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2002.11.07

내숭 떨지 마! 당신도 밝히잖아

국내 최초 음란카페 ‘G-SPOT’… 감춰진 성과 섹스 솔직한 표현 오르가슴 공론화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입력2002-10-31 12: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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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성년자, 숫총각, 숫처녀, 만취한 자, 강간범, 섹스를 극도로 혐오하는 자, ×××씨(대선주자 중 한 명)의 출입을 금함-주인 백’.

    10월23일 밤 국내 최초의 음란 바(BAR) ‘G-SPOT’(9월 중순 개업)에 들어서는 순간 든 느낌은 ‘당혹감’이었다. 성을 억압하거나, 성 앞에서 근엄한 자, 섹스를 무시하는 사람은 들어오지도 말라는 주인장의 ‘경고’가 일단 발길을 멈추게 했기 때문. 성에 대한 무지와 내숭을 배격한다는 문구 앞에 진정 자유로울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음란 바’라는, 다소 당혹스러운 닉네임만 생각하면 금세 눈에 띌 것 같지만 서울 홍익대 인근에서 G-SPOT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얀 바탕에 G-SPOT이라는 작은 글자만 가득한 바의 간판에서 ‘음란’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면 이 바에 들어갈 자격이 충분한 사람이다. G-SPOT은 여성의 성기 내부에 숨은 가장 강력한 성감대를 지칭하는 전문 학술용어로, 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성에 대한 이해 정도가 수준급이라고 보아도 무방하기 때문. 바 이름에서 벌써 이 카페에 모이는 사람들이 얼마나 성적 오르가슴에 천착하는지를 눈치챌 수 있다. 자신의 성과 섹스의 성향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성을 먼저 공개해야 하고, 또 그러기 위해서는 서로의 정보를 터놓고 이야기할 공간이 필요했다는 게 음란 바의 등장 목적.

    간판을 ‘뚫고’ 계단을 내려서면 온통 여성의 성기를 상징화한 조형물들이 벽을 장식하고, 바 안은 성과 관련된 상품이나 그림, 상징물들로 도배가 되어 있다. 우선 계단 맞은편에 붙은 이 바의 상징 기호인 ‘둥근 원을 절반으로 가른 느낌표’는 많은 것을 의미한다. 이곳을 찾은 손님들은 그것에서 ‘느낌’이라는 도식적이고 얌전한 발상을 하기보다는 ‘페니스’, ‘질’, ‘클리토리스’와 같은 발칙한 상상을 하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물론 이곳을 만든 사람들의 의도도 바로 그것이다.



    섹스 무시하는 사람은 오지 마라

    내숭 떨지 마! 당신도 밝히잖아

    바 내부에 전시된 남성들의 음모.

    계단을 지나 출입문을 여는 순간 여성의 나체 사진과 남녀 모두 성기를 드러낸 춘화가 눈길을 끄는가 싶더니 왼편으로는 놀랍게도 남성들의 ‘음모’가 전시돼 있었다. G-SPOT의 개업 취지에 동조하는 35명의 남성이 자신들의 음모를 직접 뽑아 액자에 넣어 걸어놓은 일종의 ‘음모 전시장’이다. 누구에게나 있지만 표현하기는 망설여지는 상상력이 ‘음란’이라면, 이들은 자신의 음모를 공개함으로써 음란의 ‘공공화’를 막는 사회적 관행을 끊은 셈. 이 전시회는 체모가 노출됐다 해서 ‘음란영화’로 낙인 찍히고 해당 장면이 삭제되는 현행 영상물 심의기준에 대한 항변의 뜻을 담고 있기도 하다. 바측은 음모 기증자가 300명이 될 때까지 ‘범 G-SPOT ×털 모으기 운동’을 계속할 예정.

    20여평이 조금 넘는 바 안에는 이외에도 ‘음란’을 ‘만끽’할 수 있는 소재로 가득하다. 손바닥만한 얼굴에 늘씬한 몸매를 자랑하는 8등신 여자 마네킹은 손에 채찍을 들고, 징이 박힌 브래지어와 정조대를 착용하고 있다. 도발적인 이 마네킹의 시선이 닿는 맞은편에는 거대한 여성의 성기가 테이블 위를 덮고 있다. 그리고 그 안쪽 자궁 부분에는 테이블들이 놓여 있고, 벽에는 그 안에서 힘을 잃은 듯한 거북이 한 마리가 애처롭게 걸려 있다.

    카페 곳곳에 성교를 하는 춘화가 전시된 것은 물론, 메뉴판에도 갖가지 체위로 섹스를 하는 1700년대 유럽의 춘화가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안주 이름도 ‘페니스 소시지’, ‘페니스 돈까스’, ‘유방 포테이토’ 등이다.

    하지만 역시 이곳을 찾는 고객들에게 인기 절정의 코너는 성인용품(섹스용품) 전시장. 70여점의 성인용품은 이곳을 찾는 손님들의 자위행위와 피임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된 것이다. 그중 ‘딜도’(여성용)와 ‘쭉쭉이’(남성용)는 술 취한 손님들의 손이 가장 자주 머무는 곳. 바에 와서 사용법과 느낌을 서로 공유하고 공동구매에 나서는 여성들도 있다.

    내숭 떨지 마! 당신도 밝히잖아

    스튜어디스 출신의 바 주인 이연희씨와 바의 내부 모습.

    “자위행위는 자신의 섹스 성향과 성감대를 파악하는 데 무엇보다 좋은 기구입니다. G-SPOT에 와서 자연스럽게 이 기구를 접했고, 값싸게 구입하려고 공동구매를 했죠.”

    이 바를 찾은 한 무리의 여성들은 실제 자신들이 공동 구입한 딜도를 시험해보고 있었다. 여성용 자위기구가 신음 소리를 내며 떨기 시작하자 여성들은 환호를 지르며 좋아했고, 남자 손님들은 “한번 해보라”는 등 시연을 부추겼다.

    애인과 함께 이 바를 찾은 한 여성 고객은 “처음엔 내숭을 떨다가 이 바에 와서 너무나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나도 사용하고, 애인도 쭉쭉이를 사용했는데 애인이 나보다 자위기구를 더 좋아하는 것 같아 걱정”이라고 말했다. G-SPOT 바의 자위행위에 대한 정보는 화장실에까지 이어진다. 남자 화장실에는 화장지 한 장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방법에 대한 설명이 사진까지 첨부돼 비치돼 있을 정도.

    사실 이 바의 주인장 이연희씨(27)는 이미 인터넷상에서 여성들의 ‘오르가슴 바로 알기 운동’으로 이름이 널리 알려진 인물. ‘음란 바 G-SPOT’을 소개할 때 항상 ‘야한 년들이 만든’이라는 수식어가 붙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이 바가 인터넷 여성 사이트 ‘팍시러브’(www.foxylove.net)의 ‘직영 바’가 된 것도 그런 연유에서다.

    화장실엔 자위행위 방법 설명

    내숭 떨지 마! 당신도 밝히잖아

    성행위를 직접적으로 묘사한 조각물 사진(위)과 각종 성인용품들이 손님의 눈길을 끈다.

    “여성을 1000명이나 상대했다는 시티헌터조차 여성의 몸에 대해 제대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반발로 시작한 사이트가 벌써 회원 수만 1만7000명이 넘는 사이트로 컸지요.” 그녀가 운영하는 이 사이트는 음란 바 G-SPOT이 추구하는 ‘즐거운 섹스, 제대로 아는 성’이란 주제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않는다. 사이트의 별칭이 ‘대한 여성 오르가자미 잡기 운동본부’가 된 것도 바로 그 때문. 실제 G-SPOT을 찾는 손님들 대부분이 이 사이트의 회원들이다. 온라인상의 성담론의 장을 오프라인, 즉 현실세계에 옮겨놓은 것이 바로 음란 바 G-SPOT이다.

    하지만 이씨는 G-SPOT의 언론 공개를 달가워하지 않았다. “음란 바라고 하니까 어디 북창동 뒷골목의 아가씨들이 나체쇼 하는 곳으로 생각하거나 술 따라주는 아가씨를 주무를 수 있는 곳으로 생각하는 손님들이 종종 있어요. 우리 바는 건강한 성담론이 이루어지는 곳이고 감춰진 성을 공개하는 성의 해방구이지, 성을 상품화하고 판매하는 곳이 아닙니다.” 이씨는 ‘못된 생각’을 하고 바를 찾는 사람이 있다면 ‘무조건 사절’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음란 바 G-SPOT에서는 인터넷 팍시러브 회원들의 정기모임뿐만 아니라 자위행위에 관한 정보를 나누는 모임, 오럴섹스 바로 하기 시연회, 살사댄스 모임, 반나체 파티(벗지 않으면 들어오지 못하는 파티) 등 기존의 성 관념을 깨는 각종 파티와 모임이 개최될 예정이다.

    과연 ‘음란’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일까. 이 시대가 규정하는 관행상의 ‘음란관’에도 지각변동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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