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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워크아웃제 ‘그림의 떡’

자격요건 까다로워 신용불량자 구제 기회 봉쇄 … 금융기관도 준비 부실 ‘출발부터 삐걱’

  •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개인워크아웃제 ‘그림의 떡’

개인워크아웃제 ‘그림의 떡’

전화 및 인터넷 상담을 진행 중인 서울 명동의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사무국

중·고등학생들이 등하굣길에 이용하는 승합차를 운전하는 A씨(39)는 차량 유지비를 제외하고 월 평균 16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린다. 그런 그가 현재 짊어지고 있는 빚은 자그마치 9000만원. 무분별한 카드 사용이 원인이었다. 연체된 카드대금을 8개의 카드를 돌려가며 막기 시작한 게 빚을 1억원 가까이로 불려놓고 말았다. 네 식구를 책임져야 할 가장인 A씨는 최저생계비 100여만원을 제외하고, 매달 부인이 벌어오는 60만원까지 모조리 털어넣어도 9000만원을 갚을 일이 까마득하기만 하다. A씨는 결국 10월1일 문을 연 서울 명동 신용회복지원(개인워크아웃)위원회(www.pcrs.or.kr)를 찾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은 그를 낙담시켰다.

“사정은 딱하지만 지금으로서는 도와드릴 방법이 없습니다.”

A씨가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것은 우선적으로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1단계 자격 요건을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 전국은행연합회가 정한 요건은 △최저생계비 이상의 수입 △5개 이상의 금융기관 총 부채가 2000만원 이하 △신용불량 등록 후 1년 이상 경과 △1개 금융기관 채무액이 총 채무액의 70% 미만 △사채업자를 포함한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채권자에 대한 채무액이 총 채무액의 20% 미만 △개인사업자의 경우 사업상 채무액이 총 채무액의 30% 미만 △각종 미납 세금이 총 채무액의 30% 미만 등이며 이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중 어느 하나라도 해당되지 않으면 신청 대상에서 후순위로 밀려난다.

상담자 5% 정도만 신청대상

개인워크아웃제도란 신용불량자 수가 급격히 늘어나고 가계대출 증대로 여기저기서 ‘가계발(發) 금융대란’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일자 정부가 신용불량자를 지원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 위원회 심의를 거쳐 신용회복지원이 확정되면 신용불량 정보는 해제되고, 상환기간 연장이나 분할상환, 이자율 조정, 변제기간 유예, 채무감면 등의 방법으로 신용회복 기회를 갖게 된다. 위원회측은 한해 10만명 정도가 혜택을 받을 것이라고 추산한다.



그러나 개인워크아웃제가 10월부터 시행에 들어갔지만 신용불량자들에게는 실질적인 도움이 안 된다는 지적이 벌써부터 일고 있다. 실제 신용회복지원위원회의 하루 평균 상담 건수는 500여건(이중 50~100여건은 인터넷 상담)이지만 이 가운데 실제로 신용회복지원을 신청할 수 있는 대상자는 5% 정도에 불과하다.

개인워크아웃제 ‘그림의 떡’

과거 IMF여파로 신용불량자나 개인 파산자가 발생했던 것과 달리 최근엔 신용카드 빚이 사람들을 거리로 내몰고 있다.

그나마 금융기관의 준비가 미흡해 현재는 상담만 진행되고 있는 상황. 본격적인 신용회복지원 접수는 11월부터나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일부 금융기관의 경우 자율협약에 의해 운영되는 이 제도에 가입해야 하는지 여부를 아직 결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협약에 가입하기로 한 뒤에도 업무처리 기준 마련 등 할 일이 쌓여 있다.

10월9일 현재 207개 금융기관 가운데 정식으로 공동협약에 가입한 기관은 절반 정도. 나머지는 아직 가입 여부를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은 정식으로 거부 의사를 밝혔다. 위원회 관계자는 “저축은행, 일부 카드사 등이 협약에 가입할지도 아직 미지수”라고 말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건물 두 개 층에 마련된 상담소는 각 금융기관에서 파견된 인력이 상담을 맡도록 돼 있으나 아직까지는 빈 책상이 남아돌고, 위원회 직원을 포함한 20여명의 상담원이 하루 종일 전화기를 붙들고 있는 형편이다.

한 금융기관 관계자는 “협약이 강제성을 띠지 않는다 해도 이 제도에 대한 국민적 기대감이 큰 만큼 시행을 거부할 수는 없겠지만 금융기관 입장에서는 흡족하지 않은 부분이 많다”고 털어놨다. 시중 은행 대부분이 이미 자체적으로 채무자와의 상담을 통해 이자를 탕감해주거나 상환을 연기하는 등 신용회복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 상황이라 정부 주도의 개인워크아웃제도 실시가 얼마나 획기적인 결과를 가져올지 의문이라는 것. 뿐만 아니라 “채권회수율을 높인다지만 신용회복지원위원회 유지를 위해 부담해야 하는 분담금과 인력 배치 및 전산장비 마련 등에 소요되는 비용을 고려해 이해득실을 따진다면 금융기관들이 시큰둥한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3억원 이하의 신용불량자 수와 총 채무액에 따라 금융기관별로 적게는 100만원에서 많게는 10억원의 분담금을 부담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 금융기관이 협약에 가입한다 하더라도 사채업자를 비롯한 소규모 금융기관들이 협약 가입 대상에서 제외돼 있어 워크아웃제도가 근본적인 한계를 갖고 있다는 점. 협약안에 따르면 연체대금을 상환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선의의 채무자에게 신용회복지원 결정이 나면 채무자에 대한 모든 채권 행사나 담보권 행사가 중지된다.

그러나 이는 협약에 가입한 금융기관에만 해당될 뿐 사채권자나 단위 농·수협, 새마을금고 등 협약 가입 대상에서 제외된 금융기관은 이와 무관하다. 결국 이들 금융기관이 가압류 등 채권 행사를 할 경우 부득이하게 다른 금융기관들도 협약을 깨고 채권 회수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결국 신용회복지원 결정은 효력을 잃게 되는 것.

위원회 관계자는 “전체 채무 중 협약에 가입하지 않은 채권자에 대한 채무액의 한도(20% 미만)를 두고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말하면서도 “현재로서는 이러한 경우 지원 협약이 깨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고 말했다. 개인워크아웃제도의 한계를 인정한 셈이다. 그는 “사채업자 등록제가 실시되고 있는 만큼 추후에 이들도 자율협약 기관에 포함시킬 예정이다”고 밝혔다.

개인워크아웃제 ‘그림의 떡’

서울지방법원 파산과. 감당하기 힘든 빚을 진 사람들은 최후의 수단으로 파산을 신청한다.

한편 참여연대 시민권리국 박원석 국장은 신용회복지원위원회가 강제성을 띠지 않는 채권자 단체(은행연합회)의 산하기구라는 점에서 태생적 한계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이 때문에 채무조정 협상에서 채무자가 불리한 입장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것. “채무조정제도가 이미 자리잡은 미국이나 일본의 경우 대개 시민단체를 비롯한 비영리기구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채무조정을 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는 또한 채무조정 대상자 범위가 극히 제한적이라는 점에서 그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신용불량자 갱생(更生) 제도가 적극적일 경우 성실한 채무자의 빚을 갚을 의욕을 떨어뜨리고,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것이라는 우려에 대해 그는 “개인 한 사람 한 사람으로 보면 도덕적인 문제가 제기되겠지만 신용불량자가 수백만명에 이르는 지금의 상황에서는 구조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이 기업의 과도한 채무에 대해서는 일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개인에 대해서는 극히 책임지려 하지 않는 이중적 잣대를 고수해왔다”고 꼬집었다. 금융기관 역시 개인의 신용정보를 철저히 조사 하지 않은 상황에서 무분별하게 카드를 발급하고, 이후의 관리도 소홀한 데 대한 책임을 져야 마땅하다는 것. 이러한 이유에서 그는 개인워크아웃제도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개인워크아웃제도로 신용회복의 기회를 갖지 못한 사람들이 도저히 빚을 감당할 수 없다고 판단하면 최후의 수단으로 ‘개인파산신청’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 파산신청 건수는 매년 늘어나고 있지만 아직까지 신용불량자 수와 비교할 때 극히 적은 숫자(지난해 672건)다. 서울지방법원 파산부 오영준 판사는 “파산제도가 아직까지는 걸음마 단계에 있으나 이에 대한 인식이 확산되어 ‘성실하나 불운한’ 채무자들이 이를 적극 활용하게 되면 이에 따른 금융권의 손실도 막대할 것”으로 내다봤다. 개인에 대한 각 금융기관의 엄격한 심사와 관리가 강조되는 대목이다.

개인 신용불량 사태가 개인 문제 차원을 넘어선 이상 개인워크아웃제도의 법제화로 신용불량자를 회생시키는 기회뿐만 아니라 금융기관의 엄격한 고객관리를 유도하는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주간동아 356호 (p50~51)

구미화 기자 mhk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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