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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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졌다 세졌다 ‘권영길의 힘’

TV토론 맹활약 후 인기 수직상승 … 후원금 급증에 가는 곳마다 악수 공세 ‘權風 실감’

  • 남도영/ 국민일보 기자 dynam@kmib.co.kr

    입력2002-12-12 09: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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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커졌다 세졌다 ‘권영길의 힘’

    12월3일 TV토론장으로 들어가는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운데).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바람’이 일고 있다. ‘노풍(盧風)’‘정풍(鄭風)’에 이은 ‘권풍(權風)’이라고까지 불린다. 시작은 12월3일 실시된 대선후보 TV 합동토론회부터다. 토론회의 ‘양념’ 정도로 치부됐던 권후보는 이회창 노무현 후보를 동시에 비판하며 단숨에 전국적인 정치인으로 부상했다. 권후보는 한나라당은 ‘부패원조당’, 민주당은 ‘부패신장개업당’이라고 공격했고, 이회창 노무현 두 후보를 보수정치인으로 몰아붙였다. 그 결과 권후보는 국민으로부터 “제일 시원하다”는 반응을 얻는 데 성공했다.

    TV토론 이후 권후보와 민노당 관계자들은 ‘권풍’을 실감하고 있다. 7일까지 전국을 순회했던 권후보는 가는 곳마다 악수 공세를 받았다. 민노당의 각 지역 선대위로부터도 ‘한번 내려오라’는 요구가 빗발치고 있다. 4일 기아자동차 노조 방문시에는 출근시간이었음에도 노동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진풍경이 연출됐다. 이전에는 보기 힘든 모습이었다. 중앙당의 온라인 후원금이 3배 가까이 증가했을 뿐만 아니라 지지한다는 전화가 끊임없이 걸려오고 있다. 당직자들이 고무됐음은 물론이다.

    일부 盧 지지자들, ‘사표’ 논리로 權 비판

    하지만 TV토론 이후 권후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높다. 주로 민주당 노후보를 지지하는 쪽으로부터의 비판이었다. 이들은 ‘권영길 찍으면 이회창 된다’라는 이른바 ‘사표 논리’를 펼쳤다. 노후보와 권후보의 지지 계층이 겹치다 보니, 권후보가 노후보의 표를 나눠 가지게 되고 결국 이회창 후보에게 유리해진다는 논리다. 실제로 TV토론 이후 노사모와 민주당, 민노당의 홈페이지에는 권후보와 노후보 지지자들 사이에 ‘사표’를 둘러싼 열띤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커졌다 세졌다 ‘권영길의 힘’
    민주당은 겉으로는 태연하지만 속으로는 애가 타는 듯하다. 대선이 양강 대결로 박빙의 승부를 보일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므로 권후보의 표는 주요 변수로 등장할 가능성이 크다. 민주당 민영삼 부대변인은 “권후보가 TV에서 혼자서 사회자도 하고 판정관도 했다”면서 “부동표 일부를 흡수할 수는 있겠지만 막상 투표에 들어가면 사표 방지 심리 때문에 득표로 이어지지는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나라당은 이런 상황을 내심 즐기는 편이다. 이회창 후보의 측근들은 “권후보에 대해서는 원칙적으로 비판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면서 “권후보가 많은 표를 얻지는 못하겠지만, 그의 선전이 불리한 것은 아니다”고 분석했다. 지역별로 권후보를 지지하는 층이 울산을 비롯해 수도권 공단지역 등 노동자 밀집지역이어서 노풍 분산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민노당은 이 같은 ‘사표 논리’를 부정한다. 언제까지 진보 진영이 ‘비판적 지지’에만 머물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김종철 대변인은 “이후보와 노후보를 비교해서 말한다면 노후보가 낫다고 할 수도 있다”면서 “하지만 노후보가 한계를 가진 이상 진보 진영이 노후보를 밀기 위해 단합해야 한다는 논리는 이제는 먹혀들지 않는다”고 분명히 말했다.

    또 단순한 호기심이 실질적인 표로 연결될지도 미지수다. 민노당에 덧씌워진 ‘레드 콤플렉스’를 극복할 수 있을지도 알 수 없다. TV토론이 레드 콤플렉스를 어느 정도 희석시켰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에는 민노당의 주장을 위험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유권자가 대다수다.

    커졌다 세졌다 ‘권영길의 힘’

    12월5일 경남 창원 시내 한 상가에서 상인과 악수하고 있는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이제 관심은 권후보가 이번 대선에서 얼마만큼의 표를 얻을 수 있을지에 쏠리고 있다. 진보정치를 표방하고 나섰던 역대 진보 진영 후보들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15대 대선 때 국민승리21의 간판으로 나선 권후보는 30만6026표를 얻는 데 그쳤고, 14대 대선에 출마했던 무소속 백기완 후보는 23만8647표를 얻었다. 우리 사회에서 ‘진보’를 내걸고 얻을 수 있는 표가 30만표 아닌가라는 비관적인 목소리도 나온다. 하지만 민노당은 올해 대선에서 내심 두 자릿수 득표를 목표로 하고 있다. 100만표 이상을 받겠다는 뜻이다. 김대변인은 “진보정당의 주요 지지층은 학생과 화이트칼라 노동계층이었으나, 이번에는 블루칼라 노동계층과 소상인들이 가세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러한 지지 계층 확산에 TV토론이 매개체가 된 것은 물론이다.

    하지만 단순히 TV토론만으로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긴 부족하다. 민노당은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8.1%의 정당 득표를 기록했다. 이번 TV토론에 권후보가 참여할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정당 득표율이 바탕이 됐다. 재미있는 것은 민노당이 당시 전남에서 14%의 지지를 얻었다는 점이다. 그것은 민노당이 펼쳐왔던 쌀개방 반대투쟁이 낳은 결과라고 당 관계자들은 주장한다. 정치권이 끊임없이 국민의 지탄을 받는 상황에서, 민노당이 농민들의 입장을 대변해 투쟁에 나섰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여중생 미군 장갑차 사망사건도 권후보에게 유리한 국면을 만들어주고 있다. 민노당은 여중생 사망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권후보가 항의시위에 참여했고, 당력을 모아 각종 시위를 주도하거나 참여하고 있다. 미국에 가 있는 항의시위단 중에도 민노당원들이 상당수 포함돼 있다. 지난해부터 펼쳤던 상가임대차보호법 투쟁도 민노당이 적극적으로 주도했다. 민노당 관계자들은 끊임없이 민생 현장에 밀착해 들어가는 당의 활동 방식이 서서히 국민들로부터 ‘민노당은 기존 정당과 다른 당’이라는 인식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한다.

    고정적으로 당비를 내는 열성당원의 힘도 민노당이 기존 진보정당과는 다른 점이다. 현재 민노당원은 3만2000여명에 달한다. 이들은 고정적으로 월 5000∼1만원의 당비를 꼬박꼬박 내고 있다. 이들이 내는 월 2억원의 당비로 민노당의 살림이 꾸려진다. 결코 많은 돈은 아니지만, 정당이 당원들이 내는 당비로 운영되는 일은 한국 정치사상 초유의 일임은 틀림없다.

    민노당은 물론 이번 대선에서 당선을 목표로 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대로라면 2004년 17대 총선에서 원내 진출이 가능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정당투표제가 도입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민노당이 지방선거에서 얻은 8%만 얻더라도 비례대표를 통해 4명의 국회의원을 확보할 수 있다. 여기에 울산과 창원 등에서 지역구 의석을 추가할 경우 한국 진보정당으로서는 처음으로 원내에 진출하는 기록을 세울 수도 있다.

    코앞으로 다가온 16대 대선에서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사표 논리’와 ‘양강 대결’의 틈바구니에서 목표한 두 자릿수 득표를 달성하고, 진보정당의 뿌리내리기에 성공할 수 있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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