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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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국은 없다”

한·중 수교 10년째 중국제품 대부분 점령 … 첨단 하이테크 부문서도 맹추격 당해

  • < 윤영호 기자 >yyoungho@donga.com

    입력2004-10-01 14:0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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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국은 없다”
    30대 초반의 직장인 A씨가 중국산 탁상시계의 자명종 소리에 눈을 뜬 시각은 아침 7시. 그러나 어젯밤의 ‘질펀한’ 술자리 때문인지 머리가 지끈거려 이불 속에서 잠시 게으름을 피우다 부장의 얼굴이 떠오르자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종합상사 직원인 A씨는 어젯밤 거래처 직원들을 서울 강남 술집에서 새벽까지 접대했지만, 이런 경우 부장은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그 결과를 듣고 싶어했다.

    A씨가 거래처 직원들과 갖는 술자리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때마다 A씨는 서울 강남의 B술집을 이용한다. 어제는 거래처 직원 쪽에서 아예 B술집으로 가자고 졸라댔다. 지난번에 맛본 속칭 ‘중국산 비아그라’ 때문이었다. 불개미를 갈아 만들었다는 이 ‘중국산 비아그라’(상품명 불개미)는 이 술집 마담이 ‘2차’를 나가는 손님들을 위해 준비한 비장의 카드. 이 술집 마담은 “불개미는 부작용이 전혀 없다”고 자랑한다.

    A씨는 일어나자마자 습관대로 신문과 담배를 들고 화장실로 향했다. 신문에는 중국 중앙은행이 곧 이자율 인하를 단행할 것이라는 예측 기사가 일면 머리를 장식하고 있었다. 세계 경제 성장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중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세계 각국이 중국측에 이자율 인하를 ‘정중히’ 요청한 데 따른 것이라는 해설이 곁들여졌다. 그가 화장실에서 물고 있는 담배는 국내 구강물산이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한 ‘이프’(if).

    섬유제품 순수한 국산 찾아보기 힘들어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국은 없다”
    A씨는 집의 TV 수상기 등 전자제품뿐 아니라 사무실 컴퓨터도 중국산 제품을 쓰고 있다. A씨가 사무실에 도착하자 휴대전화가 요란스럽게 울렸다. 어제 접대했던 거래처 직원이었다. ‘덕분에 즐거웠다’는 얘기를 듣고 “점심 때 같이 해장이나 하자”고 제안해 승낙을 받았다. A씨는 접대가 성공했음을 직감했다. 에릭슨 중국 공장에서 생산해 국내에 수입된 그의 휴대전화 단말기는 통화 품질이 최상급이었다.



    A씨가 지정한 점심식사 장소는 중국산 자라를 이용한 용봉탕으로 유명한 강남의 한 음식점. 이 집은 중국 흑룡강성의 쌀로 밥을 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흑룡강성 쌀은 한국 쌀 못지않게 찰지고 맛이 있어 인기를 끌고 있다. 거래처 직원은 중국산 자라를 화제에 올리면서 “요즘 중국에서는 ‘한국 사람들 때문에 자라 씨가 마른다’는 얘기가 퍼지고 있다”고 소개했다.

    오후 일과를 마친 A씨가 자가용 승용차를 이용해 자신이 살고 있는 수도권 신도시 아파트로 퇴근한 것은 저녁 8시 무렵. 그의 승용차는 국내 자동차 회사가 생산한 것이지만 부품은 중국에서 수입했다는 기사를 신문에서 본 적이 있다. 그가 사는 아파트 역시 중국 조선족 인부들의 땀이 배어 있다. A씨도 건설 현장에 조선족이 없으면 공사가 안 된다는 얘기를 자주 들었다.

    A씨의 하루는 우리의 일상에 중국산 제품이 얼마나 스며들었는지 가상으로 구성한 것이다. 물론 위에 언급한 얘기 가운데 전자제품이나 컴퓨터, 휴대전화 단말기, 용봉탕 얘기는 현재 진행형이 아니다. 그러나 중국 전문가들은 가까운 장래에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중국과의 수교 초기 국내에 들어온 중국산은 이쑤시개로 대표되는 단순 제품과 1차 상품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이 가운데 중국 현지 기업 제품도 있지만 한국 기업의 중국 현지 공장에서 생산된 제품이 국내에 반입된 경우도 많다. 중국의 값싼 노동력을 이용하기 위해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그만큼 늘었다는 얘기다.

    인건비가 경쟁력의 핵심인 섬유제품 등은 이미 국내에서 생산되는 순수한 의미의 ‘국산’을 찾아보기 힘들다. 최근 산업연구원이 발표한 ‘중국과 한국의 섬유산업 경쟁력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산 의류의 국내 시장 점유율은 92년 29.3%에서 지난해 73.7%까지 높아졌다. 물론 이 가운데는 국내 기업의 중국 공장에서 만든 제품도 포함돼 있다. 안방을 중국산에 내준 가장 큰 원인은 인건비 때문. 2000년을 기준으로 할 때 한국의 시간당 인건비가 5.32달러인 반면 중국은 0.69달러에 불과해 중국이 한국의 13% 수준이라고 이 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1차 상품은 어떤가. 식품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산 농수산물이 이미 한국 식탁을 점령했다”고 서슴없이 말한다. 한 식품업체 관계자는 “최근의 마늘파동에서 보듯 현재 우리 식탁은 주식인 쌀과 신선채소를 제외하면 가공하지 않은 식품은 거의 중국산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고 단언했다. 뿐만 아니라 가공식품에도 일부 중국산 농수산물을 원료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국은 없다”
    국내에 반입되는 중국산 제품 가운데는 ‘베끼기 천국’ 중국의 실상을 짐작케 하는 것도 많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산 유사 비아그라. 인천국제공항 세관 관계자는 “최근 중국에서 들여오는 비아그라 적발 사례가 늘고 있는데, 이들은 100% 유사 비아그라다. 흥미로운 점은 유사 비아그라를 식품의약품안전청에 의뢰해 검사해 보면 진짜 비아그라의 주성분인 실데나필이 88~92% 정도 검출된다고 한다”고 했다.

    그러나 중국은 지금 ‘세계의 공장’으로 급속히 발전하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저급한 상품이나 만들어내고 베끼기 상품을 쏟아내는 나라가 아니라는 얘기다. 무역협회 관계자는 “중국 시장을 석권한 중국 현지 기업이 해외로 눈을 돌려 수출과 해외 현지 생산을 추진함으로써, 개발도상국을 중심으로 중국 브랜드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어 한국 기업에 상당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 들어 중국 기업이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고 있는 분야는 TV, 냉장고, 에어컨, 오토바이나 통신기기, 기계·공장설비 등의 분야. 모두 중국의 낮은 생산비를 유감없이 발휘할 수 있는 저부가가치 상품들이다. 이들 상품은 당연히 국내 경쟁기업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이들 중국 제품은 동남아시아 인도 중동 아프리카까지 진출, 현지의 한국 기업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누적 무역흑자 ‘333억弗’… 이제부터 본게임 시작

    ‘요람’에서 ‘무덤’까지 “한국은 없다”
    오토바이의 경우를 예로 들어보자. 올 상반기 국산 오토바이 판매량은 모두 9만5689대로 작년 같은 기간의 12만7294대보다 24.9% 감소했다. 내수 판매량이 7만284대로 지난해 상반기의 7만7373대에 비해 9.1% 줄어들었으며, 수출은 2만5353대에 그쳐 전년 동기(4만9921대)보다 49.2%나 감소했다. 외환위기 이전에는 오토바이 판매량이 40만대에 육박했으나 올 예상 판매량은 20만대에 못 미칠 것으로 업계에서는 보고 있다.

    이처럼 판매량이 급감한 원인 가운데 대표적인 것은 역시 가격이 저렴한 중국산 오토바이의 수입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 효성 관계자는 “중국산 오토바이의 경우 국산에 비해 품질은 떨어지지만 가격이 훨씬 저렴해 찾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며 “수출이 급감한 것도 유럽 베트남 등 주요 시장에서 중국산의 공세가 거세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중국의 전자제품도 곧 국내에 들어올 것으로 보인다. 국내의 한 대기업이 중국 최대의 종합가전업체 하이얼 제품을 수입하기 위해 하이얼측과 접촉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앞서 언급한 A씨처럼 1~2년 이내에 중국산 전자제품을 애용하는 사람이 늘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무역협회 동북아경제팀 관계자는 “다리미, 헤어드라이어 등 소형 가전제품에서 한국산은 이미 경쟁력을 상실했고, 그나마 하이테크 제품에서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으나 중국의 추격이 무섭다”고 말했다.

    한·중 수교 10년을 맞은 지금 국내에서는 중국산 제품이 넘쳐나고 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이들이 즐겨 찾는 완구제품은 오래 전에 중국산이 국내 시장을 장악한 상태. 이제는 그야말로 ‘요람에서 무덤까지’ 중국산 제품 속에 살게 될 날도 멀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수교 이후 10년 동안 중국과의 무역에서 누적 흑자 333억 달러를 기록했음에도 중국산 제품을 두려워하는 것은 이 때문인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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