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8

2002.11.07

美 디트로이트“봄날이여 다시 한번”

자동차산업 다시 활기, 전성기 회복 부푼 꿈… 인종 갈등·범죄 급증 등 삶의 질은 낙후

  • 조형제/ 울산대 사회과학부 교수

    입력2002-10-30 15: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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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美 디트로이트“봄날이여 다시 한번”

    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모델 T카를 디트로이트의 자동차 공장에서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는 미국 경제의 번영을 이끈 도시가 됐다.

    새해 벽두 미국 디트로이트 시 중심가에 위치한 코보홀에서 열리는 디트로이트 모터쇼는 매년 미국의 3대 자동차업체를 포함한 세계 유수의 자동차업체들이 신제품을 출품, 서로의 최신 기술을 겨루는 자동차산업 경연장이다. 코보홀의 주요 전시장을 가득 메운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신제품을 보고 있노라면, 자동차 ‘제국’ 미국의 건재함을 확인하게 된다. 특히 올해에는 GM이 연료전지 자동차의 컨셉트 카인 오토노미를 출품하여 초미의 관심을 모았다. 지난 한 해 동안 미국에서 팔린 1712만대의 자동차 중에서 GM, 포드, 다임러크라이슬러 등 미국계 자동차업체들의 시장 점유율은 전체의 3분의 2 정도에 해당하는 64.5%를 차지하고 있다. 일본과 독일 자동차업체들이 미국 시장을 잠식하고 있는 게 사실이지만, 일본차는 미국 시장의 26.8%, 유럽차는 5.2%를 차지하고 있을 뿐이다.

    해마다 최초의 모터쇼는 왜 디트로이트에서 개최되는 것일까. 그것은 아마도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산업의 상징이기 때문일 것이다. 디트로이트는 ‘포디즘’이라고 불리는 현대 미국 경제의 번영을 이끈 원동력이 배태(胚胎)된 도시다. 20세기 초 헨리 포드가 모델 T카를 디트로이트의 자동차공장에서 대량생산하기 시작하면서, 디트로이트는 최첨단의 기술혁신과 진보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빅3 포함 자동차 연구소 총집결

    디트로이트는 미국 전역뿐 아니라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이민자들이 모여드는 꿈의 도시였다. 포드는 자동차 조립공장의 노동자들에게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5달러씩의 일당을 지급했고, 노동자들의 고임금은 자동차를 비롯한 내구소비재의 대량소비를 촉진했다. 이처럼 대량생산과 대량소비의 선순환구조로 이루어진 포디즘은 디트로이트를 넘어 미국 전역으로, 그리고 유럽으로 퍼져나갔다. 당시 디트로이트는 무한한 기술혁신과 부의 창출을 가능케 하는 고전적 ‘실리콘밸리’였던 셈이다.

    21세기를 맞이한 디트로이트의 현재 모습은 어떠한가. 세계화, 정보화의 소용돌이가 몰아치는 후기 산업사회에서도 디트로이트는 여전히 기술혁신과 진보의 상징으로 남아 있는가. 그 답은 절반의 부정과 절반의 긍정이다. 실리콘밸리처럼 첨단산업의 기술혁신을 주도하고 있지는 않지만, 자동차산업에 관한 한 여전히 디트로이트는 세계 자동차산업의 두뇌 기능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현 시점에서도 디트로이트는 여전히 자동차산업의 ‘모태’와도 같은 곳이다. 세계 경제 전체에서 지니는 선도적 의미는 약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동차산업은 엄청난 전후방 연관효과를 지닌 최대의 제조업으로서 미국 경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구체적으로 현 시점에서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산업에서 지닌 의미를 살펴보기로 하자. 미국 3대 자동차업체들은 모두 본사를 디트로이트 지역 내에 두고 있다. GM 본사는 디트로이트 도심에 있는 르네상스 센터에 위치해 있다.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인 GM 본사가 이곳에 있다는 것은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가 지닌 상징성을 잘 보여준다.

    포드 본사와 다임러크라이슬러 미국 본부도 각기 디트로이트 근교인 디어본과 어번힐에 위치해 있다. 디어본은 헨리 포드의 출생지로서 포드사 세계 경영의 총본산이다. 크라이슬러는 수년 전 다임러벤츠와 통합을 했지만, 미국 내의 경영은 어번힐에 있는 다임러크라이슬러 미국 본부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전과 큰 차이가 없다.

    3대 자동차업체들의 연구소도 디트로이트 근교에 밀집해 있다. 디트로이트 북부 매콤카운티에 있는 GM 기술연구소는 세계 최대 규모를 자랑한다. 미국 자동차업체들뿐 아니라 일본 자동차업체들의 연구소도 디트로이트 근교로 몰려들고 있다. 앤아버에 있는 도요타 기술연구소를 위시하여 닛산, 마즈다, 미쓰비시, 이스즈의 기술연구소들이 모두 디트로이트 근처에 밀집해 있다. 또한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각종 경영 관련 연구소 및 엔지니어링, 컨설팅업체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디트로이트 지역이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세계 최고 수준의 경영 및 기술 관련 정보와 인력의 집적지이기 때문인 듯하다. 이 지역에 다수의 관련업체들이 위치함으로써 집적효과를 누릴 수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기술연구소가 이곳에 위치해 있는 것도 이런 집적효과를 활용하기 위한 것으로 추측된다.

    “일본 자동차 게 섰거라”

    그러나 연구시설들이 집적하는 것과는 반대로 자동차 생산시설은 디트로이트 지역 외부로 계속 이전되고 있다. 웨인 주립대학 노동연구센터 뱁슨 소장은 앞으로 디트로이트 지역에는 자동차 생산시설로는 조립공장 외에는 엔진, 트랜스미션 등 동력계통 부품업체와 모듈 부품업체들만 남게 되고 대부분의 부품업체들은 타 지역으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한다. 디트로이트 지역의 고임금과 강력한 노동조합을 부담스럽게 여기는 경영자들이 모기업과 가까운 곳에 위치해야 하는 핵심 부품업체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부품 생산을 미국 내의 그린필드나 외국으로 이전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생산되는 자동차 대수는 이전에 비해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자동차산업과 관련된 이 지역의 피고용자 수는 1970년 28만7000명에서 2000년에 20만1000명으로 3분의 1 정도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2000년 한 해 동안 디트로이트 지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271만대로 이전과 비슷한 규모의 생산량을 유지하고 있다. 이는 자동화, 외주화 등으로 자동차업체가 필요로 하는 직접 생산자 규모가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생산성은 오히려 향상된 것을 보여준다.

    70년대의 오일 쇼크 이후 미국 자동차산업은 일본차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듯했다. 미국차는 미국 자동차업체들이 애국심을 자극하는 민족주의적 수사를 동원해 ‘국산차 보호’에 나설 것을 부추겼음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없는 듯 보였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반격 또한 만만치 않았다.

    현 시점에서 미국 자동차산업은 일본적 생산방식은 받아들이는 동시에 자동화·정보화와 모듈 생산의 적용을 통해 일본차를 다시 추월할 준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해부터 경기 불황과 엔화 하락이 계속되면서 미국 업체들이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장기적으로 미국 자동차업체들의 경쟁력이 회복될 것이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러한 반격의 지리적 거점이 디트로이트라는 것은 다시 강조할 필요가 없다. 탈산업화 추세 속에서도 디트로이트는 미국 경제가 보유한 제조업의 경쟁 우위를 지키는 마지막 보루로서 상징적 의미를 지니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경제적 효율성 관점이 아니라 주민 복지와 삶의 질이라는 관점에서 디트로이트를 평가하면 어떨까. 자동차산업의 경제적 효율성이 회복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디트로이트 주민의 삶의 질은 지속적으로 악화돼왔다. 디트로이트 시는 한때 인구 200만에 육박했으나 이후 인구 유출이 계속되면서 인구 100만명 미만의 도시로 규모가 줄었다. 뿐만 아니라 범죄와 사고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미국 언론들은 디트로이트 시를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로 평가했다. 지역 뉴스에는 길을 가던 자동차가 주유소를 들이받는다든가, 사람들이 누가 쏜지도 모르는 총격을 받고 사망하는 등 엽기적 사건들이 수시로 보도된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대낮에도 사람들이 도심을 걸어다니기를 꺼린다. 이처럼 주민의 삶의 질이 저하된 이유는 무엇일까.

    디트로이트 시 인구가 줄어들게 된 것은 50년대 이후 자동차 공장들이 새로운 입지를 찾아 교외로 떠나게 되고 백인 중산층이 교외로 거주지를 옮기게 된 데 기인한다. 이것은 도시가 성장하면서 일반적으로 겪는 교외화 현상으로 설명할 수도 있다. 그러나 디트로이트의 경우는 인종문제가 다른 도시에 비해 더 심각하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흑인 비율이 증가하면서 도심의 황폐화가 진행됐고 67년 흑인폭동이 일어난 후에는 백인뿐 아니라 흑인 중산층까지 디트로이트를 떠나고 말았다. 디트로이트 지역은 도시의 중심 부문이 동그랗게 비어 도너츠와 같은 모양이 된 도시 공동화 현상이 매우 심각하다.

    2000년 기준 디트로이트 시의 연간 개인 소득은 1만6000달러인 데 비해, 교외 지역은 2만5000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이는 디트로이트 교외 지역 주민의 소득이 중심 도시에 비해 50% 이상 높은 것이다. 평균 실업률이 15~20%에 달하는 디트로이트 시 주민들은 희망을 잃은 상태에서 범죄와 사고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돼 있다. 부와 인종이 공간적으로 격리돼 있는 상태에서 디트로이트는 불균등 발전을 계속하고 있다.

    더욱 절망적인 것은 이러한 불균형 상태를 개선할 수 있는 지역사회의 주체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자동차업체들은 거대한 다국적기업으로서 세계적 차원의 경쟁에만 몰두할 뿐 지역사회 문제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디트로이트 시정부나 교외의 지방정부들은 자기 관할지역 행정에만 몰두할 뿐 디트로이트 지역 전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협력하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나 노조 또한 자신들의 세부적 현안이 아닌 지역 전체의 문제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을 뿐 아니라 그 문제를 해결할 만큼의 능력도 갖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오늘날 자동차도시 디트로이트는 극단적인 두 얼굴을 가지고 있다. 코보홀에서는 모터쇼 등 화려한 전시행사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밖에서는 영화 터미네이터나 로보캅의 촬영현장으로 사용될 만큼 황량한 정경이 펼쳐지고 있는 것. 9·11 테러 이후 미국 사회 전체가 보수색을 강화하는 가운데, 디트로이트 지역의 사회적 통합을 이루기 위한 경제 주체들의 혁신적 노력을 기대하는 것은 헛된 희망에 불과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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