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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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 공화국’의 슬픈 자화상

  • 우찬규 / 학고재 대표

    입력2002-10-04 17:4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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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형 공화국’의 슬픈 자화상
    고구려 고분벽화에 나오는 여인의 얼굴은 매우 흥미롭다. 쌍영총 안주인의 얼굴은 빵처럼 둥글다. 각저총의 여인은 네모난 얼굴이다. 좀 갸름하다 싶은 얼굴은 장천 1호분에서 보인다. 그래도 폭이 한 뼘은 족히 될 듯하다. 벽화의 얼굴들은 아마 생긴 그대로 그려졌을 것이다. 고려시대 고분에 그려진 선녀는 얼굴도 몸집도 다 풍성하다. 다산(多産)을 강조한 것이거나, 얼굴도 마음도 둥근 게 좋다는 염원이 들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중국의 옛 그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궁중에서 시중드는 여인들을 그린 ‘사녀도(仕女圖)’는 등장인물이 하나같이 ‘달덩이’다. 고려 불화의 관음보살상과 닮았다. 좋게 보자면 원만한 상이다. 그 시절 중국은 ‘후육미(厚肉美)’를 제일로 쳤다. 푸짐한 육덕이 상전의 은총을 입는 조건이었다.

    ‘달덩이 같은 미녀’는 그러나 옛말이 된 지 오래다. 요즘 여성에게 그 말은 모욕이다. ‘쥐어짠 오이지’ 정도 돼야 모델도 되고, TV에도 나온다.

    깎고 도려내고 붙이고… ‘용모지상주의’ 언제까지

    얼굴이 인생을 결정한다는 지금은 달걀 같은 얼굴로도 모자라다. 얼굴로 승부하려면 그보다 가늘어야 될 성싶다. 그래서 성형외과 앞은 날마다 장사진이다. 거기서 줄일 만큼 줄이고, 깎을 만큼 깎아야 살아남는다. 기왕 할 바엔 코도 오똑하게 세우고, 입 주변에 생긴 주름도 제거하는 게 좋다. 종아리에 붙은 근육이 볼썽사납다면 칼로 도려내는 걸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 하물며 뱃살은 더할 나위 없는 죄악이다. 지방흡입술로 모조리 뽑아내야 한다. 물론 배꼽도 예쁘게 다듬어야 한다.



    벽화나 그림 속의 옛 여인들은 요즘 관점에서 보면 밉상이다. 얼굴로는 봐줄 게 없다. 그나마 우아하게 보이는 부분은 차림새다. 몸에 걸친 장식품이 그들을 돋보이게 한다. 여신은 펄럭이는 천의(天衣)를 입고 있다. 궁중 시녀나 지체 높은 여인들은 삼단 같은 머리채에 갖은 치장을 한다. 가슴에는 액세서리용 노리개가 달려 있고, 손은 깃털로 만든 부채를 쥐고 있다. 그들은 ‘옷이 날개’다. 그러나 지금 여성들은 ‘옷이 걸레’다. 무릎이나 넓적다리가 드러나는 찢어진 청바지에 손바닥만한 티셔츠 쪼가리를 걸친다. 치레는 볼썽사납게, 외모는 곱상하게…. 전 시대에 없던 비대칭 미학이다.

    조선시대에 이르면서 미인도는 자취를 감춘다. 아무도 그리지 않았고, 그리게 내버려두지도 않았다. 산 좋고 물 좋은 고을에 미인이 하루아침에 사라지기야 했겠는가. 남녀유별이 철통 같으니 엄두를 못 낸 탓이다. 그나마 중기를 넘어서면서 숨통이 좀 트인다. 단원 김홍도가 나오고, 혜원 신윤복이 뒤를 잇고 하면서 겨우 미인의 자색을 감상할 수 있었다. 그들이 그린 미인도는 도톰한 볼에 수줍은 자태다. 풍선처럼 부푼 치마와 높다란 트레머리는 감춤의 미덕을 반영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도 철모르는 소리가 됐다. 수줍음과 감춤은 현대 여성에게 있어 시급히 개선해야 할 누습(陋習)이다. 당당함과 드러냄이야말로 시대가 요구하는 개혁적 덕성이다. 부끄러울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고칠 것 다 고치고, 바꿀 것 다 바꿨으니 더욱 그렇다. 새로운 얼굴이 맨얼굴이 된 것 아닌가. 옛 얼굴은 그리워할 이유가 없다. 혹시 기억나지 않는다면 가끔 주민등록증 사진을 꺼내보면 될 테니까.

    조선 중기까지 갈 것도 없이, 19세기까지만 해도 미인은 ‘자연산’으로 묘사됐다. 그림에서도 그렇고 글에서도 그렇다. 미인의 얼굴을 찬탄하는 말은 한결같다. ‘박씨 같은 치아와 매미 같은 이마, 누에를 닮은 눈썹에 홍도 빛 볼, 앵두 같은 입술’이다. 자연산을 수식하는 자연스런 수식어는 모두 자연산이다. 그러나 이 시대 미의 조건으로 신토불이는 촌스럽다. 양식(洋式)과 양식(養殖)이 각광받는다. 박씨 같은 이빨보다 멜론씨 같은 이빨이 더 낫고, 앵두 같은 입술보다 체리 같은 입술이 더 매력 있다.

    지금 20대 이상 여성 10명 중 1명은 성형미인이다. 이것은 가장 최근의 통계다. 그래서 외국 언론은 한국을 ‘성형의 천국’이라 부른다. 한국인은 지상에 임한 천국에서 살고 있다. ‘용모가 인생을 좌우하는가’라는 물음에 ‘그렇다’고 대답한 여성이 68%에 이른다. 경쟁시대의 무기는 실력이 아니라 용모라는 얘기다. 그야말로 ‘얼굴이 밥 먹여주는’ 것이다. 어떤 여성은 면접시험을 앞두고 지방흡입술을 받다가 죽었다. 그는 ‘피와 살이 튀는 육박전’에서 패한 것이다. 또 다른 여성은 먹을 것 다 놔두고 굶어 죽었다. ‘목숨 걸고 하는 미화(美化)사업’에서 낙오한 것이다. 그래도 잘 참는다. 다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자고 하는 일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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