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41

2002.07.04

“한국 축구에 홀딱 반했어요”

월드컵 연승 행진에 아시아 각국 ‘찬사와 시샘’ … 경기 때 교민들과 어울려 “대~한민국”

  • 입력2004-10-18 17: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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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욱일승천(旭日昇天)의 기세로 월드컵 신화를 만든 한국 축구에 대해 중국 일본 인도네시아 홍콩 싱가포르 베트남 등 아시아 각국은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렸다고 기뻐하면서도 부러움과 시샘 가득한 눈길을 보내고 있다. 특히 축구의 괄목할 만한 성장을 축구 자체로 보지 않고 사회·경제적인 성장과 연결해 보는 점이 눈에 띈다.
    • 즉 한국이 97년 외환위기 이후 사회·경제 부문에서 대대적인 구조조정과 적극적인 대외 개방 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온 것의 연장선이라는 것이다.
    • 한국의 성장과 더불어 자국의 재도약을 바라는 아시아인들의 함성이 우렁차다.
    일본에는 공중파 방송 채널만 10개 가까이 있다. 그런 만큼 월드컵에 대한 축구 관계자도 그만큼의 숫자가 된다. 그중 세르지오라는 해설자가 있다. 브라질계 2세인 이 해설자는 평소 말투가 맵기로 유명하다. 특히 한국에 대한 평가는 아주 인색해 그의 해설만 들으면 한국 축구는 동네 조기축구회와 다를 바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한데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기고 8강에 진출한 이후 그의 태도는 순식간에 변했다. 한국에 대한 칭찬을 계속 반복하고 있는 것.

    NHK 해설자는 98년 프랑스 월드컵 지역예선 중간에 감독을 맡았던 오카다이다. 과묵한 인상의 그 역시 한국에 대한 상찬을 그리 많이 늘어놓지 않는 편이다. 한국이 포르투갈을 이겼을 때도 높은 평가를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또한 한국의 연승 앞에서 태도를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세르지오나 오카다가 이런 정도면 다른 언론들의 한국 연승에 대한 평가나 보도 태도가 어떨지는 말하지 않아도 짐작될 정도다.

    일본에서의 월드컵 분위기는 이제 파장 분위기가 완연하다. 그래도 스페인전이 있기 전날과 당일 아침 TV 프로그램에는 한국 서포터들의 응원 준비 모습과 전문가들의 예상을 거듭 방송했다. 대부분은 스페인 쪽에 패를 걸었다. 그러나 결과가 거꾸로 나오자 6월23일 일요일 방송과 신문은 한국의 4강 진출을 톱 뉴스로 보도했다. 일본의 최대 신문인 요미우리신문의 1면은 ‘한국 4강. 아시아 최초’라는 굵은 머리기사로 선수들과 그에 환호하는 서포터들의 사진을 올려놓았다. 월드컵 특집란에는 ‘무적함대도 침몰시켰다’ ‘한국 참을 수 없는 기쁨’이라는 큰 활자가 또박또박 실렸다. 한국의 4강 진출이 1면 중앙을 차지한 것은 다른 신문들도 마찬가지다.

    요약하면 한국의 4강 진출에 대한 일본의 반응은 복잡하다. 한편으로는 부러우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질시의 느낌이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물론 후자의 정서는 아주 약화된 표현으로 드러날 뿐이다. 스페인이 부심의 판단 실수로 졌다는 뉘앙스를 담고 있는 요미우리신문의 해설기사 역시 그런 맥락에 속한다 하겠다. 많은 일본인들은 한국의 4강 진출을 축하하고 좋아한다. 그러나 그들끼리 있는 자리에서는 이렇게 표현하기도 한다. “한국 축구 지저분하다.” 조금씩 변화의 기미를 보이는 한국에 대한 일본의 정서. 이번 한국팀에 대한 반응은 그런 미묘하고 이중적인 대목을 알아보는 데 적절한 바로미터가 되고 있다.

    < 도쿄=이성욱/ 문화평론가 >dasaner@hanmail.net



    한국이 이탈리아를 상대로 ‘역전 드라마’를 펼친 지난 6월18일 저녁(현지 시간) ‘한밭대첩’의 승전고는 서울에서 비행거리로 7시간 떨어진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까지 울렸다.

    자카르타의 ‘압구정동’으로 불리는 크망의 모든 카페에는 태극전사들을 응원하려는 현지인 젊은이들로 북적거렸다. 그들의 응원 열기는 적도선상에 걸쳐 있는 남국의 밤하늘을 뜨겁게 달궜다. 카페 ‘챔피언’에서는 대부분 중·고교생인 손님 100여명이 ‘붉은 악마’를 흉내내 또렷하고 우렁찬 목소리로 ‘대~한민국’을 연호했으며, 골이 터질 때마다 자리에서 일어나 손뼉을 치며 함성을 질렀다. 다른 지역의 재래시장과 백화점, 식당 등지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쉽게 눈에 띄었다. 인도네시아인들이 한국 축구에 열광하는 것은 아시아인이라는 동질감 때문이었다. 언론들은 현지 정서와 응원 열기를 가장 잘 보여줬다.

    유력 일간지들은 그동안 ‘한국이 아시아의 자존심을 살렸다’ ‘한국은 역시 대단했다’ ‘한국에 박두익이 부활했다’ ‘대역사를 이뤘다’ ‘붉은 악마로부터 배우자’는 등의 제목으로 1면을 비롯, 신문 곳곳을 태극전사들을 극찬하는 기사들로 도배질했다. 최대 일간지 ‘콤파스’의 수루요 프라토모 편집국장은 “한국 축구를 보면서 아시아인으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세계 강호들을 맞아 파죽지세로 연승한 한국 축구가 97년 아시아 전역을 강타한 외환위기 이후 위축됐던 아시아인들에게 긍지와 자신감을 심어줬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설명해 준 것이다.

    < 황대일/ 연합뉴스 자카르타 특파원 >hadi@yonhapnews.net

    ‘놀랍다!’(了不起!). 최근 한국을 바라보는 중국인들의 일관된 시각이다. 특히 16강전이 끝난 뒤에는 한국에 냉담하다는 평을 받아온 중국의 언론마저 한국을 1966년의 북한과 비교하면서 ‘고려 영웅의 칼이 이탈리아를 찌르다’라는 다소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뽑아내기도 했다.

    자국의 16강 탈락으로 의기소침해 있던 중국 인민들은 한국을 통해 대리만족의 감정까지 느끼는 듯하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인들의 열광에 동조하는 그들의 모습에서 잘 나타난다.

    단체응원을 끝낸 중국 거주 한국인들이 거리를 가득 메우며 구호를 외쳐대거나, 아파트 베란다에 나와 함성을 지르는 현상에 대해서도 베이징 사람들의 반응은 의외로 우호적이다. 일찍 잠드는 중국인들이 수면 방해까지 참아가며 남의 일에 너그러운 것은 흔한 경우는 아니다. 특히 단체행동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국의 공안들이 한국인의 집단행동을 그대로 두고 보는 것도 흥미롭다.

    그러나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근본적으로 싫어하는 일본이 아닌 한국이 승리하는 게 기쁘기는 하지만 그것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중국인들의 속내는 한 신문에 실린 ‘오늘의 한국은 내일의 중국’이라는 말에 잘 나타나 있다. 한국의 승리를 마음껏 기뻐해 주면서 동시에 내일의 승리를 준비하자는 것이다.

    16강전 중계가 끝난 뒤, 중국 방송은 곧바로 한중간 남자배구 경기를 중계했다. 중국인들은 배구에서는 한국보다 실력이 앞선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배구경기를 보면서 자위하는 듯했다. 이것은 동시에 지금 축구에서 좋은 실력을 발휘하고 있는 한국도 나중에는 중국이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다는 노골적인 시위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어떤 부분에서는 오늘의 중국도 승리하고 있다는 의미다.

    < 강현구/ 주간동아 베이징 통신원 >so@263.net.cn

    싱가포르 유력지 ‘스트레이트타임스’는 ‘한국이 아시아의 자존심을 세웠다’며 한국이 이탈리아를 격파하고 8강에 진출한 것을 6월19일자 1면 머리기사로 보도했다. 타임스는 또 스포츠 3개 면 중 2개 면을 할애해 ‘붉은 악마’의 거리응원과 밤새도록 이어진 한국의 축제 분위기를 자세히 전했다.

    호텔과 레스토랑에 마련된 대형 TV로 한국 동포들과 함께 경기를 지켜본 싱가포르 시민들은 경기 내내 한국팀을 응원했으며, 종료 휘슬이 울리자 “아시아인의 승리”라며 교민들과 함께 한국의 승리를 축하했다. 림야오총씨(34)는 “한국은 충분히 승리할 자격이 있는 팀”이라며 “준결승에 오를 것을 확신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발 대신 팔꿈치를 주로 사용한 이탈리아가 심판 판정 운운하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덧붙였다.

    거리에는 한국의 승전보가 담긴 신문을 유리창에 내걸고 운행하는 택시들이 눈에 띄기도 했다. 한 택시운전사는 “사우디아라비아가 실추시킨 아시아의 명예를 한국이 되찾아 왔다”며 “한국은 결승전에 오를 만한 능력이 있는 팀”이라고 추켜세웠다.

    동포들은 하루종일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들어야 했다. 유학생 이정민씨(22)는 “현지인들이 이처럼 한국의 승리에 기뻐할 줄은 몰랐다”며 “한국 상품 판매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승전보는 6월18일 싱가포르에서 개막된 아시아 최대의 정보통신박람회 커뮤닉아시아2002 현장까지 ‘붉게’ 달궜다. 전시업체에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나눠준 KAIT 한국관을 비롯해 21개 업체가 참여한 KOTRA 한국관 등에는 이탈리아전 승리 이후 관람객과 바이어들의 발길이 눈에 띄게 늘었다. 업계 관계자는 “이탈리아전 승리의 영향이 이렇게 클 줄 몰랐다”며 “한국 부스를 찾는 관람객들과 상담 건수가 크게 늘었다”고 말했다.

    < 싱가포르=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베트남 중앙TV는 아시아권에서 처음 개최되는 2002 한·일 월드컵 경기를 생중계하고 있어 이곳에서도 한국 선수들의 선전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하노이의 명물인 대우하노이 호텔에서는 1층 로비에 대형 TV를 설치해 한인 동포들과 하노이 시민들, 외국인들까지 한자리에 모여 월드컵경기를 함께 관전하고 있다.

    베트남 사람들은 축구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데다 한류(韓流) 열풍의 근원지가 베트남일 정도로 한국을 우호적으로 여기기 때문에 한국팀 승리를 자국의 승리처럼 기뻐하고 있다.

    “이젠 히딩크 감독이 김딩크나 이딩크로 성을 바꿔야겠습니다. 이탈리아와 스페인까지 이겼으니 독일과 브라질도 이기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베트남 중앙TV 축구 프로그램 진행자가 목청 높여 외친 말이다.

    약소국으로서, 한국과 매우 유사한 굴곡의 역사를 거쳐왔고 한국을 개발 모델로 적극 검토하고 있는 베트남으로서는 한국의 발전과 국제무대에서의 위상 제고에 자신들의 미래를 투사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월드컵 8강 진출을 기념해, 대우자동차의 베트남 법인인 비담코(VIDAMCO)가 전 직원에게 30%의 보너스를 지급하기로 결정하고, 또 4강에 진출하면 50%의 보너스를 추가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국영 베트남항공도 주 6회 운항하는 베트남-한국간 왕복항공권을 50% 할인 판매하는 파격적인 한국 관광상품을 내놓았다. 베트남인의 한국 관광 기회를 넓히기 위한 것이다.

    대우호텔에서 만난 한 하노이 시민의 말은 이들의 한국 사랑이 어느 정도인지 알게 한다. 그는 “베트남 사람들도 개고기를 보양식품으로 즐겨 먹는데 월드컵 직전 일어난 개고기 논란에 대해서도 언론을 통해 잘 알고 있다”면서 “개고기를 먹으며 한국팀의 경기를 보는 것이 이번 여름의 피서법”이라고 말했다.

    < 이강우/ 주간동아 하노이 통신원 >lkwvn@yahoo.co.kr

    680만 홍콩 주민들에게 월드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 것이 사상 처음 본선에 출전한 중국 대표팀이었다면, 폭발적인 인기를 몰고 온 기폭제는 가까운 이웃 ‘한국의 돌풍’이었다. 홍콩 주민들은 한국 경기 때 대부분 ‘같은 아시아 국가’인 한국팀을 열렬히 응원하고 있다.

    한국을 다분히 비하하고 냉대해 온 홍콩 미디어들의 한국관도 월드컵을 계기로 환골탈태하는 모습이다.

    한국이 이탈리아를 이긴 뒤 TV 방송들은 물론 모든 미디어가 1면과 2면, 특집면 등에 설기현, 안정환, 거스 히딩크 감독의 사진과 프로필, 기량들을 상세히 싣는 등 월드컵 특집의 상당부분을 한국 소식으로 채웠다.

    스포츠 소식을 거의 싣지 않는 경제 일간 신보(信報)는 이례적으로 사설과 평론 등을 통해 ‘홍콩과 중국이여, 한국을 배우자!’고 촉구하면서 ‘경이적인 월드컵 8강’에 진출한 한국과 한국인, 한국 경제를 벤치마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신보는 사설에서 ‘히딩크 감독의 노력에 힘입어 한국 축구가 괄목할 만한 성공을 이룩했지만 이번 성공을 외국 감독의 성공만으로 단순화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 뒤 ‘한국은 90년대 말 금융위기를 겪은 이래 사회·경제 부문에 걸친 대대적인 구조조정 및 적극적인 대외 개방 등을 통해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온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고 논평했다.

    홍콩대학 미디어학과의 한 여교수는 6월21일 엄지손가락을 치켜올리며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경제와 운동 실력을 갖고 있는 한국인들이 너무 자랑스럽다”고 극찬했다.

    < 홍덕화/ 연합뉴스 홍콩 특파원 >duckhwa@yonhapnews.net

    천수이볜(陳水扁) 대만 총통은 2002 한·일 월드컵 축구대회가 동아시아 국민들의 유례없는 관심 속에 날로 열기를 더해가자 최근 올해를 ‘축구의 해’로 선포, 대만의 축구 열기 확산 및 ‘대만 축구의 중흥’을 기원했다.

    대만의 한 언론인은 ‘축구의 해’ 선포 배경에 대해 “천총통은 특히 라이벌로 인식해 온 한국 대표팀이 ‘48년 만의 월드컵 1승’에 이어 ‘16강 꿈 실현’과 ‘역사적인 8강 진출’ 등 끝없는 돌풍을 이어가면서 한국인들이 총화를 이뤄가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은 것 같다”고 설명했다.

    천총통 등 정부 관계자들이 축구 열기 확산을 위해 진력하고 있는 것과 달리 대만 언론들은 한국이 이탈리아를 꺾고 8강에 진출하자 ‘우승후보 격파 기적 창조’ 등으로 놀라워하면서도 한국이 홈 그라운드의 이점(편파 판정)을 살려 8강에 진출했다는 식의 시샘 또는 악의 가득한 논평들을 쏟아냈다.

    일간 중국시보(中國時報)와 연합보, 자유시보 등 대만의 3대 일간지들은 대부분 악의적인 논평으로 ‘고춧가루’를 뿌리는 등 라이벌 한국의 예상 밖 선전에 부러움과 질시가 교차하는 모습이었다.

    연합보는 6월19일 ‘편파 판정 속 한국 승리’라는 제목의 머리기사에서 “한국이 주최국의 이점을 이용해 심판을 매수, 불공정한 심판 판정에 힘입어 승리했다”고 비난한 뒤 “이런 식이라면 결승전인들 두려울 게 없을 것”이라고 비꼬았다.

    반면 홍콩에서 만난 대만 상공회 관계자 등은 대부분 한국의 월드컵 선전을 축하하면서 “한국 경제가 놀라울 만큼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는 데다 월드컵에서 훌륭한 성적을 내 전 세계가 동아시아를 주시하게 됐다”고 환호하기도 했다.

    < 홍덕화/ 연합뉴스 홍콩 특파원 >duckhwa@yonhapnews.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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