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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충남 태안 ‘집단 서식지’에서도 자취 감춰 멸종 위기 … 소 방목 기피로 식량인 ‘쇠똥’ 못 구해

  • < 김현미 기자 > kimzip@donga.com

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여기 있다!” 나무 그늘 아래 배를 깔고 느긋하게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누렁이(토종한우)를 발견하자 이평주씨(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사무국장)는 보물찾기라도 한 듯 탄성을 질렀다. 이번에는 풀더미를 뒤져 누렁이가 싸놓은 푸짐한 똥을 보고 얼굴이 확 펴진다. 똥이 말라 딱딱해지기 전에 얼른 푸대에 담고 누렁이에게 한마디 건넨다. “많이 먹고 많이 싸거라.”

이평주 사무국장이 며칠째 쇠똥을 찾아 헤매는 이유는 이 말랑말랑한 쇠똥이 왕쇠똥구리의 식량이기 때문. 해안사구로 유명한 충남 태안군 원북면 신두리는 멸종 위기에 처한 왕쇠똥구리의 집단 서식지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왕쇠똥구리가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해안사구 초지에서 한가로이 풀을 뜯던 수십 마리의 소들이 사라졌다. 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30여년 전만 해도 농촌에서 쇠똥구리는 흔한 곤충이었다. 쇠똥구리는 긴 뒷다리로 경단처럼 빚은 쇠똥을 굴려 은신처에 감춰두고 식량으로 삼거나 쇠똥경단에 알을 낳아 키운다. 그러나 오랫동안 제주도에서 몇 개체가 발견된 것을 제외하고 쇠똥구리는 사라졌다. 특히 왕쇠똥구리는 한때 멸종된 것으로 보고되기도 했으나 곤충학자 김정환씨(고려곤충연구소 소장)가 소를 방목해 키우는 지역들을 조사한 결과 97년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왕쇠똥구리를 발견했다.

딱정벌레목 쇠똥구리과의 왕쇠똥구리는 몸길이가 20~25mm로 검정색에 머리 앞쪽에 큰 톱날 모양의 돌기가 6개 달려 있고 앞다리에도 4개의 돌기가 달려 있다. 톱날 같은 돌기로 쇠똥의 딱딱한 겉면을 들어올리고 속으로 파고들어 반죽이 부드럽고 자양분이 풍부한 부분으로 경단을 만든다. 이때 길고 둥글게 휜 뒷다리로 지름 3~3.5cm의 호두알만한 경단을 빚는 솜씨가 가히 예술이다.

그런데 쇠똥구리라고 아무 똥이나 먹지 않는다. 왕쇠똥구리는 토종한우가 자연 속에서 풀을 뜯어먹고 배설한 섬유질이 풍부한 쇠똥만 먹는다. 그것도 배설한 지 하루쯤 지나 햇볕에 익어 꾸덕꾸덕해진 쇠똥이 최고다. 신두리에서 왕쇠똥구리가 사라진 원인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토종한우 쇠똥만 먹는 ‘희귀 곤충’

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96년 신두리에서 왕쇠똥구리가 만든 경단을 처음 발견했고 이듬해 왕쇠똥구리의 서식을 확인한 후 매년 생태조사를 해서 200개체 정도가 살고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지난해 현장조사를 걸렀지만 2001년 11월 문화재청이 신두리 해안사구 30만평을 천연기념물(431호)로 지정했기 때문에 안심했다. 그러나 올해 6월21일 1차 답사에서 한 마리도 발견하지 못해 충격을 받았다. 6, 7월이 왕쇠똥구리의 산란기이기 때문에 한창 알을 낳을 쇠똥을 빚어야 하는데 다 어디로 갔단 말인가.”(김정환)

답은 금방 나왔다. 매년 40~50두씩 신두리 해안사구에서 방목되던 소가 지난해부터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신두리 주민들은 소를 우사에서 기르지 않고 5월께 해안 초지로 몰고 와 40~50m 되는 밧줄에 묶어놓는 방목을 고수했다. 소는 가을까지 밧줄 반경 내에서 풀을 뜯어먹고 자라, 10월께 다시 우사로 돌아갔다. 봄, 여름, 가을 내내 소들이 뜯어먹고 싸는 똥은 왕쇠똥구리뿐만 아니라 똥풍뎅이와 같이 쇠똥을 먹고 사는 곤충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식량이다.

그 많던 ‘왕쇠똥구리’는 어디로 갔을까
그러나 97년 이후 소값이 계속 하락한 데다 2001년 호주산 생우(生牛)수입 파동이 나자 가격이 더 떨어지기 전에 소를 팔아야 한다며 농민들이 사육 두수를 확 줄여버렸다. 또 수십 마리씩 비육우를 키우는 농가들은 전통적인 방목 대신 축사에서 사료를 먹여 키우는 방식을 선호했다. 가둬 키워야 소의 운동량이 적기 때문에 무게가 나가고 관리하기도 쉽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난해 방목하던 염소 10여 마리를 잃어버린 사건이 나면서 마을에 ‘도난주의보’가 내려지자 주민들은 소를 모두 우사로 몰고 왔다. 누가 시킨 일도 아닌데 해안사구를 한가롭게 거닐던 소들이 사라졌고 쇠똥구리나 똥풍뎅이들은 하루아침에 식량을 잃어버렸다. 신두리 주민 박광렬씨(67)도 99년에는 15두, 2000년에는 12두를 키웠지만 지금은 3마리뿐이다. 환경운동단체로부터 소를 방목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지만 “도난당하면 누가 책임지느냐”며 난색을 표했다.

산란기를 놓치면 왕쇠똥구리가 멸종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다급해진 김정환 소장은 태안군청으로 달려가 “당장 소를 넣어달라”고 요청했으나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으로 묶여 방목하려면 문화재청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이고, 문화재청은 “신두리 해안사구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은 지형과 지질 일반에 관한 것으로 생태는 환경부 관할”이라고 했다. 그러나 환경부는 “천연기념물 관리권은 문화재청에 있다” “왕쇠똥구리는 보호종이 아니어서 어쩔 수 없다”는 대답뿐이다.

주민들 “방목하다 도난당하면 어쩌나”

관할권 문제를 떠나 당장 소를 넣지 않으면 왕쇠똥구리를 포함해 그 지역의 먹이사슬이 끊어질 수도 있는 상황이 되자, 문화재청은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에서 소 한두 마리를 키우는 것은 단속하지 않겠다. 7월15일 문화재위원 회의에 이 안건을 상정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이제는 소를 넣고 싶어도 넣을 소가 없는 상황이다. 서산태안환경운동연합 회원들이 며칠째 신두리 일대를 뒤져 찾아낸 토종한우는 10여 마리에 불과했다. 급한 대로 쇠똥이라도 구해서 초지에 넣기로 했으나 제대로 된 쇠똥조차 귀했다. 풀을 뜯어먹고 자란 소는 거무스름하면서 둥글고 두툼한 배설물을 내놓는다. 반면 사료를 먹은 소의 배설물은 땅에 떨어지자마자 퍼져버려 쇠똥구리 경단용으로 적당하지 않다. 입맛이 까다로운 왕쇠똥구리는 사료 먹은 쇠똥 근처에도 가지 않으니 이대로라면 굶어죽거나 번식을 포기한 채 긴 동면에 들어갈 수밖에 없다.

매년 소들이 부지런히 뜯어먹은 덕분에 잘 깎은 잔디처럼 판판하던 해안사구가 지금은 웃자란 풀들로 무성하다. 외지에서 날아든 달맞이꽃과 개망초까지 끼어들어 식물 생태계를 어지럽히고 있다. 수명이 2년6개월 정도인 왕쇠똥구리가 지난해부터 번식을 하지 못했다면 이미 2년째에 접어든 셈이다. 왕쇠똥구리의 멸종은 쇠똥구리의 비극으로 끝나지 않는다. 쇠똥구리의 천적인 표범장지뱀, 후투티(새의 일종), 두더지 등 먹이사슬의 상위에 있는 동물들의 생태가 위협받는다. 종달새, 꽃뱀, 능구렁이, 황조롱이 등 신두리 해안사구에 사는 동물들이 ‘천연기념물’ 보호구역에서 조금씩 죽어가고 있다.





주간동아 342호 (p72~73)

< 김현미 기자 > kimzi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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