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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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어가는 가을 밤에 “쉘 위 탱고”

20~30대 중심으로 탱고 춤 배우기 확산 … 연주회·뮤지컬 쇼 등 공연도 봇물

  • 전원경 기자 winnie@donga.com

    입력2002-10-17 14: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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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깊어가는 가을 밤에 “쉘 위 탱고”

    \'패시네이팅 탱고\'에 출연한 안드레아와 디에고 커플. 관능미가 물씬 풍기는 탱고 동작은 관객들의 열렬한 호응을 이끌어냈다.

    ”탱고는 계속 움직이는 춤이 아니에요. 힘들면 잠깐 정지해서 음악을 듣다가, 다시 음악의 흐름을 타는 거죠.”

    10월10일 저녁 8시, 홍익대 근처의 ‘라틴 속으로’ 연습실. 40여명의 남녀가 연습실 중앙에 선 강사 모현철씨(26)의 말과 동작에 시선을 맞추고 있다. 모씨가 ‘다같이 한번 해보자’고 하자 이들은 각기 파트너의 손을 잡고 탱고 음악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한다. 인터넷 댄스 동호회 ‘라틴 속으로’의 탱고 레슨 광경이다. 남성이 예상외로 많은 것이 이채롭다.

    레슨에 참가한 강창엽씨(31·번역가)는 탱고를 배운 지 이제 한 달 된 신참. “한 가지라도 제대로 된 춤을 추고 싶었고, 가장 춤다운 춤이 탱고라고 생각했다”고 말하는 그는 강사의 춤 솜씨가 놀라운 듯, 강사의 몸동작 하나하나에서 좀처럼 시선을 떼지 못했다.

    올 가을 ‘탱고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10월 한 달 동안 듀오 오리엔탱고 연주회, 뮤지컬 쇼 ‘패시네이팅 탱고’, 피아졸라 10주기 추모공연인 ‘춤추는 반도네온’ 등 세 가지의 탱고 공연이 무대에 오른다. 지난해에는 조선족 트랜스젠더 무용가인 진싱이 ‘상하이 탱고’를 공연했고, 올 5월엔 콜럼비아 렉스플로제 무용단도 ‘여인의 유혹’이라는 탱고극을 선보였다.

    아르헨티나의 항구도시 부에노스 아이레스에서 태어난 탱고는 유럽에서 남미로 간 이민자들의 정서와 희로애락이 담긴 춤과 음악이다. 단순히 먼 나라의 춤과 음악이던 탱고가 우리 곁에 다가선 것은 현대 탱고의 아버지인 피아졸라의 음악이 소개되면서부터. 1990년대 초반 클래식 음악가들 사이에서 탱고 열풍이 불면서 기돈 크레머, 다니엘 바렌보임, 요요마 등 쟁쟁한 연주자들이 연이어 탱고 음반을 냈다. 일부는 내한연주회를 열기도 했다.



    홍대 앞에 탱고 추는 공간 생겨

    깊어가는 가을 밤에 “쉘 위 탱고”

    ‘라틴 속으로’의 탱고 레슨 광경. 강사 모현철씨의 춤을 지켜보는 회원들의 표정이 진지하기만 하다.

    대중음악 평론가인 송기철씨는 “탱고음악의 매력은 남다른 비장미에 있다”고 말한다. “탱고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들어 있는 데다가 양식적으로도 잘 짜여져 있죠. 그리고 트로트에서 탱고리듬을 많이 이용해왔기 때문에 중년층도 쉽게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탱고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조금 달라졌다. 요즘은 탱고를 음악보다는 춤으로 즐기려는 젊은 층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탱고를 소재로 한 무용 공연이 부쩍 많아진 것도 이 같은 추세를 반영한다. 아르헨티나에서는 탱고를 추는 공간을 ‘밀롱가’라고 부르는데 홍대 앞에는 ‘보니따’ ‘바콘도’ 등 몇 군데의 밀롱가가 운영되고 있다.

    탱고를 추는 사람들은 ‘탱고는 한번 빠져들면 헤어나오기 어려울 만큼 깊이가 있는 춤’이라고 말한다. 원래 춤을 좋아해 살사, 스윙, 스포츠댄스 등을 섭렵하고 최근 탱고를 배우기 시작했다는 강희경씨(25·학생)는 “내가 배운 춤 중에서 탱고가 제일 재미있고 어렵다”고 말했다. “탱고는 배우면 배울수록 매료되는 중독성이 있는 춤이죠. 그렇지만 정적인 춤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어렵고 몸이 안 따라주는 면도 있어요.” 직장인인 정희주씨(32)도 강씨의 의견에 동감을 표시한다. 5개월 동안 탱고를 배웠다는 정씨는 “제대로 하려면 한 1년은 배워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깊어가는 가을 밤에 “쉘 위 탱고”

    피아졸라 10주기 추모공연인 ‘춤추는 반도네온’의 장면들. 국내 무용수들이 피아졸라의 탱고음악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선보였다.

    탱고 강사인 모현철씨는 대학원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평범한 직장인이다. 그는 “내가 처음 탱고를 배우던 2년 전만 해도 국내에 탱고를 출줄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요즘은 탱고를 배우려는 사람이 하루가 다르게 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인터넷 포털사이트를 중심으로 라틴댄스 동호회가 속속 결성되면서 탱고 인구가 빠르게 불어나고 있다고 한다.

    작고 미묘한 동작이 ‘매력’

    탱고와 살사 동호회인 ‘라틴 속으로’의 이은주 회장은 아직까지 탱고를 능숙하게 출 수 있는 동호회원들의 수는 많지 않은 편이라고 말한다. 라틴 춤 중에서도 동작이 크고 화려한 살사에 비해 동작이 작고 미묘한 탱고는 배우기 쉬운 춤은 아니라는 것.

    “탱고는 명확한 스텝이 없이, 파트너와 호흡을 맞춰 걷는 것이 곧 기본입니다. 그만큼 집중력이 요구되는 춤이죠. 그래서 주로 젊은 회원들은 살사를, 20대 후반부터 30대 정도의 층이 탱고를 배우려 합니다.”

    일반인들이 추는 탱고가 정적이면서 편안한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면 무대에서 공연되는 탱고는 또 다르다. 7쌍의 탱고 댄서들이 출연한 ‘패시네이팅 탱고’ 공연(10월11, 12일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발을 엇갈린 채 연속적으로 회전하거나 파트너를 공중으로 던지는 등 고난도의 동작들이 연출됐다.

    흔히들 탱고 하면 영화 ‘여인의 향기’나 ‘트루 라이즈’ 등에서 배우들이 탱고를 추던 장면을 연상한다. 그러나 영화 속에서의 탱고는 정통 아르헨티나 댄서들이 이번에 보여준 탱고에 비할 바가 못 되었다. 관능미가 넘치는 그들의 춤 속에는 한순간의 정열에 모든 것을 던져버릴 듯한 열정이 꿈틀거렸다. 그것은 차가운 불꽃과도 같은, 라틴의 정열 그 자체였다. ‘탱고 속에는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녹아 있다’는 말이 비로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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