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6

2002.10.24

‘넘버2’ 초법적 힘 친인척 주의보!

권력 부나방들 표적 삐끗하면 국정 논단… 대권후보는 물론 가족도 ‘입조심 몸조심’

  • 김시관 기자 sk21@donga.com 허만섭 기자 mshue@donga.com

    입력2002-10-18 09:5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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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넘버2’ 초법적 힘 친인척 주의보!

    부패방지위원회 위원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와 무소속 정몽준 의원은 대통령이 되면 부패방지위원회에 친인척관리기구를 두겠다고 밝혔다.

    ”아무 때나 대통령을 만난다는 ‘아들’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필연적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나를 만나기를 원했고, 나에게 이야기하기를 원했다. 편지도 많이 받았다. 대부분 격려와 조언이었지만 개중에는 민원도 있었고 청탁도 있었다.”(김영삼 전 대통령 차남 현철씨의 자서전 ‘너무 늦지 않은 출발이기를’ 중에서)

    대통령의 아들, 친인척은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다. 물리적 근접성은 활용하기에 따라 ‘넘버 2’의 영역을 개척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대통령의 권력에 편승하고 싶어하는 부나방들이 친인척들의 이런 특수성을 놓칠 리 없다. 두 아들을 감옥에 보낸 김대중 대통령은 7월15일 “참으로 죄송하고, 그 슬픈 심경을 뭐라 말할 수 없다”고 국민 앞에 사죄했다. 넘버 2와 부나방들이 공생하는 이런 토양을 제거하지 못한 데서 출발한 불행이었다.

    정몽준 의원 친인척에 대해선 우려와 기대가 극단적으로 갈린다. ‘정몽준 대통령의 내각’은 대통령 친인척들 ‘뒤치다꺼리’하느라 몸살을 앓을 것이라는 게 그 한 가지. 반대로 정의원이 오히려 친인척들을 모범적으로 관리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친가와 처가 쪽으로 소위 ‘잘 나가는 사람’, 유력 대기업 오너가 워낙 많기 때문에 정의원은 친인척 문제에서 특히 주목 대상이다.

    鄭, 유력 오너 많아 특히 주목 대상

    ‘넘버2’ 초법적 힘 친인척 주의보!

    청운동 자택에서 열린 고 정주영 회장의 발인제에서 정몽구 회장(왼쪽에서 네번째) 등 유족들이 고인의 명복을 빌고 있다. 정 회장 왼쪽이 정몽준 의원.

    정의원측이 ‘주간동아’에 제공한 ‘가계도’에 따르면, 정의원 본인의 2촌(형제)~5촌과 그 배우자, 부인 김영명 여사의 형제들과 그 배우자 중 2002년 10월 현재 기업체의 현직 대표나 임원으로 재직중인 사람은 모두 44명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친인척 경영진 대부분은 해당 기업체를 실질적으로 소유하고 있는 가문 출신이다. 현대자동차, 현대아산 등 과거 현대그룹 계열사 오너뿐 아니라, 한라그룹, 성우그룹, KCC그룹 등 여러 계열사를 거느린 재벌그룹 사주들도 정의원의 친인척들이다. 업종 면에서도 자동차 기계 정유 등 제조업, 건설, 금융, 학원, 백화점, IT, 스키장, 외국계 기업 등 정의원 친인척 기업들은 거의 산업 전 부문에 포진하고 있다.



    이에 대해 한 정치권 인사는 “정몽준 대통령이나 그 측근이 친인척 기업 잘 봐주라고 각료들에게 지시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각 부처 장관들이 스스로 알아서 대통령 친인척 기업들의 이익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수립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의 친인척 기업은 표나지 않게 특혜를 입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프로축구 현대구단은 현대중공업이 운영하고 있다. 그런데 올해 초 현대팀은 ‘현대백화점’ 광고가 부착된 유니폼을 입고 몇 차례 축구 경기를 한 적이 있었다. 현대중공업 13기 노조는 노보를 통해 당장 이를 문제 삼았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정상적 광고 계약이어서 문제될 게 없다”고 말했다. 당시 노보 담당자는 “부당지원에 대한 물증을 갖고 쓴 글은 아니다”라고 했다. 현재 친인척과 일말의 관련성만 있어 보여도 정의원의 일거수일투족이 검증 대상이 되고 있는 형국이다.

    정의원은 최근 점증하는 친인척 문제 부담을 떨쳐내는 일에 적극적이다. 태도의 변화가 가시적으로 나타난다. 9월28일 대선후보 TV토론에서 정의원은 “현대아산이 북한에 못 갚고 있는 금강산관광 대금 5000억원 상당에 대해 북한은 한국 정부에게 대신 갚아달라고 하는데 이에 대한 견해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았다. 정의원은 “금강산관광 초기 육로관광이 성사됐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알 듯 모를 듯한 답변을 했다. 현대아산은 형 몽헌씨의 기업이다. 그러나 정의원은 며칠 뒤 같은 질문을 받자, “정부가 대신 갚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며 현대아산과 분명하게 선을 그었다.

    정의원은 한나라당, 민주당의 공격이 무리하다 싶을 때는 상대에게 역공을 펴는 모습을 보인다. 친인척 문제에서 이런 태도는 더욱 두드러진다. 민주당 노무현 후보는 최근 “대통령에게 기업가 친인척이 많으면 정부 정책의 신뢰성이 훼손된다”고 말한 바 있다. 10월12일 서울 평창동 자택에서 기자는 정의원에게 노후보의 말을 전했다. 그러자 정의원은 “대한민국은 유엔이 인정한 합법 정부다. 그런데 노무현 후보는 ‘분열주의자들이 대한민국을 건국했다’고 했다. 대한민국은 정통성이 없고 북측 정부가 정통성이 있다는 뜻인지 설명해야 한다”고 반격을 가했다.

    ‘넘버2’ 초법적 힘 친인척 주의보!

    충남 예산 선영을 참배중인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

    정의원 부인 김영명씨는 “집에 불이 나면 가족사진부터 들고 나가겠다”고 말했다. 남편과 자녀들이 가장 소중하다는 뜻이다. 그러나 형제들, 친인척과는 그리 왕래가 많은 편은 아니라고 한다. 지난 추석 때 현대그룹 일가는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산소에 성묘를 갔지만 다른 행사는 없이 헤어졌다. 정의원 주변인사의 말에 따르면 정 명예회장이 고인이 된 뒤 정 명예회장의 부인 변중석 여사가 서울아산병원 입원 차 서울 성북동 자택을 비워두고 있어 정씨 형제들을 모이게 할 구심력이 약화됐다고 한다. 정 명예회장의 기일, 명절 때나 돼야 형제들이 모인다는 것이다. 정의원 캠프 관계자는 “정의원은 공과 사의 구분이 철두철미한 성격이기 때문에 친인척을 모범적으로 관리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의 가계는 화려하다. 친가 처가 외가 등 3대가 소위 ‘명문’ 집안으로 손색이 없다. 이후보측은 가족 문제가 공론화되는 것을 꺼린다. 아들 정연씨의 병역비리 의혹, 동생 회성씨의 국세청 동원 대선자금 모금 의혹, 부인 한인옥씨의 호화빌라 파문 등을 거치면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기류다. 특히 가족을 설명할 때 귀족, 엘리트 등의 수사를 동원하면 매우 언짢아한다. 민주당은 이후보의 이런 가계 특성을 곧잘 네거티브 전략화해 공세를 편다.

    이후보의 아버지 홍규씨(97)는 검사를 지냈다. 검찰서기로 일하던 일제 때 활동을 놓고 친일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어머니 김사순씨는 경기여고를 나온 인텔리. 큰아버지 태규씨(작고)는 미국 유타대 교수를 지낸 화학자로 초대 서울대 문리대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외삼촌 삼형제도 모두 국회의원을 지낸 ‘파워 패밀리’다.

    이후보 처가 쪽의 면면도 화려하다. 부인 한인옥씨의 아버지 한성수씨(작고)는 대법관을 지냈다. 경성사범을 졸업한 어머니 김분남씨는 최근 ‘최규선 돈 20만 달러 수수설’ 등에 충격을 받고 쓰러졌다. ‘하늘이 두 쪽 나도 반드시 대선에서 이겨야’라는 한씨의 발언은 이런 내우에서 출발한 한(恨)의 표현이라는 평.

    이후보 대(代)에도 화려함은 이어진다. 이후보의 형 회정씨는 미국 브라운대 교수를 거쳐 현재 삼성의료원 병리과장으로 재직중이다. 정치 현장에서 이후보를 돕고 있는 유일한 형제이기도 한 동생 회성씨는 미국 뉴저지대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고 에너지경제연구원장을 지냈다. 97년 국세청 동원 불법 대선자금 모금혐의 때문에 현재 미국에 머물고 있다. 형제 중 막내인 회경씨는 미국 뉴욕주립대 출신으로 한국과학기술원 교수.

    부인 한씨의 형제인 대현(헌법재판소 재판관) 세현씨(서울대 치대 교수)도 사회적 기반이 탄탄하다.

    이후보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는 장남 정연씨는 현재 미국 하와이대 동서문화센터 연구원으로 있다. 병역비리 이후 원정출산, 최규선씨와의 전자우편 교환, 주가조작 가담설 등을 달고 다니며 이후보의 대권가도를 위협한다. 그런 그를 정치권에서는 유력한 ‘넘버 2’ 후보로 본다. 검사직을 버리고 이후보를 돕고 있는 사위 최명석씨도 유력한 넘버 2 그룹 후보. 특히 장모인 한씨의 전폭적인 신뢰를 파악한 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그의 주변으로 몰려들고 있다.

    이후보에 비하면 민주당 노무현 후보의 가계는 초라할 정도. 평범한 직장인, 농업, 자영업 등 그야말로 ‘서민군단’이다. 관직이라야 노건평 등 2명의 친형이 하위직 공무원 생활을 한 것이 전부일 정도. 그나마 지금은 그만둔 상태이다. 노후보의 아버지 노판석씨는 고향 경남 김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다 1976년 작고했다. 98년 작고한 어머니 이순례씨의 삶의 궤적도 선친과 크게 다르지 않다.

    ‘넘버2’ 초법적 힘 친인척 주의보!

    민주당 노무현 후보와 부인 권양숙 여사(맨 오른쪽).

    노후보의 형제는 3남2녀. 그 가운데 노후보는 막내다. 5남매 가운데 유일하게 대학(부산대 법대) 교육을 받은 사람이 큰형 영현씨. 공무원 생활을 하다 73년 교통사고로 숨졌다. 둘째형 건평씨는 세무공무원 출신으로 지금은 고향에서 농사(과수원)를 짓고 있다. 건평씨는 4월 경선 당시 “노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돼도 농사만 짓고 살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곧바로 부동산 투기 의혹이 제기됐고 최근에는 노후보와 함께 생수회사 문제와 관련된 잡음에 휘말렸다. 2명의 누나(명자, 영옥)는 모두 남편과 사별, 부산에서 살고 있다. 노후보의 부인 권양숙씨는 ‘탈정치형’ 내조를 한다. 비사교적이라 남 앞에 나서기를 꺼린다는 지적을 받는다. 한때 노후보에게 “정치를 그만두라”고 요구했을 정도. 요즘은 기자들을 자택으로 초대하는 등 적극적인 내조로 돌아섰지만 노후보측은 “아직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놓고 있다. 노후보의 처가 쪽은 권씨와 분위기가 비슷하다. 언론을 피하는 등 소극적인 입장이다. 노후보에게 사상 굴레를 씌운 장인 권오석씨는 한국전쟁 당시 좌익활동을 했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이 때문에 장기간 옥살이를 했고 71년 옥사했다. 경선 당시 색깔논쟁이 벌어지자 노후보는 “그렇다면 (장인의 전력 때문에) 사랑하는 부인을 버리란 말이냐”며 정면돌파를 시도했지만 장인의 전력은 지금도 노후보의 ‘짐’이다. 장모 박덕남씨는 남편과 사별한 맏딸 창좌씨와 부산에 살고 있다. 막내 처남 기문씨(48)는 부산에서 금융기관 지점장을 하고 있다. 경선 직후 노후보측 한 관계자는 “처남들이 있지만 행사장에 나타난 적이 없어 몇 명인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로 처가쪽 사람들은 노후보와 선을 긋고 있다고 설명했다.

    노후보는 1남1녀를 두었다. 노후보의 외아들 건호씨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경선 때 노후보 캠프에서 국민선거인단 데이터베이스 작업을 도왔다. 딸 정연씨는 홍익대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주한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하고 있다.

    노후보측은 이 같은 가계의 특성 때문에 국정을 농단하는 넘버 2 그룹이 형성될 여지가 없다고 주장한다. 특히 노후보의 깐깐한 스타일이 가족 또는 친인척의 발호를 보고 있지 않을 것이란 평가도 내놓는다.

    각 후보 진영은 대선 이슈로 등장하고 있는 친인척 문제에 대해 나름대로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정의원은 “내가 대통령 되면 처남인 김민영 교수(정의원 대선캠프의 핵심 브레인)는 외국으로 갈 것”이라고 말해왔다. 이후보도 “해외로 내보내는 것도 한 방법”(2002년 3월19일)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인척 기업체들까지 모두 해외로 이전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노후보는 후보 확정 후의 기자회견에서 “가족과 친인척을 제도적으로 감시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대통령의 아들과 처조카 게이트가 들끓던 지난해 청와대에도 비슷한 기구가 있었다.

    정치 현실상 대통령 친인척이란 이 모든 것을 뛰어넘을 수 있는 ‘초법적 파워’를 가지고 있다. 친인척 비리의 근절은 수십 가지 제도적 장치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함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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