인실 관계자, 의원들은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기 위해 노력했다. 덕분에 볼거리, 읽을 거리를 풍성하게 제공한 측면도 있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고위 당직자들의 경우 기자들에게 공개되는 오전 선대위 회의 석상의 발언에 꽤 공을 들였다. 미리 발언록을 써와서 보고 읽는 간부들도 많았다. 한나라당 김영일 선대위 총괄본부장은 오전 선대위 회의에서 조금이라도 더 훌륭한 문장을 구사하기 위해 당일 새벽 배달되는 신문까지 꼼꼼히 읽을 정도였다. 그러나 양당 사이 오간 설전 중엔 상대에 대한 저급한 조롱도 적지 않았다. “쭛쭛쭛의원은 형체도 없는 연탄가스 같은 존재다” “A의원은 비겁한 ×, 치사한 ×다” 등 거의 욕설에 가까운 험구도 등장했다.

노무현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강한 인상을 준 표현은 “내가 대통령이 되면 김대중 정권도 아니고, 호남정권도 아니고, 노무현 정권이다”였다. 이회창, 권영길 후보도 자신의 ‘감표 요인’을 ‘역설적 표현’으로 차단하려 했다. 이후보는 12월9일 조계사 한 스님으로부터 ‘이미지가 냉철하다’는 지적을 받자, “혼돈의 시기엔 냉철한 대통령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권영길 후보측은 인지도 낮은 기호 4번 후보라는 점을 ‘4번 타자론’으로 상쇄시켰다. 반미 촛불시위 규모는 대선의 돌발변수가 된 듯했다. 전북의 양초 생산 회사인 동백양초 관계자는 한 언론 인터뷰에서 “양초가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는 말로 분위기를 전했다.

국민통합21 정몽준 대표는 “5년 뒤 성원에 보답하겠다”며 ‘대통령의 꿈★’을 미뤘다. 대통령이라는 자리에 대해 그는 “국민에게 서비스하는 공복(公僕)”이라고 정의 내렸다.



주간동아 2002.12.26 365호 (p46~48)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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