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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 북한 ‘꽃미녀‘ 열풍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뛰어난 외모·활기찬 언행·다양한 응원으로 인기 폭발 … 부산아시아경기대회 최고 스타로 우뚝

  • 부산=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사진 조영철 기자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북한 ‘꽃미녀’ 응원단이 9월28일 창원 공설운동장에서 열린 북한-홍콩 축구경기 중에 화려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남한 남자들 마음이 다 녹고 있십니더.”

“무공해 미인들에 반했습니다.”

“너무 반가워 눈물이 납니더….”

남한 땅에 ‘북한 꽃미인’ 열풍이 불고 있다. 진원지는 제14회 아시아경기대회가 열리고 있는 부산. 이 대회에 참가중인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내려온 250여명의 북한 여성 응원단이 아름다운 외모, 활기찬 언행, 다채로운 응원 등으로 가는 곳마다 연일 화제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들의 외모에 반한 남성들뿐 아니라 남녀노소 모두의 응원단에 대한 호기심이 날로 커지고 있다.

10월3일 아침 8시께 부산 다대포 국제여객터미널 앞 공터. 전국에서 몰려든 400여명의 사람들이 40여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북한 응원단 숙소 만경봉-92호를 애타게 바라보고 있었다. 이날 북한은 소프트볼, 조정, 유도, 남자농구, 여자핸드볼 등의 경기가 있어 응원단은 이른 아침부터 움직일 계획이었지만 아직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5일째 이곳에서 어묵과 커피를 팔고 있는 김모씨는 “응원단을 보려는 사람들이 일요일에는 2000여명, 평일에는 1000여명씩 몰려든다”고 말했다. 김씨는 언론에서 연일 북한 응원단의 일거수일투족을 소개해온 데다 이날은 개천절이어서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함남 북청이 고향인 이기진씨(68)는 “응원단을 보기 위해 천안에서 이곳까지 달려왔다”며 “오랫동안 남북이 떨어져 있었는데 이렇게 가까이서 북한 사람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신기하다”고 감회에 젖었다. 전남 순천에서 온 회사원 김덕진씨(32)는 “남북 농구경기를 보러 왔다가 응원단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이곳을 찾았다”며 “예쁘고 좋다”고 말했다.

오전 9시께 배에서 내린 응원단 1조 130여명이 6대의 버스에 차례로 나눠 타기 시작했다. 기다리던 사람들이 “반갑습니다” “통일합시다” 등을 외치며 손을 흔들자 아래위 흰색 트레이닝복에 모자를 쓴 응원단들은 밝은 웃음을 지으며 창 밖으로 손을 흔들었다. 그러나 이번 대회조직위원회 안전통제부측이 북한 응원단과 일반인의 접촉을 철저히 막고 있어 몰려든 사람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손 흔드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버스가 이내 떠나버리자 어떤 이는 자동차로 이들을 뒤따라 가기도 했다.

40분 뒤 서낙동 조정경기장에 도착한 북한 응원단은 경기장 관중석 한쪽에 취주악단과 무용단으로 나눠 앉았다. 강과 잇닿은 잔디로 된 관중석과 고운 웃음의 ‘꽃미녀’들이 눈부시게 맑은 가을 햇살과 어우려져 한 폭의 그림을 만들었다. 경찰과 안전요원들이 북한 응원단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지만 그 사이를 뚫고 응원단원에게 말을 붙이는 이도 있었다.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북한 응원단의 화려한 ‘즉석 공연’을 즐기기 위해 관중들은 경기가 끝나도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는다. 10월3일 창원체육관에서 벌어진 북한-일본 핸드볼 경기에서 정선녀씨(맨 위)가 응원을 이끌고 있다

그러나 허투루 말을 붙였다간 낭패보기 십상이다. 응원단원들의 똑부러지는 말솜씨 때문이다. “예쁜 북한 응원단 보러 왔다”는 대학생 김모씨(22)가 응원단을 지휘하는 리유경씨(21)를 향해 “애인 있어요?”라고 묻자 리씨는 “기런 건 왜 묻지요?”라며 무안을 줬다. 김씨가 지지 않고 “어떤 남자를 좋아하느냐”고 묻자 리씨가 “통일을 위해 힘써주는 이가 좋아요”라고 말해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조정경기장에서 북한 응원단이 북한 선수들만 응원하는 것이 의아해 기자가 리씨에게 “왜 남쪽 선수들은 응원하지 않느냐, 남쪽 사람들에게는 무엇을 보여주러 왔느냐”고 묻자 “통일에 대한 열망입네다. 가만히 보시면 제 몸에서 느껴지실 겁네다”라고 답했다. 또한 리씨는 남북 농구대결을 앞두고 어느 편이 이길 것 같느냐는 질문에 “한 동포끼리 승부가 관계있습네까, 통일돼서 한민족 단일팀이 세계 1위 하는 게 기본이라 생각합네다”라고 답하기도 했다.

말을 되받아치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서울에서 온 정모씨(30)가 응원단을 향해 “모두 너무 예쁩니다. 응원 끝나고 저녁에 만날 수 있습니까”라고 묻자 일순 응원단이 조용해지는 듯했으나, 정씨가 다시 뭐라고 외치면 갑판으로 나오겠느냐고 묻자 얼굴을 살포시 붉히고 있던 길은혜씨가 “조국통일이라고 외치라요”라고 말했다.

튀는 응원

이들의 응원 모습을 지켜보던 회사원 김두일씨는 “눈이 부셔 못 볼 정도”라면서도 응원단으로 향한 눈길을 거두지 못했다. 그만큼 이들의 응원 모습은독특하고 여성스러우면서도 활기에 넘쳤다.

응원 지휘자 리유경씨에 따르면 이들이 준비한 응원 종류는 100개도 넘는다. 핸드볼이나 농구 등의 경기에서 북한 선수가 골을 넣을 때마다 일어서서 환호하는 것도 독특하다. 남쪽 사람들도 잘 알고 있는 노래 ‘반갑습네다’ ‘휘파람’ ‘처녀시절 꽃시절’ 등을 부를 때는 ‘꽃미녀’ 서너 명이 앞으로 나와 경쾌하면서도 여성스러운 몸동작으로 응원을 이끌었다. 깃대 흔들기, 나무조각 세 겹으로 겹쳐 만든 짝짝이 흔들기 등도 이채로웠지만, ‘용, 용, 용기를 내어라’ ‘잘한다, 잘한다, 우리 선수 잘한다’ 같은 우리말 응원구호들도 나름대로 재미가 있어 관중들 모두 금세 따라했다.

3일 오후 창원체육관 핸드볼경기장에서는 반대편 스탠드에서 응원하고 있던 아리랑응원단이 파도타기 응원을 시작하자 북한 여성 응원단도 이내 여기에 동참했고, 잠시 뒤에는 자신들이 먼저 파도타기를 시작했다. 아리랑응원단이 “조국”이라고 외치자 북한 응원단에서 “통일”이라고 받았고, “우리는”이라는 말에는 “하나다”라고 되받았다.

이렇듯 관중들을 휘어잡는 응원은 모두 카리스마 넘치는 지휘자 리유경씨 덕분이다. 인터넷 사이트에는 리유경 팬클럽이 세 개나 등장했으며, 어딜 가나 이제 그를 알아보는 이들이 많아졌다. 자연 북한에서 온 ‘스타’들을 보기 위해 경기가 끝나도 돌아가지 않고 응원 앙코르를 신청하는 이들이 많아졌다. 리씨는 이를 마다하지 않고 두세 차례 흥겨운 노래와 율동으로 신명을 풀어놓았다.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눈부시다.’ 이번 대회 최고 스타로 떠오른 북한 응원단원들. 왼쪽부터 리선영 길은혜 김순영씨

응원단원들을 대표하는 말은 순수미, 자연미다. 이들은 남쪽 여성들의 머리염색에 대해서 ‘해서는 안 될 짓’이라고 생각한다. 조정경기장에서 만난 대구대 교직원 전홍철씨(38)는 “단아한 얼굴, 살짝 웨이브만 준 퍼머, 일자로 자른 뒷머리 등을 보니 이들이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중시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창원 핸드볼경기장에서 만난 김미주씨(24·창원전문대 유아교육과)는 “성형하지 않은 자연미인들”이라며 “피곤 때문인지 화장이 들뜬 이도 있긴 했지만 너무 예쁘다”고 말했다.

개중에는 귀고리를 하거나, 입술화장이나 마스카라 등을 진하게 하는 이도 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서 순수미와 고전미가 느껴진다. 응원을 마치고 버스에 오르던 응원단을 바라보며 “야, 이쁘긴 이쁘다”고 혼잣말하던 회사원 이정재씨(30)는 “개성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남한 여성들과는 뚜렷한 차이가 느껴진다”고 말했다.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왼쪽부터 김옥별 리유경 윤경란 채봉이 리순미 리성애씨

이번 응원단은 조선청년예술선전대와 대학생 대표들로 구성됐다. 선발기준은 외모와 사상성 등인 것으로 알려졌지만 “어떤 기준으로 선발됐느냐”는 질문에 한 응원단원은 “통일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들 순으로 뽑았다”고 말하면서도 “북조선 여성들은 다들 미인입네다”라며 외모에 대한 자신감을 보이기도 했다.

응원단원들은 지도원으로 보이는 몇몇 중년여성을 제외하고는 거의가 20세 안팎의 꽃다운 나이다. “애인 있느냐”는 질문에 응원단원들이 묵묵부답이자 지도원 안성희씨는 “다들 어려서 애인 같은 건 없다”고 잘라 말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북한 응원단의 열기는 높아가고 있지만 그만큼 아쉬움도 커지고 있다. 북한 선수를 응원하는 부산시민서포터스인 황찬조씨(63)는 “북한 응원단과 공동응원을 하고 싶었지만 안전요원들이 심하게 통제해 접근조차 할 수 없다”며 아쉬워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저녁 늦게까지 이어지는 응원단의 빡빡한 일정 때문에 피로에 지쳐 보이는 단원들도 눈에 띄었다. 개인적 자유시간이 거의 없으며 화장실을 갈 때조차 통제되고 집단적으로 움직이는 것을 보고 이를 안쓰러워하는 이들도 있었다. 3일 조정경기장에서는 대회 조직위측이 제공한 1만원짜리 도시락을 버스에서 20여분 만에 먹고 내려와 다시 응원을 시작하기도 했다.

‘무공해’ 미인 北女, 南男 가슴  녹이다

왼쪽부터 김숙영 최혜경 정선녀씨. 양장(오른쪽 위)과 운동복(아래) 차림으로 응원하고 있는 북한 응원단

북한 응원단에 대한 요즘의 열광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이들도 있다. 북한 여성들의 외모에만 열광하는 것은 남북관계에서 결코 바람직스러운 현상은 아니라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 응원단 1명이 남쪽 사람들을 사로잡는 효과가 대단하자 ‘김정일이 일당백의 응원단 250명을 보냈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오고 있다.

그러나 8·15 행사에 참석한 북한 무용단의 ‘스타’ 조명애씨로부터 시작된 이런 북한 미인 열풍은 북한에 대한 경직된 시선을 부드럽게 하는 데 큰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된다. 김지하 시인은 “남쪽 사람들에게 북한 사람은 총질이나 하는 딱딱한 이미지로 굳어 있는데 아름다운 아가씨들이 찾아와 살포시 웃고 통일을 이야기하며 발랄하게 응원하자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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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월3일 아침 9시께 부산 다대포항에 정박해 있는 만경봉-92호에서 내린 응원단이 경기장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있다(위).응원단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버스에 탄 응원단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

숭실대 장원재 교수는 ‘북녀 열풍’의 원인을 세 가지로 풀이했다. 첫째 북한의 민간인이 이번처럼 대규모로 내려왔던 적이 없었고, 둘째 6월 월드컵 때 우리 국민 모두가 응원에 대해 새로운 공감대를 갖게 돼 북한 응원에 대해서도 특별한 관심을 갖게 됐으며, 셋째 ‘무공해 미인’들에 대한 성적인 호기심 때문이라는 것.

3일 오후 6시50분께 다시 다대포 국제여객터미널 앞 공터. 이날 3개 조로 흩어졌던 응원단이 하루 일과를 마치고 몰려든 사람들의 환호를 받으며 모두 배로 돌아간 뒤였다. 한국청년단체협의회 소속 40여명의 회원들이 몰려와 만경봉-92호를 바라보며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반갑습니다!” “통일합시다!”

서너 차례 연호하자 응원단원들이 갑판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청년들이 환호했으나 이들은 손을 흔들고는 이내 들어가버렸다. 청년들이 이제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 그러자 다시 갑판에 나타난 응원단원들이 여기에 화답했다.

“통일하자요.”

노래도 주고받았다. 청년들이 ‘반갑습니다’를 부르자 배에서 ‘우리는 하나’라는 노래로 답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덧 인파는 500여명으로 불어나 있었다. 10여분 뒤 다시 20여명의 일행이 같은 방식으로 노래하고 외치고, 응원단과 마음을 주고받았다. 저녁 7시50분께 ‘아리랑’을 끝으로 응원단원들은 “내일 봐요”라고 외친 뒤 하나 둘씩 안으로 들어갔고, 갑판의 문이 닫혔다. 떠나지 않을 것 같던 구경꾼들도 아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북측 민간인과 남측 민간인들이 자유로이 만나 서로에게 마음을 연 역사적인 날이었다.

그 순간 닷새째 매일 이곳을 찾아와 응원단을 위해 아코디언을 연주하고 있는 이희완씨(48·고물상)의 ‘타향살이’ 멜로디가 밤하늘로 울려 퍼졌다.





주간동아 355호 (p24~26)

부산=정현상 기자 doppelg@donga.com 사진 조영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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