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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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린 플레이’ 마음먹기 나름

‘위파사나 명상’ 대표팀 지도 김병현 박사 … 흥분 가라앉히고 집중력 키워 AG서 큰 효과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입력2002-10-30 16: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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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들린 플레이’ 마음먹기 나름

    한 선수와 심리 상담중인 김병현 박사.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가볍게 따돌리고 2위를 기록하며 목표를 초과 달성한 데는 스포츠 선수들의 명상 수련도 한몫했다.

    남자 높이뛰기 종목에서 아시아경기대회 2연패를 이뤄낸 육상의 간판스타 이진택 선수(30·대구시청). 금메달을 목에 건 이진택은 곧장 자신을 보살펴준 한 스포츠 심리 전문가에게 전화를 걸어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연발했다. 그에게 ‘최고수행(peak perfor-mance)’, 즉 ‘신들려 플레이하는 상태’라는 심리 명상을 지도해준 김병현 박사(체육과학연구원 수석연구원)에 대한 감사 인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기 몇 달 전까지만 해도 극심한 슬럼프에 빠져 있던 그를 구원해준 이가 바로 김박사였기 때문.

    사실 이진택은 남자 높이뛰기 종목에서 10년 넘도록 “아시아에선 적수가 없다”는 평가를 들어왔지만,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는 예선 통과에도 실패할 정도로 정신적, 육체적으로 ‘망가진’ 상태였다. 그런 그가 아시아경기대회에 대비해 김박사를 만난 이후 아나빠나, 위파사나 명상 등을 하면서 최고수행의 경지를 터득해 2연패의 위업을 달성한 것.

    비단 이진택뿐만 아니다. 아시아경기대회에서 평소 실력 이상의 기량을 발휘한 선수들 중에는 김박사의 수련 지도를 받은 ‘제자’들이 적잖다.

    평소 자기 기량 이상 실력 발휘



    ‘신들린 플레이’ 마음먹기 나름

    양궁과 사격 등 고도의 정신집중을 요하는 운동 경기일수록 명상 효과가 크다.

    탁구 여자복식에서 중국의 만리장성을 허물고 금맥을 캐낸 석은미(26·현대백화점)의 경우 지난 8월 제주도 전지훈련에서 발을 다치는 등 악조건을 무릅쓰고 따낸 금메달이어서 값어치가 더욱 높다. 석은미는 세계 최강인 중국 복식조와의 경기에서 이기는 장면을 항상 머릿속에 그리는 명상 수행을 해왔고, 결국 실제 경기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뒀다.

    특히 탁구의 경우 김택수 류지혜 등 명상 수행을 한 선수들이 유난히 많은 것도 특징. 2000년 시드니올림픽 금메달리스트인 류지혜가 탁구 결승전에서 위기상황에 몰리자 수건으로 얼굴을 닦는 척하면서 ‘최고수행’ 상태에 몰입, 중국선수를 물리치고 금메달을 차지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중국의 막강 역사들에 밀려 동메달에 그친 역도의 김순희(경남도청)도 심리 명상의 덕을 톡톡히 본 경우다. 김순희는 아시아경기대회 전 매일 혼자 산속에 들어가 명상 수행을 했다. 마음을 가라앉힌 상태에서 머릿속으로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는 그림을 그리는 훈련을 반복한 것. 이렇게 머릿속으로 구체적인 장면을 그림으로써 실제 경기에서와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게 ‘최고수행’의 비결. 그렇게 해서 김순희는 평소 자기 기량 이상을 발휘했다는 것이다.

    태릉선수촌의 한 관계자는 “요즘 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 사이에서 심리 명상이 시합에 효과가 있었다는 얘기가 퍼져 명상에 관심을 보이는 선수들이 많다”고 전했다. 실제 위파사나, 참선 등 명상 수행이 흥분된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력을 키울 수 있다는 점은 스포츠 영역 곳곳에서 확인되고 있다. 특히 양궁과 사격 등 정신집중을 요하는 운동 경기일수록 그 효과는 크다.

    스포츠계에서 일고 있는 이 같은 수행 열기는 일반 대학으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용인대를 중심으로 한 각 대학의 스포츠관련 학과에서는 앞다퉈 참선과 요가 등 명상 프로그램을 속속 개설하고 있다. 가장 먼저 명상 프로그램을 도입한 용인대는 현재 무도대학 내에 ‘자아명상’ ‘자아와 실현’ 등의 심리 명상 강좌를 개설해, 학생들의 성취도를 높이고 있다.

    스포츠 심리 명상 전문가로 17년째 국가대표팀의 정신훈련을 지도해오고 있는 김병현 박사를 만나 명상과 스포츠 승률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얘기를 들어보았다. 태릉선수촌과 바로 이웃한 체육과학연구원 내 그의 사무실에는 곳곳에 명상 관련 책자들이 꽂혀 있어 마치 ‘도사’의 방을 방문한 듯한 느낌도 들었다.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 참가한 선수들이 심리 프로그램의 하나로 ‘최고수행’을 했다고 하는데, 어떤 명상 수행법인가.

    “최고수행이란 한마디로 자신의 기량을 100% 이상 발휘하는 상태라고 할 수 있다.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흔히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플레이를 잘했던 경험이 있거나, 혹은 TV를 통해 일류 선수가 경기를 매우 잘하는 장면을 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바로 이런 것이 ‘신들려 플레이하는 상태’인 최고수행의 경지다.”

    김박사는 탁구선수 김택수가 최고수행의 경지에 올랐던 체험을 적은 종이를 꺼내 보여주었다. 거기에는 ‘나는 신체적으로 매우 이완된 것을 느꼈으나, 진정으로 힘이 솟구쳤고 각성되었다. 나는 실제로 불안이나 두려움이 없었으며, 모든 것이 전체적으로 즐거웠다. 나는 내가 해야 할 것들에 대해 생각하는 것조차도 하지 않았다. 모든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 같았다’라는 소감이 적혀 있었다.

    ‘신들린 플레이’ 마음먹기 나름

    ‘최고수행’이라는 명상 심리 프로그램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김박사(위). ‘최고수행’을 하기 전 자신의 심리상태를 기술한 선수들의 글.

    -‘최고수행’의 경지로 가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방법을 사용하는가.

    “무엇보다도 선수들이 경기에서 침착하게 자신의 기술을 펼치고 또한 경기중 맞는 위기상황에서 효과적으로 벗어날 수 있도록 정신적인 이완능력과 집중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필요하다. 바로 이것을 고양시키는 데 동양의 아나빠나나 위파사나 명상 수행이 커다란 역할을 한다.”

    그는 처음엔 선수들의 심리치료를 위해 서양식 심상훈련(자신의 목표를 떠올리는 훈련)과 참선 등 다양한 요법들을 가르쳐보았다고 한다. 그런데 서양식 심상훈련은 동양의 명상 수행에 비해 그다지 효과가 높지 않았고, 참선의 경우 스님들을 모셔와 강의를 듣게 하는 등의 방법으로 수행을 이끌었는데 선수들이 따라하기 무척 어려워하더라는 것. 이를테면 ‘무(無)자’를 떠올리는 등의 화두선(話頭禪)이나 생각을 끊어버리라는 수행 지침의 경우 아마추어 명상가들에게는 버거웠던 것.

    이후 그가 1999년에 채택한 것이 호흡을 조절한 상태에서 경기와 관련해 마음에 떠오르는 한 가지 생각을 끝까지 쫓아가는 위파사나 명상법. 다행히 이 수행법은 선수들도 쉽게 따라하고 효과도 좋은 것으로 나타나 지금까지 애용하는 심리훈련이라고 한다.

    -위파사나 명상은 얼마나 해야 그 효과가 크게 나타나는가.

    “모든 동양의 명상이 그러하듯이 꾸준히 오래 하면 할수록 그 효과는 크게 나타난다. 선수들의 경우 이 명상법을 6∼8개월간 지속적으로 해야 ‘최고수행’의 경지에서 경기에 임할 수 있다. 성적이 좋지 못했던 선수들이 훈련 전 10∼15분씩 위파사나를 하며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한 결과 중요한 경기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많이 보아왔다.”

    -이 명상법이 비단 선수들뿐만 아니라 생활체육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는가.

    “물론이다. 요즘 즐겨 하는 골프를 예로 들어보자. 골프연습장에서 연습할 때 자신의 약점 중 하루 한 가지만 완벽하게 고치고 넘어가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명상할 때도 바로 그 한 가지 약점을 완벽하게 고치는 장면을 집중적으로 해야 한다. 그와 반대로 어드레스 하다가 코킹도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것저것 하다 보면 우리 두뇌가 그것을 따라가지 못해 결국 아무것도 고치지 못한다. 그리고 실제 필드에 나가서는 절대로 자기 동작을 분석하지 말아야 한다. 필드에서 즐기는 마음으로 자기의 습관대로 골프를 치면 된다. 자기의 자세를 분석하는 것은 그야말로 ‘쥐약’이다(웃음). ‘최고수행’은 시합에 임해서는 아무런 분석이나 생각 없이 하는 것이 핵심이다.”

    김박사는 “올림픽이나 각종 국제대회에서 ‘심리훈련이 어느 정도 경지에 오르지 않은 금메달리스트는 없다’라는 말이 나돌 정도로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작용하는 심리적 요인은 대단히 크다”는 것을 강조했다. 즉 마음이 육체를 조절하는 주인이라는 뜻이다. 그는 조만간 자신이 펼쳐온 심리 명상법을 책자로도 엮어 발간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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