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2002.11.07

‘강북 뉴타운’ 투기꾼 배만 채울라

개발 발표 이후 매물 뚝·호가 쑥 … 교통난 가중·주변환경 악화 등 부작용도 우려

  • 고종완/ RE멤버스 대표이사 re119@unitel.co.kr

    입력2002-10-31 13:16:00

  • 글자크기 설정 닫기
    ‘강북 뉴타운’ 투기꾼 배만 채울라

    강북 뉴타운 시범개발지 중 성북구 길음동 일대.

    10월23일 서울시는 강남과 강북의 균형 개발을 위해 서울 은평구 진관내·외동, 성동구 왕십리, 성북구 길음동 등 3곳을 뉴타운 시범지구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은평 뉴타운은 신시가지형으로, 길음 뉴타운은 주거중심형으로, 왕십리 뉴타운은 도심형으로 각각 개발될 예정이다.

    뉴타운 건설은 자급자족 기능을 갖추도록 한 ‘신도시’ 개발 방식과는 달리 도로 학교 공원 등 사회기반시설을 우선 확보하는 ‘주거단지’ 개발 방식이다. 시행자인 도시개발공사는 환지와 토지 수용 방법을 혼용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재개발 밀집지역인 길음 뉴타운은 현행대로 지역조합을 통해 개발하되 도로망 확충 등 공공시설을 지원하도록 했다.

    서울시는 장기적으로 강북지역을 5대 권역으로 나누어 연말까지 각 구청의 신청을 받아 제2의 뉴타운 단지를 추가 지정할 계획이다. 이명박 서울시장은 2012년까지 뉴타운 10개년 계획이 추진될 경우 강북의 주거환경이 현재의 강남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10년 후 강북의 주택보급률은 103.6%로 강남권(107.3%)과 차이가 좁혀지고, 1인당 도로 면적은 강남권(9.0㎡)보다 넓은 9.5㎡로 확대되며 주차장과 도시가스 보급률도 크게 늘어나는 등, 강남과의 격차가 없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매도인들 위약금 물며 계약 파기도

    ‘강북 뉴타운’ 투기꾼 배만 채울라

    서울 은평구 진관내동 일대는 71년 이후 개발이 제한돼 서울의 낙후지역으로 남아 있었다.

    서울시 발표대로라면 강북이 강남처럼 바뀌는 것은 시간문제인 것처럼 보인다. 과연 강북이 10년 안에 강남처럼 탈바꿈할 수 있을까. 장밋빛 계획과 기대가 난무하는 가운데 계획 추진에 따른 문제점이나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시범단지 발표 후 여기저기서 벌써 투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쌓였던 매물이 순식간에 사라지고, 나온 매물도 가격을 높여 부르는가 하면 중개업소마다 매물을 찾는 매수인들의 문의전화가 폭주하고 있다. 길음지역 재개발 지분 가격이 평당 50만원 정도 올랐으며 진관내·외동 땅값도 오를 조짐이다. 왕십리 대로변 노후주택 대지 가격도 평당 600만~650만원을 호가해 추가 상승 기대감으로 매물이 없다.

    실수요자들은 주거, 상업, 생태, 문화 기능을 고루 갖춘 신시가지로 개발되는 은평 뉴타운에 관심을 갖는 반면, 투자수요자들은 상업, 업무기능 위주로 개발되는 왕십리 일대에 관심을 집중하고 있기 때문이다.

    발표 후 이미 체결했던 매매계약을 해약하는 사태도 속출하고 있다. 계약금의 2배를 위약금으로 물면서까지 매도인이 계약 자체를 파기하는 것이다. 강남의 일부 큰손과 사채업자를 낀 중개업자들도 무차별 매물 확보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 때문에 강남권의 재건축 아파트가 집값 상승을 주도했듯이 강북권은 재개발 시범지구가 가격 상승의 진원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주 말에 필자에게도 ‘진관내·외동지역 토지를 지금 사서 개발계획이 구체화될 때 팔면 큰 시세차익을 거둘 수 있지 않겠느냐’는 투자상담이 줄을 이었고, 직접 현장답사를 요구하는 투자자도 있었다. 재개발이 본격화돼 이주가 시작되면 이주 수요 증가로 인근지역의 전세대란마저 우려된다. 한마디로 시범사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지난해 이후 강남권 재건축 사례에서 보았듯이 재개발 입주권 및 인근지역의 집값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렇다면 이들 지역에 집이나 땅을 사두기만 하면 대박을 터뜨릴 수 있을까. 상대적으로 싼 땅값 때문에 초기 투자금이 적게 들기 때문에 재개발이 가시화되면 큰 폭의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가 팽배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토지 수용이나 환지 방식으로 재개발이 추진될 경우, 공시지가보다 약간 높은 수준에서 보상이 이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이에 따라 실제 보상가는 시세에 훨씬 못 미칠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해 사업 초기 높은 프리미엄을 주고 추격 매수한 사람은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고 환금성도 제약을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강북 뉴타운’ 투기꾼 배만 채울라

    서울 중구 신당동 교통안전회관 옥상에서 본 왕십리 뉴타운 개발예정지.

    또한 재개발은 기본계획 수립과 구역 지정에서부터 사업시행 인가를 거쳐 입주할 때까지 보통 10년 이상 걸리는 장기사업이다. 게다가 법적 절차가 복잡하고 변수가 많아 자칫 조합원이나 세입자의 반발에 부닥칠 경우 사업 지연이 불가피하고 추가 부담금과 금융비용이 크게 늘어난다. 한마디로 투자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말이다.

    따라서 실수요자라면 사업추진 속도나 세부 계획을 지켜본 후 재개발 윤곽이나 수익성이 어느 정도 드러난 시점에서 투자하는 것이 안전하다.

    2조6000억원에 이르는 사업비 조달도 큰 걸림돌이다. 적자에 시달리는 시 예산에서 강북권 재개발 사업에 거금을 쏟아붓는 것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앞서 발표한 청계천 복원과 마곡지구 개발에 필요한 사업비까지 고려하면 어떻게 그런 천문학적인 예산을 단독으로 조달할지 의문이다.

    엄청난 개발비를 충당하기 위해 고밀도 아파트 건설이 불가피해져 도심 교통난이 가중되고, 주변환경이 더 훼손될지도 모른다. 고밀도 개발을 전제로 보상을 요구하는 주민과 정치인들의 민원에 시달리다 보면 초고층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고 지금의 난개발 문제가 심화될 수 있다.

    1980년대 말 200만호 주택건립을 위해 졸속으로 시행되었던 5대 신도시 개발 계획이 당초 목표와는 달리 자족기능을 상실하고, 베드타운으로 전락해 결국 오늘날의 수도권 교통대란 및 환경파괴의 고통만 양산한 사례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강북 재개발은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렇다고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 구체적인 재원 확보 방안과 관계 부처별로 충분한 협의를 거쳐 단계별 세부 계획을 마련한 뒤에 추진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자칫 투기꾼들의 배를 불리는 투기만 조장한 채 용두사미로 끝나거나 고밀도 개발로 주거환경이 더 악화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세입자나 영세민들의 주거권이 침해되지 않고 선량한 주민들이 피해를 입지 않도록 투기 억제는 물론이고 임대주택 공급과 전세 대책 마련에도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