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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간동아칼럼

신명나는 삶 휘슬이 울렸다

  • < 이희수 /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신명나는 삶 휘슬이 울렸다

신명나는 삶 휘슬이 울렸다
심판이 경기 종료 휘슬을 부는 순간. 90분간 잠시도 눈길을 돌릴 수 없었던 환호와 탄식, 짜릿한 골의 감격도 끝이 난다. 이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수많은 카메라 플래시는 각자의 감동을 밤하늘에 풀어놓는다. 21세기 최초의 지구촌 축구향연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나는 인천 문학경기장과 서울 상암구장, 그리고 일본 오사카 나가이 스타디움에서 직접 경기를 관전했다. 그러나 우리의 응원 열기와 질서의식, 축제의 불꽃은 일본과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10만명에 가까운 관람객을 철저한 검색을 거쳐 입장시키고, 또 수십만명의 인파가 빠져나가는 과정에서 몇 단계 향상된 자율시스템을 보았다. 밀리지도 짜증나지도 않는 매끄러운 흐름, 친절한 안내와 자긍심이 품어내는 여유, 30분 만에 경기장 주변을 텅 비게 만드는 분산의 묘미. 월드컵대회는 우리 스스로를 세계 수준의 문화역량을 가진 민족으로 우뚝 서게 했다.

마음의 찌꺼기 날린 월드컵, 이젠 초강력 에너지

이번 경기의 두 문화코드는 ‘붉은 악마’와 시민 서포터즈였다. 거대한 붉은 물결의 함성이 가슴을 울린 지난 한 달, 우리 모두는 한 민족임을 너무도 또렷하게 새기고 또 새겼다. 세대를 넘어 닫힌 벽을 뚫고 화합과 희열이라는 선물을 받았다. 지난 냉전의 50년간 짓눌리고 억압당해 온 마음의 찌꺼기들을 한꺼번에 속 시원히 날려버렸다.

포도주통의 폭발을 막기 위해 가끔씩 뚜껑을 열어줘야 하는 것처럼, 우리의 일상에도 정기적으로 분출하는 축제가 필요했다. 그동안 축제란 이름을 가진 수많은 축제는 자율이 배제된 행사에 불과했다. 이번에는 모두가 주연이 된 거리응원을 통해 우리는 진정한 축제의 묘미를 맛보았다. 그리고 이 묘미를 다시는 놓치지 않을 것이다.



우리 팀을 열광적으로 응원하는 ‘붉은 악마’만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다른 나라를 위해 헌신적으로 열광하는 서포터즈도 눈여겨보았다. 아마 우리 역사상 시민들이 아무런 인연도 없는 남의 나라를 위해 조직적으로 기금을 모으고, 티셔츠를 맞추고 응원가를 입수해 경기장 안팎에서 목이 터져라 응원하는 모습을 보여준 예는 처음이 아닌가 싶다. 아름다운 그들의 모습은 감동을 넘어 자랑스러운 우리의 자긍심이었다. 진정한 화합과 글로벌 시대를 살아가는 지구촌 시민의식이 여지없이 발휘되었다.

나도 터키팀 서포터즈 일원으로 참여했지만 인터넷 동호회에서 터키팀을 응원하겠다고 나선 젊은이가 1만5000명을 넘었다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다. 우리와 맞붙은 3, 4위전에서도 그들은 노란 셔츠를 입고 ‘붉은 악마’ 틈새에서 목이 터져라 터키팀을 응원했다. 시청 앞 광장에서도 그들은 붉은 악마와 함께 응원전을 펼쳤다. 야유도 없었고, 조국을 등졌다는 손가락질도 없었다. 페어플레이와 스타선수들의 멋진 기량에 갈채를 보냈다. 터키 선수들도 기자회견에서 예기치 않았던 한국 시민들의 응원이 잊을 수 없었다고 회고했다. 우리 민족의 문화의식은 이미 세계적인 화두가 되었다.

월드컵 축제가 우리에게 가져다 준 선물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자율의 힘, 참여의 기쁨, 세대의 벽을 허무는 쾌감, 믿어지지 않는 질서, 신명의 회복, 자신감, 진정한 국민 통합. 이제 우리는 이것을 소중히 지키자. 스스로가 좋아서 빠져드는 신명나는 삶을 되찾아가자. 자율이 빠진 월드컵 임시 공휴일 지정도 그래서 약간은 불만이다.



주간동아 342호 (p96~96)

< 이희수 / 한양대 교수·문화인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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