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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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불만 제때 꺼도 수십억불 효과

1ha 산림서 연 12t 산소 발생 … 아시아·북미에 ‘소방 비행 편대’ 필요성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0-04 13: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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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불만 제때 꺼도 수십억불 효과
    최악의 가뭄과 사상 최고의 더위를 기록하고 있는 미국은 연방군까지 동원해 지금 산불과의 전쟁을 벌이고 있다. 8월 초 발화한 산불은 워싱턴, 캘리포니아, 애리조나, 콜로라도 등 북서부 지역 수백만ha를 훑었지만, 아직까지 불길을 잡지 못한 상태. 1ha의 산림이 연간 16t의 탄산가스를 흡수하고 12t의 산소를 발생한다고 했을 때(산림청 추산), 올여름 미국 산불로 3000만t의 이산화탄소 저장고가 사라졌다.

    산불은 숲이라는 거대한 탄소 저장고를 파괴하면서 거꾸로 엄청난 온실가스 배출원으로 만든다. 숲이 저장하고 있던 탄소가 이산화탄소로 바뀌어 대기중으로 방출되기 때문이다. 유엔 환경전문가들은 피해 면적이 남한 크기에 이르렀던 98년 시베리아 산불에서 5000만t 이상의 이산화탄소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한다. 우리도 96년 강원도 동해안 지역의 산불로 2만3000ha의 산림이 사라지고 약 35t의 탄산가스가 방출됐다. 이산화탄소 등 온실가스의 증가는 기후 변화의 원인이 되고, 더욱 덥고 건조해진 대기는 산불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등 악순환이 거듭된다.

    산림청 통계를 보면 지난해 국내에서 발생한 산불은 785회, 피해 면적은 963만ha. 아시아의 산소 저장고인 러시아 지역에서는 매년 2만~3만 건의 산불이 일어난다. 특히 러시아 산림의 상당 부분이 영구 동토에 위치하고 있어 화재로 인한 산림소실은 동토를 녹이고 동토 중에 있는 유기물 분해를 촉진시켜 온실가스 중 하나인 메탄을 발생시킨다. 산불 피해로부터 회복하는 데 조림지는 30년, 천연림은 무려 100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러 소방 비행기 8대면 산불 2~3시간 내 진화

    이처럼 산불 피해의 심각성에 비하면 온실가스 배출원인 산불에 대한 경각심은 미미한 편이다. 산업시설이나 자동차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실가스와 달리 불가피한 자연재해로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 러시아, 일본 3국을 아우르는 ‘동북아환경재난방지협의회’를 만들고 공동 산림화재 방재작업에 나서자는 이색 제안이 나와 눈길을 끈다. 협의회 구성 등 구체적인 방안은 한러문제연구원이 작성중이다. 97년에 설립된 이 연구원은 박근혜 의원의 ‘싱크탱크’로 알려져 있으며 최초로 ‘부산-모스크바 유라시아철도’를 제안하기도 했다. 권영갑 소장은 ‘동북아환경재난방지협의회’에 대해 “동북아 국가들의 새로운 협력체제 확립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에서 이 지역 환경보전과 재난방재에 공동 대처하고, 발등에 떨어진 교토의정서 비준에 맞춰 우리나라가 온실가스 배출 관련 부담금을 줄일 수 있는 획기적인 방법”이라고 운을 뗐다.

    협의회 설립 최초 구상은 지난해 10월 성남에서 열린 ‘서울에어쇼2001’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의 차세대 전투기 선정을 앞두고 각국의 막판 홍보전이 치열한 가운데 수호이사의 페트로프 회장이 전투기가 아닌 소방용 비행기 ‘BE-200’의 모형을 들고 왔다. 페트로프 회장은 “동북아 산림화재 방재에 큰 도움이 될 비행기”라며 한국 총리와 만나고 싶다는 의사를 비쳤다. 그는 러시아 유리 텐(한국명 정홍식) 하원의원과 이한동 전 총리를 만났다.

    실제 에어쇼에 모습을 드러낸 BE-200은 행사의 하이라이트라 할 만큼 인기를 끌었다. 이 비행기는 동체 하부가 물탱크로 되어 있어 공중에서 수면 착륙한 뒤 12t까지 물을 자동 적재(수십 초밖에 걸리지 않는다)하고 곧바로 대규모 산불진화에 나설 수 있다. 항공시간은 최대 6시간. BE-200이 시범비행을 하며 12t의 물을 활주로에 쏟아내자 관람객들 사이에서 “강원도 고성 산불 때 저런 비행기 한 대만 있었다면…” 하며 감탄사가 쏟아졌다.

    산불만 제때 꺼도 수십억불 효과
    이 비행기 1개 편대(8대)만 있으면 한반도, 일본, 극동 시베리아 등지에서 발생하는 산림화재를 2~3시간 내에 진화할 수 있다고 한다. 수륙양용인 BE-200은 이륙거리 1400m(육지 950m)로 호수, 강, 바다 어디에서든 물을 자동적재한다. 한러문제연구원측은 이 비행기 4개 편대(32대)를 도입해 동북아 지역 1개 편대, 북미 지역 2개 편대, 동남아 지역 1개 편대를 배치해 산불 진화에 활용하는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세계 10위의 온실가스 배출 국가다. 2000년 기준 이산화탄소 배출량만 4억9400만t에 달했다. 단순 계산하면 이를 10% 감축하는 데 100억 달러 이상의 비용이 든다. 교토의정서가 정한 대로 평균 5.2% 감축한다 해도 연간 50억 달러가 필요하다. 이처럼 엄청난 비용을 고스란히 우리 주머니에서 꺼내는 대신 이산화탄소 흡수원인 산림을 보호하는 대가로 배출권을 확보하자는 계획이다.”

    전문가들은 동아시아와 북미 지역 산림만 총 11억9600만ha로, 이 지역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대형 산림화재를 제때 막을 수만 있다면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약 20% 정도를 감축시킬 수 있다고 한다. 아시아·태평양·북미 지역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약 38억t에 달하며, 이중 20%는 7억6000만t으로 우리나라가 1년간 배출하는 이산화탄소량의 2배 가까이 된다.

    만약 톤당 10달러에 이르는 이산화탄소 국제거래 가격에 비추어 우리나라의 탄소배출량을 제한 나머지 배출권의 가치를 달러로 환산했을 때 연간 30억 달러 이상을 오히려 벌 수 있다. 물론 이 계산은 산불 방재를 통한 이산화탄소 발생 억제분을 모두 탄소 배출권으로 인정받고, 또 한반도 외에 극동 러시아 지역과 일본, 북미 지역이 이 사업에 참가한다는 가정 아래 한 것이다.

    이 사업의 걸림돌은 최소 1개 편대가 필요한 소방용 비행기 구입비. 한러문제연구소측은 우리 정부가 러시아로부터 받아야 할 19억5000만 달러의 경협차관으로 상계하는 방법을 내놓았다. 최근 국방부가 러시아로부터 2억6700만 달러 상당의 무기를 현물로 받고 그 액수만큼 경협차관에서 공제하기로 한 것을 보면 전혀 불가능한 계획도 아니다. 비행기 제작사인 수호이측은 양국 정부가 합의한다면 언제든지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동북아환경재난방지협의회 구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신선한 발상” “좋은 아이디어지만 비용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현실성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러나 권영갑 소장은 “유라시아 철도를 제안했을 때 모두들 꿈 같은 소리라며 말렸지만 지금은 현실이 됐다”며 “이 사업은 정부 차원에서 할 일이 아니라 민간이 추진해야 한다. 소방용 비행기 구입을 한국이 주도할 수만 있다면 이후 한·러·일 3국이 설립한 동북아환경재난방지협의회가 운영하는 시스템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인도,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 상공에 떠 있는 두께 3km의 거대한 갈색구름이 전체 일조량의 10~15%를 차단해 대지와 해수면을 냉각시키는 한편, 그 위 대기는 뜨겁게 만들어 지구촌 곳곳 기상이변의 원인이 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UNEP)은 4~5년 전부터 잇따른 아시아 지역의 산불과 쓰레기 소각, 화석연료 사용으로 생긴 CO2 등 오염물질이 갈색구름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지금도 산불은 시시각각 우리를 위협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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