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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리벡 횡포, 앉아서 죽을 수 없다”

시민단체 값싼 인도 ‘카피약’ 수입 선전포고… 다국적 제약사 잔뜩 긴장 정부도 ‘촉각’

  •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글리벡 횡포, 앉아서 죽을 수 없다”

“글리벡 횡포, 앉아서 죽을 수 없다”

백혈병 환자들의 글리벡 가격인하 요구는 일종의 생존권 확보를 위한 투쟁이다.

한알에 2만5000원 하는 약을 매일 6알씩 먹지 않으면 죽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살릴 수 있는 것은 오직 그 약뿐. 하지만 생명 유지를 위해 매달 수백만원씩의 약값을 부담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약값을 내려달라며, 보험 적용의 폭을 늘여달라며 눈물로 호소한 지 1년. 이에 돌아온 대답은 “약값을 내리느니 차라리 약 공급을 중단하겠다”는 제약사의 ‘으름장’뿐이다.

이러한 특허권을 앞세운 다국적 제약사의 가격 ‘횡포’에 시민단체들이 드디어 칼을 뽑고 나섰다. 첫번째 상대는 만성골수성백혈병 치료제 ‘글리벡’의 독점 제조, 판매사인 노바티스사. 시민단체들은 지난해 6월 국내 시판 이후 보험약가 산정을 둘러싼 정부와 제약사 간 분쟁이 1년 이상 지속되자, 글리벡에 대한 노바티스사의 국내 특허권과 관계없이 이 약의 카피약을 인도의 한 제약사로부터 전격 수입키로 했다. 카피약이란 약효 동등성시험을 통해 새롭게 개발된 신약(오리지널약)과 성분 및 약효가 동일하다고 인정된 복제약품. 투자비가 적게 들어 오리지널약에 비해 매우 싼 것이 특징이다. 이번에 시민단체들이 수입하는 글리벡 카피약의 가격은 노바티스사가 국내에 공급하는 가격(2만5002원)의 5% 수준에도 못 미치는 1달러 미만에 불과하다.

‘1달러 미만’… 편법이라도 판매

건강 관련 시민단체들의 연합체인 ‘글리벡 문제 해결을 위한 사회단체 공동대책위’(이하 공대위)는 8월 인도의 3개 제약사를 방문해, 글리벡과 약효가 동등한(인도 정부 인정) 카피약품 개발이 이미 완료된 것을 확인하고, 이를 캡슐당 1달러 미만에 공급받기로 현지 제약사와 합의했다. 공대위 관계자는 “인도는 물질(의약품, 식품 등) 자체에 대한 특허권을 인정하지 않는 나라로, 오리지널 약품과 다른 제조공정으로 만들어진 약이라면 그 어떤 종류의 카피약품도 생산, 판매가 가능하다”며 “정부가 이의 정식 수입을 반대한다면 편법을 이용해서라도 이 약을 내년 3월과 4월 사이 수입해 환자들이 싼 가격에 사 복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국내 의약품 유통과 가격 구조, 특허체계를 근본부터 뒤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발표에 이해당사자인 다국적 제약사는 물론 정부까지 긴장한 표정이 역력하다.

지난해 5월 국내에 들어온 글리벡은 죽음을 앞둔 백혈병 환자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임상실험에서 이 약을 먹은 후 바로 걸어서 퇴원하는 모습이 확인된 후 ‘기적의 항암제’로 알려진 약품. 그러나 보험약가 산정을 두고 정부와 시민단체 등이 이견을 보인 가운데 지난해 10월 보건복지부가 보험약가 상한액을 캡슐당 1만7862원으로 고시하자, 노바티스사는 “애초의 요구안(캡슐당 2만5002원)에서 한발짝도 물러서지 않을 것이며, 만약 이 안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면 약품 공급을 중단하겠다”며 맞섰다.



이후 글리벡 공급에 차질이 빚어지자 노바티스사는 백혈병 환자 중 만성기(초기) 환자를 제외한 가속기(중기), 급성기(말기) 환자에 대해서만 약품의 무상공급에 나섰다. 문제는 대상에서 제외된 환자들. 정확한 통계는 나와 있지 않지만 국내에서 글리벡을 반드시 복용해야 하는 환자는 700여명 수준(한국백혈병환우회 추산). 하지만 노바티스사의 무상혜택을 받은 환자는 이중 중기와 말기 환자 150명에 불과했다. 무상혜택에서 제외된 환자들은 시중 약국에서 한 달에 수백만원씩을 주고 글리벡을 구입해 복용하다 더 이상 약값을 마련하지 못하면 하나 둘씩 죽어갔다.

이런 상황은 1년이 지난 현재까지 조금도 개선되지 않았다. 시민단체들은 “정부의 고시가도 실질적으로 환자들이 감당할 수 없는 액수”라며 1만원 이하의 보험가격을 줄곧 요구했고, 정부와 노바티스사는 종래의 입장을 굽히지 않은 채 팽팽히 맞서고 있는 상태.

게다가 복지부는 글리벡 가격의 30%(소아 20%)만을 보험 대상으로 적용하겠다고 발표, 환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다. 이 경우 나머지 70%(소아는 80%)는 환자 본인이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만약 노바티스사의 가격안이 그대로 받아들여진다면 환자에 따라 한 달에 약값만 90만원에서 180만원을 지불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노바티스사는 8월 한 외신과의 인터뷰를 통해 “우리의 요구안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글리벡 공급을 예정대로 중단한다”며 “이는 한국 정부가 약가 인하 정책을 강행한 데서 생긴 문제”라고 책임을 한국 정부에 떠넘겼다.

보험가격 협상이 전혀 진전을 보이지 않자, 시민단체들은 1월 특허청에 노바티스사의 글리벡 특허에 대한 ‘강제실시권’을 요구했다. 강제실시권은 공익상 필요한 경우 정당한 대가를 전제로 특허권자의 의사에 상관없이 다른 사람이 특허 발명을 실시할 수 있는 권리. 특허법 제107조에 규정돼 있으나 청구 사례는 처음이었다. 당시 시민단체들은 “헌법상 국민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국가의 의무와 국민의 기본권 측면에서 특허권보다 환자의 생명이 우선이므로 글리벡의 국내 카피약 생산을 허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노바티스사측은 “세계무역기구(WTO)는 국가 재난 상황이나 비상업적인 사용을 위한 강제실시권만을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공대위의 주장은 적용되지 않는다”고 반박했다. 특허청은 현재까지도 명확한 입장을 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

사실 의약품의 특허권을 특허등록일로부터 무려 20년간으로 규정하고, 의약품의 물질특허를 인정한 국가에서는 특허기간 안에 같은 성분의 카피약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한 규정도 알고 보면 WTO(1995년 무역관련 지적재산권 협정)의 작품이었다. 약품의 연구 개발에 수조원이 들어갔으니, 그 수십배의 이익이 날 때까지 제약사의 배타적 권리를 인정해야 한다는 자본의 논리가 그대로 녹아든 내용. 열악한 자본구조로 인해 신약 개발 실적이 저조한 국내 상황에서 다국적 제약사들이 수십년 동안 고가의 수익을 챙길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이는 건강보험재정 파탄의 한 원인이기도 하다.

“글리벡 횡포, 앉아서 죽을 수 없다”

인도에서 생산되는 카피 약들은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이 때문에 인도는 다국적 제약사들의 가격 횡포가 미치지 않는 지구상의 몇 안 되는 나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강제 실시조차 여의치 않자 시민단체의 시선은 WTO협정 대상에서 빠져 있으면서도 약품 생산기술이 앞서 있는 인도로 향했다. 인도는 미국에까지 약품을 수출하고 있는 의약품 생산 강국으로 물질특허를 인정하지 않는 특허법 때문에 카피약 천국이다. 시민단체들이 인도에 갔을 때 마침 인도의 제약사들은 글리벡의 카피약 개발을 마치고 출시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문제는 현행 특허법상으로는 글리벡의 카피약을 정식으로 수입해 오는 것은 불법이라는 사실. 공대위는 할 수 없이 ‘자가치료 목적으로 미화 2000달러 이하는 각 개인이 수입해서 사먹을 수 있다’는 특허법상의 규정을 이용키로 했다. 공대위 소속으로 인도 방문에 참가한 남희석 변리사(법무법인 지평)는 “의사 진단서와 광역단체장 추천장만 있으면 개인 수입이 가능하다. 상업적으로 팔지만 않는다면 식품의약품안전청의 확인 절차도 필요 없다”고 밝혔다. 남변리사는 “인도에서 생산된 카피약은 인도 자체에서 독성검사와 부작용 검사를 마쳤고, 약효 동등성시험까지 마쳤지만 국내에 들어오면 시민단체에서 한 번 더 검사를 할 예정이다. 11월과 12월 중에 인도에서 시판되면 그 효능을 확실하게 검증할 수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특히 공대위와 수입 가격 흥정을 마친 인도 제약사 씨플란사는 지난해 4월 ‘국경 없는 의사회(MSF) 주도로 벌어진 남아프리카공화국 에이즈 치료제 가격인하 투쟁 당시 에이즈 카피약을 헐값에 공급해 다국적 제약사에 압력을 넣었던 회사. ‘카피약품의 남아프리카공화국 반입이 특허법 위반’이라는 다국적 제약사와의 소송에서 환자들과 국제 시민단체들은 끝내 승리를 쟁취했다.

시민단체 관계자는 “앞으로 글리벡처럼 비록 특허기간 내에 있다 하더라도 환자의 생명과 직결된 고가의 오리지널 약품은 해당 카피약 수입을 검토하고 있다. 벌써 10여개 약품에 대해서 검토에 들어갔다”고 말해 다국적 제약사와의 싸움을 계속 확대해나갈 것임을 밝혔다.

앞으로 벌어질 ‘대혼란’을 의식한 탓일까. 특허청과 복지부는 “조용히 해결될 것이다”, “확인되지 않은 이야기다”라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주간동아 356호 (p54~55)

최영철 기자 ft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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