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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은 말한다 ‘단군의 자손’

‘남북한 단군 학술대회’ 고대사 연구 교류 물꼬… 고조선 역사 복원 등 ‘공동보도문’ 작성

  •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남북은 말한다 ‘단군의 자손’

남북은 말한다 ‘단군의 자손’

단군 및 고조선을 연구하는 학자들을 인솔해 평양을 다녀온 윤내현 단군학회 회장(단국대 대학원장)

단기 4335년인 올해 개천절(10월3일)은 남과 북 모두에게 의미 깊은 날이었다. 남과 북에서 각기 ‘단군의 자손’이라는 이름으로 대규모 경축식을 진행하는 한편으로, 남쪽에서는 남북 선수들이 부산아시아경기대회에서 사이좋게 금메달 승전보를 울렸고, 북쪽에서는 남북 역사학자들이 함께 모여 ‘단군 및 고조선에 관한 공동 학술토론회’를 벌였던 것.

특히 남측의 단군학회(회장 윤내현) 학자들과 북측 사회과학원 조선력사학회(회장 허동호) 학자들이 제3국이 아닌, 한반도에서 처음으로 가진 학술행사는 안팎의 눈길을 끌었다.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이 학술토론회는 단군과 고조선의 실체를 남북이 학문적으로 수용, 함께 체계적인 연구의 초석을 놓자는 취지에서 마련된 자리였다.

우리측에서는 윤내현(단국대 대학원장) 최광식(고려대) 이형구(선문대) 정영훈(정신문화연구원) 김상일(한신대) 신용하(서울대) 박선희(상명대) 교수 등 9명이 참석했고, 북측에서는 손영종·서국태(사회과학원) 남일룡·김유철(김일성종합대학) 한선홍(김형직사범대) 교수 등 11명이 토론회에 나섰다. 남북한 학계에서 모두 단군 및 고조선 연구 전문가로 익히 알려진 면면들이었다.

이 학술행사에서는 남북 학자들이 난상토론 끝에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동보도문’까지 작성해내는 성과도 거두었다. ‘주간동아’가 단독 입수한 공동보도문에는 단군과 고조선에 대한 남북 학자들의 공통된 시각이 명기돼 있고, 남북한 공동으로 연구 및 학술교류를 갖기로 공식 합의했다는 점에서 역사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 것으로 예상된다.

사상·이념 떠나 민족 정체성 확인



공동보도문에는 구체적으로 다섯 가지 사항이 명기돼 있다.

‘첫째, 단군은 실재한 역사적 인물이며 우리 민족의 첫 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운 건국시조다. 둘째, 우리 민족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단군민족이며 우리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여러 사서들에 고조선의 중심지가 평양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것을 중시한다. 셋째, 고조선은 오늘의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넓은 지역을 기본영역으로 한 강대국이었다. 넷째,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은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빛내고 우수한 민족성을 고수하기 위한 학술적 유대를 강화하고 협조를 공동으로 활발히 벌인다. 다섯째, 남과 북의 역사학자들은 민족 앞에 지닌 사명감을 깊이 간직하고 남북 역사학자들의 연대를 강화하며 애국애족의 입장에서 민족사 연구를 심화시켜 나감으로써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조국을 통일하는 위업에 적극 이바지해 나갈 것이다.’

단군학회 회장으로 남쪽 학자들을 인솔해 다녀온 윤내현(63) 단국대 대학원장은 “일제에 의해 망실돼온 단군 및 고조선의 실체에 대해 남북 학자들이 공동보도문을 통해 그 역사를 복원키로 합의했다는 점에서 무척 고무적인 행사였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윤교수를 만나 북한 쪽의 단군 및 고조선 연구 현황 등에 대한 얘기를 들어보았다.

남북은 말한다 ‘단군의 자손’

남측의 윤내현 단군학회 회장(오른쪽)과 북측의 허동호 조선력사학회 회장이 분단 이후 처음으로 ‘공동보도문’에 합의, 서명했다.

-남북 역사학자들이 모인 것이 처음은 아닌데, 이번 평양 학술토론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면?

“중국 등 제3국에서 남북 역사학자들이 만난 적이 있어 개인적으로는 아는 북한 학자들과 재회해 각별한 정을 나누기도 했다. 그러나 이번 행사는 3년간의 준비 끝에 우리 땅에서 열렸다는 점과 남북 학자들간 토론행사에서 최초로 공식 합의된 문서를 내놓았다는 점에서 의의가 깊다고 생각한다. 고대사 연구는 사상과 이념과 정치를 떠나 우리 민족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주제이기 때문에 비록 공동보도문 형식이기는 하나 남북간 합의문을 이끌어낼 수 있었지 않았나 생각한다. 앞으로 이 합의문은 남북의 고대사 연구에 있어 하나의 주춧돌 역할을 할 것이다.”

-공동보도문에 ‘단군민족’이라는 용어가 등장하는데.

“우리 민족을 얘기할 때 남측은 흔히 ‘한민족’이라는 말을 사용하고 북측은 ‘조선민족’이라는 말을 즐겨 쓴다. 그래서 남과 북이 정서적으로 무리 없이 받아들일 만한 용어로 ‘단군민족’이라는 용어를 쓴 것이다. 이것은 이번에 만들어낸 조어(造語)가 아니다. 북한에서는 단군이 세운 조선을 ‘단군조선’이라는 명칭으로 통일시켜 놓았다. 우리 역시 고조선이라는 이름 대신 단군조선이라는 이름을 쓰는 것이 학문적 차원에서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는 단군을 신화 속의 인물로 보고 종교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이들도 없지 않다. 북한의 단군 인식은 어떠한가.

“과거 북한 학자들은 단군보다 고조선 연구에 더 집착했고, 유적과 유물 등의 발굴로 상당한 학문적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다 1993년 평양시 강동군 대박산에서 단군릉을 발굴한 이후 단군을 역사적 실체로 인정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그 이전까지 북한 사람들도 단군을 신화적 인물 정도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게다가 주체사상이나 사회주의적 역사관에서 볼 때 단군 같은 우상을 인정한다는 것이 어렵지 않았겠나. 마치 남한 사람들 중 일부가 종교적 신념에서 단군을 우상으로 매도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금 북한 사람들은 공동보도문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단군을 ‘실재한 역사적 인물이며, 우리 민족의 첫 국가인 단군조선을 세운 건국시조’로 명확히 알고 있다. 거기에는 어떠한 종교적 색채나 정치적 이데올로기가 개입돼 있지 않다.”

-남한 학자들 중에는 북한의 단군릉에 대해서 회의적 시각을 갖고 있는 이도 있는데.

“흔히 북한측의 발굴 기술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학자들도 있지만, 오히려 고대 유물 발굴분야에서 북한의 고고학자들이 경험이 많다는 사실을 존중해야 한다. 단군릉에서 출토된 인골의 경우 두 곳의 평가기관에 의뢰해 무려 58차례에 걸쳐 연대측정을 한 결과 지금으로부터 5020년 전의 것임을 확인했다. 이것이 옳다면 고조선의 역사를 지금보다 훨씬 앞당겨야 할 것이다. 사실 대박산 단군릉은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할 정도로 역사가 깊은 곳이다.”

윤교수는 학술토론회 기간중 구월산에 있는 삼성전에 가봤다고 했다. 거기에는 단군왕검뿐 아니라 환인, 환웅의 초상화까지 모셔져 있었다고 한다. ‘삼국유사’에서는 환인의 아들 환웅이 지상에 내려와 웅녀와 혼인해 아들 단군을 낳았다고 하는데, 북한에서는 이를 역사적 근거가 있는 신화로 해석한다는 게 윤교수의 말.

“북한 학자들은 하느님(환인)을 신앙하는 천신족(天神族)의 우두머리인 환웅이 곰 토템 부족(熊族)의 여인과 혼인해 단군왕검이 탄생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동물을 부족 내지 부족장의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역사기록에서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서경’에서 순임금의 신하들로 호랑이, 곰, 주작 등의 명칭이 사용되는 것도 그런 예다.”

윤교수는 끝으로 단군조선의 시대 구분이나 도읍지 등 세밀한 부분에 대해서는 남북 학자들간에 이견이 있었지만, 학문 교류를 계속하면서 극복해나갈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남북 학술토론회에서 발표된 논문들은 조만간 책자로 펴낼 예정이라고 한다.





주간동아 356호 (p74~75)

안영배 기자 oj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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