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4

2002.12.19

‘히트상품’ 뭐가 이렇게 많아

연말이면 나눠 먹기식 선정 남발 … 1년도 못 버티고 사라진 품목 수두룩

  • 성기영 기자 sky3203@donga.com

    입력2002-12-12 12: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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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히트상품’ 뭐가 이렇게 많아
    ‘2002 히트상품 10관왕’ ‘○○일보 소비자 대상 수상’ ‘△△신문 히트상품 선정’. 해마다 연말이 되면 각 신문사에서 경쟁적으로 선정하는 히트상품 목록에 올라가는 제품들은 선정 사실을 앞세워 대대적인 광고전을 펼친다. 올해도 예외는 아니어서 각 신문사들은 이미 12월20일을 전후해 발표될 히트상품 선정 작업에 들어간 상태. 덩달아 히트상품에 선정되기 위한 각 기업들의 물밑 로비전도 치열해지고 있다.

    그러나 정작 마케팅 관련 단체나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최근 들어 거의 모든 신문사들이 비슷비슷한 방식으로 히트상품을 선정하다 보니 차별성을 갖기 어렵고 심지어 신문사들의 히트상품 선정이 ‘나눠 먹기’식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해마다 신문사당 적게는 20여개에서 많게는 70∼80개까지 히트상품을 선정하기 때문에 매년 연말이면 쏟아져 나오는 히트상품은 400∼500개에 이른다.

    매년 400~500개 쏟아져

    고려대 박찬수 교수(경영학)와 이준석 연구원이 지난 10년간 각 신문사들의 히트상품 선정을 분석해 내놓은 논문 ‘히트상품 선정 10년의 현황 분석’에 따르면 10개 신문사가 히트상품을 선정하기 시작한 1997년 하반기에는 총 361개의 히트상품이 선정되었고 그 이후 히트상품 숫자는 꾸준히 늘어나 2001년 하반기에는 총 594개의 히트상품이 선정됐다.



    신문사들에 의해 히트상품이 선정되기 시작한 92년부터 따지면 지난해까지 무려 5269개의 히트상품이 선정, 발표됐다. 언론사별로 따져보면 매출액이나 발행부수가 적은 신문일수록 히트상품 선정 건수가 늘어나는 현상도 나타났다. 박교수는 “히트상품 선정이 사실상 광고 유치와 직접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박교수는 또 “일부 신문사의 경우 사고(社告)를 통해 ‘공신력 제고를 위해 히트상품 숫자를 제한한다’고 밝혀놓고 다음 해부터 히트상품 숫자를 2배 가까이 늘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말했다.

    지나치게 많은 상품들이 히트상품으로 선정되다 보니 신문사 내부에서도 나눠 먹기식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대가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히트상품 선정을 담당하고 있는 한 신문사 사업국 관계자도 “선정 아이템이 너무 많다는 내부 지적이 나와 올해부터는 가능하면 50개 품목 이하로 제한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마케팅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문제점이 히트상품을 지나치게 남발하는 것뿐만은 아니다. 히트상품으로 선정된 품목 중에는 일반 소비자들이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소비재와는 거리가 먼 품목들도 있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기나 물수건 제조기, 거짓말 탐지기, 좌변기 냄새 배출기처럼 생필품과는 거리가 먼 제품들도 히트상품에 선정되는 것. 이런 제품들은 생필품이나 각종 서비스 등 일반 소비자들의 구매 행위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는 상품들에 대한 공신력 있는 정보를 제공한다는 히트상품 선정의 취지와는 거리가 있는 것들이다.

    특히 마케팅 전문가들은 시장에 선을 보인 지 1년도 채 안 되는 제품의 ‘반짝 인기’를 보고 히트상품으로 선정하는 관행은 없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신문사들이 히트상품 선정 대상을 ‘출시된 지 2∼3년 이하’로 못박고는 있으나 시장에 나온 지 1년이 채 안 된 신제품을 배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대부분의 신문사들은 선정 대상에 아무런 제한을 두고 있지 않는 형편.

    이렇다 보니 실제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선정했던 히트상품 중에는 선정 이후 1년을 채 버티지 못하고 시장에서 사라져간 품목들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사례로 현대자동차의 아토즈(ATOZ), 이동통신업체들에서 너도나도 내놓은 발신전용 씨티폰이나 인터넷쇼핑몰 삼성옥션과 같은 경우를 꼽는다. 현대자동차의 아토즈는 출시 직후 나온 대우자동차의 마티스에 밀려 시장에서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졌고 삼성옥션 역시 옥션의 인기에 편승해 사업을 시작했으나 곧 문을 닫아버렸다. 90년대 초반 한때 몇몇 신문사들은 레이저디스크플레이어(LDP)와 같은 전자제품을 경쟁적으로 히트상품에 선정했지만 이 또한 시장 트렌드를 읽지 못한 상품으로 소비자들의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히트상품’ 뭐가 이렇게 많아

    대부분의 신문사들이 선정, 발표하고 있는 히트상품은 이미 5000건을 넘어섰다.9개 신문에 의해 ‘히트상품’으로 선정됐던 현대차 아토즈(오른쪽)는 경쟁업체인 대우의 마티스 출시 이후 부진을 면치 못했다. 한국통신의 시티폰 역시 일부 언론에 의해 히트상품으로 선정됐으나 성공하지 못한 사례로 꼽힌다.

    또 초고속인터넷 시장에서 1, 2위를 다투고 있는 KT의 메가패스와 하나로통신의 하나포스를 동시에 히트상품에 선정하거나 효능이나 공신력 면에서 끊임없이 논란을 불러일으켰던 건강보조식품이나 수험교재 등을 히트상품에 선정해온 일부 신문사들의 행태도 문제점으로 꼽히고 있다.

    물론 히트상품을 신문사들에서만 선정, 발표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마케팅 관련 단체들에서 선정, 발표하는 상품들에 비해 각 언론사들이 선정하는 히트상품은 공신력이나 인지도 면에서 소비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다른 단체들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 수준이다.

    한국생산성본부(KPC)의 경우 미국의 ACSI제도를 원용해 매년 국가고객만족도(NCSI)를 조사해 발표하고 있다. KPC는 비영리단체를 표방하고 있고 선정 방식도 비교적 공정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또 한국능률협회(KMA) 자회사인 능률협회컨설팅의 경우 각 기업에서 제출하는 공적서류를 기초로 서류심사를 한 뒤 마케팅 전문가와 관련 교수 등으로 구성된 심사위원이 기업을 방문해 현장 실사를 벌인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1993년부터 히트상품 선정을 시작해 일간지 중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한국경제신문은 편집국 기자 등을 통해 50개 안팎의 항목군별로 추천을 받고 이를 토대로 시장조사를 거쳐 히트상품을 결정한다. 마지막 선정 과정에는 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의 심의를 거치는데 위원 명단은 외부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한국경제신문 사업국 관계자는 “기업들로부터 신청을 받지 않기 때문에 지나치게 상업적으로 흐를 수 있는 가능성을 차단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정작 히트상품 선정에 참여해 본 전문가들의 반응이 그리 호의적이지만은 않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연세대 장대련 교수(경영학)는 “히트상품이라는 용어 자체가 ‘일회성’ 성공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마케팅에서 중요한 것은 장수하는 브랜드지 반짝 히트가 아닌데도 각 신문사들이 단기적 성과에만 주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장교수는 또 “지금처럼 질보다 양 위주로 히트상품을 선정해 희소가치만 떨어뜨릴 바에야 상의 종류를 대폭 줄이는 것이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이라고 제안했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남는 궁금증 하나. 여러 가지 논란과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일단 히트상품으로 선정되기만 하면 과연 매출에서의 폭발적인 ‘히트’로 이어지는 것일까.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고려대 박찬수 교수는 “소비자들이 물건을 살 때 히트상품 선정과 같은 외부적 평판에 의존하는 것은 제품의 품질을 제대로 모를 때에 국한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주부들이 비교적 값싼 생필품인 치약이나 샴푸 등을 고를 때에는 이것저것 써보고 선택하지 ‘히트상품’이라는 광고를 보고 고르지는 않는다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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