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2002.08.29

죽음 강요했던 무리한 보험재정 절감책

  • 최영철 기자

    입력2004-10-04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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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음 강요했던 무리한 보험재정 절감책
    지난 7월31일, 부산에 사는 70대 생활보호대상자 박모씨(70)가 자신의 방에서 목을 매 숨진 채 발견됐다. 폐기종, 천식, 위장병, 전립선염 등 갖은 만성질환을 달고 있던 박씨가 자살을 선택한 것은 올 들어 엄청나게 올라간 의료비 부담 때문.

    지난 98년, 주위의 도움으로 생활보호 대상자로 지정된 박씨는 의료보호 1종 수혜자로 끼니마다 복용하는 20여 알의 약값을 큰 부담 없이 구입해 왔다. 하지만 정부가 바닥난 건강보험재정 지출을 억제할 명목으로 지난 1월과 4월 소화제, 영양제, 정장제, 감기약 등 1400여개 품목의 의약품을 보험 비급여 대상으로 지정하면서 박씨의 일주일치 약값은 평소 6000원에서 2만~3만원대로 훌쩍 뛰었다. 노동력을 상실한 생보자에게 이는 생활비의 전부를 약값으로 내라는 이야기였다.

    게다가 최근 집으로 날아든 건강보험공단의 ‘급여일수 내역서’는 그에게 죽음을 강요했다. 올해부터 연간 보험 급여일수(투약일수)가 365일을 초과할 경우 초과 진료비를 본인이 부담해야 하는데 박씨의 내역서에는 3월 초까지만 201일의 급여일수가 찍혀 있었다. 병이 많아 여러 과에서 동시에 진료를 받다 보니 이런 결과가 벌어진 것이다. 내과 진료도 포기한 박씨는 당장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할 형편이 됐다. 치료비가 많이 나올 것을 걱정하던 박씨가 선택한 길은 자살이었다.

    보건복지부는 8월5일 박씨와 같이 만성질환자가 또 다른 만성질환을 앓거나, 새로운 질병에 대한 치료를 할 경우는 전체 요양 급여일수에서 중복된 질환과 또 다른 만성질환에 대한 급여일수를 제외키로 했다(11개 만성질환에 한함). 또 6일 ‘대국민 테러행위’로 지탄받았던 위궤양치료제 등 소화기관용 의약품에 대한 건보 급여 제한 조치를 철회키로 의사협회와 합의했다.

    주간동아는 올 들어 세 차례에 걸쳐 이 같은 복지부의 무리한 보험재정 절감책을 강도 높게 비판해 왔다. 복지부의 이번 조치는 일단 반가운 일이지만 늦어도 너무 늦었다는 느낌이다. 시민단체와 의료계의 반발에 그들이 조금이라도 일찍 귀 기울였다면, 그래서 아예 이런 ‘악법’이나 ‘부당한 지침’이 만들어지지 않았더라면 박씨의 죽음은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 ‘사후약방문’ 격이지만 박씨와 같은 억울한 죽음이 또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복지부는 의료정책의 입안과 실시에 좀더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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