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60

2002.11.21

경부선·1번 국도도 비켜간 개바위

  • 김두규/ 우석대 교수 dgkim@core.woosuk.ac.kr

    입력2002-11-14 13: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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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부선·1번 국도도 비켜간 개바위

    ▲개바위는 호랑이 명당의 먹이에 해당된다.<br>▼기차가 개바위를 피해 달리고 있다.<br>▶ 개바위 뒤에 그 사연을 적어 넣은 표석이 보인다.

    충남 연기군 전의면 유천리 양안이 마을 앞으로는 경부선이 지나고, 경부선과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탄약창으로 들어가는 철도가 있다. 그리고 두 철로 사이에는 노거수(老巨樹)와 바위 몇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일명 ‘개바위(狗岩)’다. 바위들 중 큰 것은 어미 개가 누워 있는 형상을 하고 있으며, 둥글둥글한 작은 바위들은 강아지들을 연상시킨다. 이곳에는 ‘구암사적(狗岩事蹟)’이라는 표석도 있는데, 표석에 씌어진 글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

    ‘전의 이씨 시조인 태사공 도(全義李氏太師公諱棹)의 묘소는 풍수상 엎드린 호랑이 형상(伏虎形)이라 한다. 묘소의 북동쪽(寅方)으로 500m 떨어진 곳에 어미 개가 강아지를 거느리고 있는 형상의 바위들이 있는데, 이것은 엎드린 호랑이의 먹이로서 명당의 필수인 개바위이며, 우리 전의 이씨 자손들이 소중히 여겨온 것이다. 1902년 경부선 철도와 1909년 탄약창 철도 부설 당시 전의 이씨 모두가 뜻을 합해 이 개바위를 철거의 위험으로부터 구해 보존할 정도로 전의 이씨가 영원히 후세에 전하는 유적이다. 경오년(庚午年) 6월 전의 이씨 화수회 본부.’

    단지 바위 몇 개를 지키기 위해 전의 이씨 종중 전체가 나섰고, 지금까지 100년 넘게 보존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개바위 옆으로는 1번 국도도 지나간다. 도로 확포장 공사가 진행됐을 당시 사라질 위기도 맞이했을 터이지만, 개바위는 의연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경부선·1번 국도도 비켜간 개바위

    엎드린 호랑이 형상의 명당인 전의 이씨 시조묘.

    전의 이씨 문중에서는 왜 이렇게 개바위를 소중하게 여길까? 표석의 내용에서도 짐작할 수 있듯이 전의 이씨 시조인 태사공 이도(李棹)의 묘 때문이다. 현재 전의 이씨 문중은 시조묘의 명당 발복 덕분에 자손이 번창하고 명문을 이룰 수 있었다고 생각하고 있다. 풍수지리에서는 호랑이 형상의 명당론이 자주 등장한다. 풍수 형국론(물형론)에 의하면 ‘사나운 호랑이가 숲을 나올 때 그 앞에 개가 누워 있는 형상(猛虎出林臥犬形)’이 가장 이상적인 명당이다. 사나운 호랑이 형상의 산은 산세가 웅장할 뿐만 아니라 강한 기운이 엿보여야 한다.

    그런데 이곳 전의 이씨 시조묘는 낮은 산언덕 끝에 있을 뿐만 아니라 주변 산세도 부드럽다. 따라서 이곳 명당을 사나운 호랑이가 숲을 뛰쳐나오는 형상(猛虎出林形)으로 볼 수는 없다. 만약 사나운 호랑이라면 그 500m 전방에 있는 개가 불안할 것이며, 결국 이곳은 불안한 땅이 되고 만다.



    이곳은 호랑이가 느긋한 자세로 엎드려 있는 복호형(伏虎形)이다. 호랑이가 느긋하게 엎드려 있다는 것은 배가 부르다는 뜻이다. 전방에서 강아지들에게 젖을 주고 있는 어미 개도 배부른 호랑이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다. 호랑이도 느긋하고 새끼를 거느린 어미 개도 편안하다. 그렇지만 호랑이와 개는 서로를 항상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적절한 긴장관계가 형성된다. 이곳이 좋은 땅인 이유다.

    이 때문에 전의 이씨 문중에서 개바위를 소중하게 다루어왔고, 경부선 철도뿐만 아니라 1번 국도의 노선도 바꾸게 한 것이다. 앞으로도 수많은 철도와 도로가 개설되거나 확장될 것이다. 그러나 전의 이씨가 이 땅에서 살아가는 동안은 개바위는 결코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실전 풍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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