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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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 가출 … 어른들은 책임 없나요”

‘가출소녀 인권대회’ 큰 관심 속 열려 … 연극 통해 악덕업주-원조교제 ‘한 맺힌 고발’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02-10-31 12:2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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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대 가출 … 어른들은 책임 없나요”

    가출소녀 인권대회 ‘꽃들에게 희망을’에 참가한 소녀들이 세상으로부터 손가락질 당하는 자신의 모습을 형상화한 연극 ‘엄마! 엄마!’를 공연하고 있다.

    ”엄마, 아빠, 선생님 모두 다 날 싫어했어요. 이제 내가 사라졌으니 두 다리 뻗고 편히 자겠죠? 난 아닌데. 난 한순간도 엄마를 그리워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무대 위의 한 소녀가 울먹이자 객석에서도 울음소리가 터져나온다. 10월22일 서울 대방동 여성플라자에서 열린 가출소녀 인권대회 ‘꽃들에게 희망을’의 풍경이다. 이 행사는 전국의 보호시설에 살고 있는 200여명의 가출소녀들이 모여 벌인 것. 선도보호시설전국협의회(회장 이명식)가 주최하고 국무총리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위원장 이승희)가 후원했다.

    소녀들은 이날 자신들의 사연을 담은 연극 ‘엄마! 엄마!’를 공연하고 사회와 어른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를 소리 높여 외쳤다.

    “세상의 모든 남자들! 당신들 집에 있는 딸만 소중합니까. 우리도 똑같은 사람입니다. 어떻게 딸 같은 우리들과 원조교제를 하고 2차를 갑니까?”

    “겨우 돈 몇 푼 쥐어주고 우리를 철저하게 이용해먹는 업주들! 당신들이 우리 몸값으로 외제차 타고 빌딩 지을 때 우리는 빚더미에 눌려 도망도 못 치고 손님을 받습니다. 사람이면 사람답게 살아요!”



    아버지의 상습적 성추행을 피해 집을 도망쳐 나온 이미경양(가명), 어머니의 무관심에 상처를 받고 가출한 김용희양(가명) 등 가출소녀들이 고함을 칠 때마다 객석의 소녀들도 박수치고 환호했다.

    사회의 관심과 보호 ‘애타는 호소’

    “10대 가출 … 어른들은 책임 없나요”
    이들은 가출했다는 이유만으로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진실을 밝히고 보호와 관심을 촉구하기 위해 이날 행사에 참여했다.

    “사람들은 우리를 보면 ‘비행청소년’이라고 손가락질부터 해요. 왜 집을 등지고 나와야 했는지, 거리를 헤매고 살 길을 찾아 방황하며 얼마나 힘든지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죠. 내 얘기를 하면서 이해받고 싶었어요.”

    지난해 10월 집을 나와 현재 창원 ‘여성의 집’에 살고 있는 김혜진양(16)은 가출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며 자신의 사연을 이야기했다. 그를 가출로 내몬 건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죽음과 떠맡겨지다시피 가게 된 큰집에서의 생활.

    “큰엄마, 큰아빠는 완전히 남이었어요. 저에게 관심조차 없었죠. 부모님의 죽음을 받아들이기도 힘든데 큰엄마, 큰아빠의 냉정함은 너무 큰 상처가 됐어요. 견디다 못해 가출했다가 차비가 떨어져 전화를 했는데 ‘들어오지 말라’고 하시더군요. 필요 없다고. 그래서 8개월을 집도 없이 떠돌아다녔어요. 다행히 창원 ‘여성의 집’에 들어오게 됐는데 지금이 마음도 편하고 훨씬 좋아요.” 가출하면서 중학교 3학년을 중퇴한 김양은 현재 ‘여성의 집’ 부설 대안학교인 ‘범숙학교’를 다니며 내년 4월의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범숙학교 이승석 교사는 “흔히들 가출소녀라면 `불량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이해해주는 따뜻한 환경을 만나면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열심히 살아간다”며 “이들을 가출할 수밖에 없도록 만든 가정과 사회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어른들이 책임지고 청소년들을 보호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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